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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에도 굳세게 서 있는 수녀원의 산다화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아픈 세상을 말하다

자살한 딸 떠나보낸 어머니
성폭행당해 죽으려는 여고생…
절규하면서도 위로받고 싶어
눈물로 보내온 편지들 많아

막다른 선택에 몰리는 건
가까운 가족과 친구조차 외면
세상에 혼자라는 느낌 들 때죠

암환자도 어떻게든 살려고 애써…
배려하고 소통하며 사랑하세요


부산시 수영구 광안4동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시인 이해인(67) 수녀가 사는 곳이다. 지난 12월29일 금련산 언덕배기에 있는 수녀원을 찾았다. 수도원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블랙홀 같은 피안의 세계다.

해인 수녀의 방은 잔디밭 앞 ‘민들레 영토’다. 그의 초기 시집 제목을 딴 방 이름에 수십년 전 소녀 시인의 풋풋함이 담겨 있다.

그런데 세속의 세파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이곳에 세상의 ‘아픔들’이 지친 다리를 끌고 하나둘씩 찾아든다. 수녀 시인이 쌓아둔 편지함은 이 세상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와 고통들로 가득한 판도라 상자다. 눈물과 고름과 핏물이 담긴 사연들이 한둘이 아니다.

얼마 전엔 친구를 따라 자살한 여고생 딸을 떠나보낸 어머니로부터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비통함이 도착했다. 또 한 중년 남자는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이혼한 아내를 죽여버리겠다는 살기를 보냈다. 여고 1학년생은 어려서부터 사촌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자신은 시집을 갈 수도, 아이를 낳을 수도 없다며 죽겠다는 상처를 동봉해 왔다. 결혼을 해본 적도, 부부생활을 하거나 아이를 낳아 본 적도 없는 수도자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사연들이었다.

그는 괜히 시집을 내 이름이 알려진 탓이라고 자책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는 타조가 될 수는 없었다. 또 어떤 시한폭탄이 담겨 있는지 두려워서 편지 봉투를 뜯지 않은 채 버릴 수도 없었다.

무기징역을 살던 중 탈주했던 수감자가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낸 이도 수녀 시인이다. 초등학교 때 누군가 ‘너 착한 놈이다’고 머리 한번만 쓰다듬어주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신창원씨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학교에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쌍욕을 하며 “꺼져”라는 말을 뱉었을 때 마음에 악마가 생겨났다고 고백한 바 있는 신창원씨는 자신의 삶과 성찰을 담아 매번 ‘이모님에게’라고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웬 힐링 타령이냐’는 질타에도 지금 당장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데 가족이고 친구고 누구 한 사람 하소연할 데도 없고, 나를 위해선 누구 한 명 위로해주고 기도해줄 사람이 없다는 절규가 발길에 차이고 차여 마침내 도달한 곳이 ‘민들레 영토’다.

해인 수녀는 “부산의 안상영 시장이나 탤런트 최진실씨뿐 아니라, 내 암투병을 위로하던 ‘행복전도사’ 최윤희씨마저 자살하는 것을 보고 나선 힘든 사연을 보면 겁이 덜컥 난다”고 했다.

해인 수녀는 4년 전 대장·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투병해왔다. 지인들은 좋은 생각, 좋은 말만 하라고 하면서, 여리디여린 그가 감당 못할 세상 아픔들을 이렇게 마주하고서 몸이 버티겠느냐고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세파는 그런 그도 단련시켰다.

“우리 수녀님들이 이렇게 깔끔치 못한 해인 수녀가 뭐가 좋다고 그런지 모르겠다는데요.”

그는 이제 “세상에 자랑할 게 약점밖에 없더라”고 할 만큼 털털하고 넉넉해졌다. 성폭행을 당해 죽겠다던 소녀의 손을 잡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데려갈 만큼 당차졌다. 그 의사에게서 ‘자궁에 아무 이상이 없고, 결혼도 할 수 있고 아이도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햇살처럼 환해지는 소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자신의 암덩어리가 모두 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젠가 꽃가게 아저씨가 지금 전부인을 죽이러 가려고 식칼을 갈고 있다고 전화를 걸어왔을 땐 “아저씨가 파는 꽃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지겠네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전화기에선 의외로 “벌벌 떨것 같은 수녀님이 호통을 쳐주니 마음이 시원해진다”며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돈 몇백만원이 없어 자살하겠다’는 사연을 접했을 때는 그도 막막했다. 책 인세 수입도 모두 수도원공동체에 귀속되기에 그는 가난한 수도자일 뿐이다. 그런데 사회복지를 하러 온 외국인 선교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선뜻 도움을 주었다. 그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이 사연은 그 여성이 한 방송에 투고해 받은 상금을 해인 수녀에게 보내주면서 알게 됐다.

“자살자들도 그 전에 ‘죽겠다’거나 ‘살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지요. 그런데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조차 무감각하게 대하는 바람에 결국 ‘세상에 아무도 없다’, ‘혼자다’라는 생각에 막다른 선택을 하잖아요.”

해인 수녀는 앉아서 편지를 받고만 있지 않는다. 김해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나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유가족들의 홈페이지를 찾아 위로의 글을 전하고, 시를 남겼다. 게시판에 ‘이해인’이란 이름을 발견하고 ‘동명이인 아니냐’며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유족들은 민들레 영토에 찾아와 그의 손을 잡고 ‘세상이 우리만 홀로 남겨두었다’는 절망감과 분노를 눈물로 녹여냈다. 그가 <슬픈 편지>라는 제목으로 ‘어느 사형수에게’ 보내는 시를 쓴 것도 자신이 혼자라고 느껴질 때만큼 절망스러운 것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여고생 딸이 자살한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은 해인 수녀는 고인의 수목장까지 가서 시를 바쳤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지만 그 위로마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가족을 살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일가친척으로 여기는 분이 하느님이지요.”

하느님을 닮아가는 여정에서 이렇게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면서 해인 수녀 안에 있던 암도 녹아들었다. 그는 절망스런 이웃을 치유한 게 아니라 이를 통해 자신을 치유했는지 모른다.

“암 병동에서 보면 뼈만 앙상한 환자들도 어떻게 하든 살아보려고 애쓰지요. 그런데 몸 성한 젊은이들이 생목숨을 끊는 것을 보면 절망이 암보다 무섭지 않나요.”

그는 “등교하는 게 신이 나고, 일터에 가는 게 즐겁고, 집에 들어가는 게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건 서로 무감각해져 소통도 못하고 배려도 못하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랑은 낭만이 아니라 용기”라고 말한다. 그러니 너무 늦어 후회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해인 수녀의 민들레 영토 방문 밖엔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산다화들이 옹기종기 모여 붉게 타오르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서로 함께한다면 어떤 추위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원(부산)/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단풍나무
숲의
은별에게


이해인 수녀


은별아 은별아 은별아
아빠가 한 번
엄마가 한 번
오빠가 한 번
다른 목소리의
같은 그리움으로
네 이름을 불러본다
우리 목소리 들리지?
너를 사랑하는 우리
결코 잊지 않았지?
다시 올 수 없는 곳으로
너는 떠났지만
우리는 너를 보내지 않았어
아니 보낼 수가 없어
우리가 함께 웃고
서로 사랑해야 할 시간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대체 무엇이 그 누가
우리를 갈라놓은 것일까
우리의 허락도 없이 인사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난 네가
몹시 서운하지만 네 마음 아플까봐
그렇게도 못하겠구나


우린 이제 그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일도 너에게 미안해서
그냥 소리없이 눈물만 흘린단다
안타까운 한숨만 쉰단다
네가 없는 이 세상은
너무 쓸쓸하고 허허로운데
너무 재미없어 웃을 일도 없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세상은 그래도 돌아가고
사람들은 무심한 듯 제자리를 지키는 게
힘이 들어 적응이 안 되는
우리를 가엾이 여겨다오
아빠 엄마 오빠
하고 정답게 불러주겠니?
꿈에라도 한 번 웃어주겠니?
“사랑해요”라고
곱디고운 단풍잎 미소를 날려주겠니?


한 밥상에서 밥을 먹고
산책도 하고 음악도 듣고
정겨운 시간을 다시 가져보고 싶은 우리
너를 지켜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하루하루가 힘들고 괴롭다
우리의 깊은 슬픔과
마르지 않는 눈물도
네가 조금씩 닦아주겠니?


우리의 아름다운
꿈이고 희망이고
보물이었던 은별아
너를 사랑한다


네가 세상에서
우리와 함께했던 시간들
우리의 기억 속에서 꽃이 된
네 웃음과 사랑과 기도
모두를 고마워한다
네가 준 행복을 잊지 않을게
네가 준 아픔과 슬픔도 용서할게


우리가 그 어느 날
영원한 빛과 평화 안에
다시 만날 때까지
너는 잘 쉬고 있으렴
너를 닮은 별과 같은
단풍나무 아래서
우리를 기다려다오
오늘도 빨간 단풍잎에
곱게 실어 보내는
우리의 사랑이
푸른 하늘을 향하여
승천하고 있구나
사계절 내내 깊은 그리움으로
우리를 기도하게 만드는
은별아 은별아 은별아


※ 지난해 자살한 어느 여고생을 생각하며 쓴 미발표 근작 시(이름은 가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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