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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게 시작한 큰그릇 양연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다. 손을 끌어 조용히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욕보여서 스스로 분발해 공부하도록 하는, 좀 거친 수법의 선생을 말한다. 조선 초기 세종조의 문신 양성지의 손자로 양연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에 얽힌 얘기다.

  젊어서 탁형불기하였다 했으니 아마 상당한 왈가닥이었던 모앙이다. 그만한 명문에 났으면서도 글 공부를 안 한데다가 사십이 되어서야 학문을 시작했다 하니, 아마도 무언가 크게 인생의 방향을 틀어 놓을만한 커다란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옛날이면 초로지경에 들 나이에 공부를 시작할 까닭이 없다. 하여간 커다란 결심을 하고 발분하여 북한산 중흥사에 들어가 공부를 했는데 `만약에 문장을 이루지 못한다면 손을 펴지 않으리라.` 왼손을 오므려 주먹을 꽉 쥐고 잠자는 동안에도 펴질 않았다.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그까짓 결심 며칠이나 가랴 할지 모르나, 이 분만은 그게 아니다. 한 일년 공부끝에 문리가 확 트였다 했으니 대단한 속성이다. 시 또한 격이 높아서 한번은 그의 장인께 보냈는데,

  책상머리에 등빛이 어둡고(서탑등광암)
  벼루에는 물빛이 말갛습니다(연지수색청)
  관성(붓)은 바라는 바요(관성오소원)
  겸하여 저선생(종이)도 바라옵니다(겸망저선생)

  달리하면 `의당 밝아야 할 책상 머리가 어둡다 했으니 초 좀 달라는 얘기고, 벼루물은 까매야 하는 것인데 말갛다니 먹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붓도 바라는 것이지만 아울러 종이도 좀 보내 주십시오` 했으니 문방사우라면 본래 먹, 벼루와 종이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벼루 대신 초를 써 넣어서 이 모두를  보내 달라는 얘기다. 무식쟁이였던 사위 솜씨로 지어서 써보낸 이 멋진 시를 보고 그의 빙장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소망하는 물품과 함께 장난으로 글 한줄을 써보내기를

  양씨 선비가 사십에사(양충의사십)
  산당에서 독서하니(도서산당)
  아아 늦었도다(오호만의)
 
  이것이 널리 알려져 당시의 멋진 얘기로 전하였다.

  그 뒤 중종 19년(1524년) 과거에 급제하여 결심했던 목적을 달성하고 그제사 굳어진 주먹을 펴니 손톱이 자라 손바닥까지 파고 들었더라고 한다. 물론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로이 승진을 거듭한 사이 소신껏 일해서, 대사헌으로 있을 때는 김안로, 채무택 등 권세를 잡아 농간부리던 무리들을 따져서 벌주어 조정 공기를 맑게 하고, 그 공로로 지위를 돋구어 좌찬성에까지 올랐다. 중종37년에 별세했다 하니 18년 동안에 한 일이라, 늦게 시작한 벼슬길이었지만 그의 공적은 다른 사람이 평생 걸려도 못다 할 일을 해냈다 할 만하다.

  양연의 호는 설옹이었는데,  그의 이 늦게 결심한 이야기는 미담으로 오래 전해져, 제21대 영조대왕은 이 사실을 듣고 감격해 양충의 사십 독서산당 오호만으로 액자를 만들어 호당에 걸게 하셨더라고 한다. 호당은 독서당이라고도 하여, 과거에 급제한 문사중에서 대제학의 추천으로 특별히 뛰어난 인재를 골라, 비교적 한가로운 벼슬을 주어 요(봉급)는 그대로 지급하면서, 상당기간 자유로이 연구하게 하는 제도였다. 호당은 지금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매봉을 등에 지고 동남향으로 도두룩한 언덕 위에 있었는데, 송파 쪽으로부터 도도히 흘러 오는 한강 물줄기를 정면으로 받아, 시원하기 이를 데 없어 호당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생긴 것이었다. 영조는 그  호당에 뽑혀 들어와 연구하는  선비들에게 `너희들도 그를 본받아 더 열심히 공부하라.’ 하는 격려의 뜻을 담아 써서 걸게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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