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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 최명희


   14. 나의 넋이 너에게 묻어(1/4)

  이기채가 두드리는 놋재떨이 소리가 뙤약볕 아래 쨍쨍하게 울린다. 그것은 노여움으로 소리끝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익어 터지는  햇빛 속에서 후욱 놋쇠 비린내가 풍겨온다. 강모는 사랑채 마당에 서서 누런 얼굴로 하늘을 본다. 햇빛이 눈을 찌른다. 순간, 통증으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우는 시늉이 되어 버린다. 저지난 해 여름, 강수의 넋을 혼인시키던 명혼이 있던 무렵에도 이렇게 석류껍질 벌어지듯 쩌억 소리를 내며 햇빛이 갈라졌었지. 그 햇빛이 갈라진 자리에 캄캄한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아찔함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그러나 그도 벌써 이 년 전 일이 되고 말았다.

"아이고, 내 새끼야..."

강모가 안채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율촌댁은 그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부터 쏟았다. 예전의 그네 같으면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아직 혼인하기 전에는, 사랑채의 이기채와 큰 방의 청암부인께 문안이 끝나야 건넌방으로 들어왔던 강모를, 조금이라도 미리 보고 싶어 장지문을 비긋이 열어 놓기도 할 정도였다.

"나는 할미고,  네 아버지는 너를 낳으신 어른이니, 인사는 언제나 사랑에 먼저 드리고 오너라."

청암부인은 강모에게 그렇게 일렀다. 그러나 율촌댁은  비록 어머니 일지라도 청암부인 다음으로 문안을  받았다. 강모가 사랑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안채로 건너와 큰방에 들어 있을 때가 율촌댁으로서는 가장 지루했다. 청암부인은, 강모가 아직 떡애기일 때부터 무릎에서 내려놓을 틈이  없을 만큼 가까이 두고 애중히 하였다. 그래서 오히려 어머니인 율촌댁보다 청암부인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웬일인지 강모도 어머니보다 할머니와 더불어 있기를 좋아하였다.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청암부인의 앞에서 율촌댁이  강모를 귀여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만큼 그네의 마음에는 언제나 강모에 대한  아쉬움이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잠깐씩 밖에 마주앉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율촌댁을 서성거리게 하였다. 급하게 잠깐 본 아들의 모습이 마음의 갈피에 끼어, 몰래 꺼내 보는 옥가락지처럼 율촌댁을 설레게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눈치를 볼 겨를도 없었거니와 어려운 어른인 청암부인은 의식을  잃고 있으니, 좌우를 가리지 않고 뛰어내려온 것이다.

"올라가자."

율촌댁은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강모의 손을  잡아끈다. 강모는 대답이 없다. 얼굴빛이 몰라볼 만큼 초췌하였다. 이끌리어 대청으로 올라선 강모는 율촌댁에게 절을 한다. 둥그렇게 엎드린 뒷등이 앙상하다.

"많이 여위었구나."

절을 하고 다리를 개는 강모 옆에 바짝 다가앉아 그의 뺨을 쓸어 보는 율촌댁은, 다시 가슴에서 치미는 울음을 못 참고 고개를 돌린다. 그래도 강모는 말이 없다.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이냐? 에미한테 속 시원히 말 좀 해 봐라."
"아무 일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얘기냐? 며칠 전에 수천 숙부께서 네 일로 돈 오백 원을  가지고 가셨다던네? 삼백 원은 부청에 변상허는 돈이고, 이백 원은 무슨 교제비로 들어간다면서 가지고 가셨다. 에미가 애가 타서 입이 마르고, 잠이 안 와서, 질정을 못허고 너 오기만 기다렸단다."

반 울음 섞인 소리로 말끝을 제대로 맺지 못하면서 더듬거리는 율촌댁은, 그런 중에도 강모의 손등을 쓸어 보며 한참씩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렇게 다 아시면서 무얼 더 알고 싶으세요?"
"그렇게만 알면 어떻게 해...? 무슨 영문인지를 알어야지."
"차차 아시게 되겠지요."
"그나마 강태가 와서  말을 해 줘서 알었지, 집에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 뭐냐."
"그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집에다 광를 합니까."
"아, 나쁜 일일수록 집에서 먼저 알어야지 남이 먼저 알어 되겠느냐?"

강모의 일은 이미 거멍굴에까지 소문이 번져 있었다.

"네가 부청 공금을 유용했다고? 자알했다. 그래 무엇에 썼느냐? 무슨 좋은 일에 썼어? 조상의 선산 치레를 했느냐아, 집안에 논밭을 샀느냐, 입 두었다 왜 말을 못해? 아니며언, 아니며언, 무엇에다 썼느냐아."

아까, 호출을  받고 전주에서 오는 강모를 보자마자, 사랑의 이기채는 벼락같이 퇴침을 들어  내던졌다. 기표가 얼른 그의  팔목을 잡았다. 강모는 아슬아슬하게 피하여 다행이었으나. 그 대신 퇴침이 위칸의  차탁자에 정통으로 맞아 와그르르 다기들이 쏟아지면서 박살이 났다. 그 소리가 안채에까지 들려, 율촌댁은 무망간에 사랑채 마당까지 버선발로 뛰어내려갔었던 것이다.

"네 이노옴. 이노옴.  차라리 썩 나가서 죽어라. 너 같은  놈은 일찍 죽어야 다른 사람한테 덕이 된다. 내 눈앞에 보이지도 말어. 도대체 네가 이날 이때까지 똑바르게 사람 노릇을  헌 게 무어냐, 으응? 참,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더니 이레 안에 배코를 쳐도 유분수지, 이제 귀때기 새파란 녀석이, 나이 주먹만한 것이, 벌써부터 기생 첩질로  가산을 탕진허기 시작허네그려. 패가 망신이 다른 게 아니다. 어떤  소갈머리 없는 위인이 전답을  날리고 패가를 허는가, 내, 속으로 웃었더니 그게 바로 내 일이 되었구나. 허이구우."
"형님, 고정하십시오. 젊은 나이에 호기심도 있고 객기에 한 번."

기표가 채 말을 맺기도 전에 이기채는 벼락을 친다.

"뭐어? 호기시임? 무슨 호기심? 왜 여자가 어디 기방에만 있는가? 그럴작시면 장가는 왜 들어? 일구월심 저 하나를 기다리는 제 사람이  있는데, 필요허먼 집으로 올 일이지 객기는 무슨 놈의 객기를, 부릴  데가 없어서 삼백 원씩 퍼다 바치고 화류계 계집한테 부린단 말이야? 허허어 참,  너 객기 한 번 비싸게 부리는구나? 으응?"
"저도 인제는 정신을 차릴 겝니다. 말씀을 잘 알아들었을 테니 그만 허십시오."
"알어들어? 저놈이 알어들을 놈이야? 아니 삼백 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알고 하는 소린가, 모르고 하는 소린가? 허나, 돈이 문제가 아니야. 기왕에  오입을 할 양이면 왜 조용히 못해? 그만한 처신도 못하는 놈이 무슨  행세를 하느냐고. 제 애비가 아들놈 오입 뒤치다꺼리를 하는 풍속이 대관절 어느 나라 풍속이란 말이냐. 내 어쩌다가 이런 꼴을 보고 살고 있는가... 층층이 어른 모시고 사는 젊으나 젊은 놈이,  기생첩실. 맞이허느라고 공금을  삼백 원씩이나 횡령하여, 유치장에 들어가 앉어 용수를 뒤집어쓴다니, 이런 치욕이 가문의  어느 대 누구 이름에 선례가 있단 말이야...?"

이기채는 분을 참지 못하여 얼굴빛이 노래지며 숨이 잦아든다.

"형님, 한 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기왕 지나간 일이고 이제 무마된 일입니다."
"무마? 파면이 무마야? 용수 쓰고 감옥소에 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알라는 것인가?"
"그렇다는 게 아니올시다. 지나간 일보다 앞일이 걱정입니다. 강모야. 너는 어서 사죄 말씀 드리고, 안채에 가서 할머님 뵙고 어머니도 뵈어라. 그렇게 앉어만 있지 말고."

그제서야 강모는 주춤주춤 일어섰다.

"젊은 놈 꼴 한 번 참으로 보잘 것 있게 되었구나. 아예 온 동네를 한 바퀴 휘이 돌아라. 가서 사당에 고유 참배까지 허든지. 선대에 없던 인물,  한량 종손 났다고 고해야 헐 게 아니냐."

토방으로 내려서는 강모의 목덜미에 이기채의 조소가 꽂혔다.  목덜미의 살갗이 바늘처럼 일어섰다.

"어머니."
"오야."
"저 들어가서 할머니 뵈올랍니다."

율촌댁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지나갔다.

"물론 가서 뵈어야지. 허나 지금 네가 가도 알아보지도 못허신다. 의식이 없으신 지 여러 날째야. 저번에 강태 와서 네 소식  전허든 날 할머님이 네 말씀 들으시고는, 그만 그 길로 혼수에 빠지셨다."

강모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니 에미랑  좀 이야기허자. 그래 그 일본 기생이라는 여자가 어떤 사람이냐?"

"어머니 아시는 대롭니다."

"에미가 무얼 알어? 에미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 더 아실 것 없습니다."
"에미가 모르고 누가 안단 말이냐?"
"청루의 여자는 아니예요."
"일본 사람이야?"
"조선 여자예요. 일본 요릿집에 몸을 부치고  있노라고 일본 이름을 부르고 있었어요."
"이름이 무언데?"
"오유끼라고 합니다."
"오유끼? 무슨 뜻이냐?"
"그런 이름에 무슨 항령이 있고 뜻이 있겠어요? 그냥 부르는 거지요."
"그래, 심성은 무던허고?"
"그저 그렇지요 뭐."

율촌댁은 강모가 그렇게나마 대답을 해 주는 것이 고마웠다  어쩌든지 아들의 비위를 다치지 않고 한 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그네는 더욱 더 목소리를 낮추어 온화하게 말한다.

"네 안에서 조금만  마음을 잡아 주었어도 오늘 이런 일이 생겼겠느냐? 에미는 네 심정 말 안해도 다 안다. 여자가 좀 드세야지. 단단하기 강철 같으니 어떤 남정네가 마음을 붙이겄느냐. 그저 여자란 땅이라  하지 않드냐. 무슨 씨앗이든지 뿌리면 싹이 나고, 천지만물을 다 그 속에 품어 주는 다수운  것이 여자라야 헌다. 네 안이 그리  못허는 것, 에미도 다 안다. 이건 여자가  도리어 남자 중에서도 싸움터에 장수 같은 남자 성격이니..."
"저 할머니께 가 뵈올랍니다."
"오냐. 그래라. 저러신 중에도 정신이 잠깐 드시면 너를 찾으신다. 어디 있느냐고 방안을 둘러보고 자리에 없으니 몹시 서운해허시드라. 이제 어디 가지  말고 할머님 곁에 있거라. 지금 숨만 붙어 있지 살아계신 분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율촌댁은 애간장이 녹으면서도, 일변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전신에 느껴졌다. 무엇이라 할까. 청암부인으로부터도 이기채로부터도 버림받은 강모가, 가엾게 떨면서 자기의 품으로 안겨들어온 것 같은 오랜만의 충만감이라고나 할까. 무엇보다도 율촌댁은 이미 의식을 잃어 버린 청암부인한테서 강모를 되찾은 듯한 심정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늘 뒷전에서 눈치보며 멈칫거리던 어미 노릇을 이번에야말로 당당히 해 주고 싶은 간절함을 지그시 눌렀다. 이렇게 참담하여진 아들이 마치 비에 젖은 새 새끼처럼 애처로우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만의 것이 된 듯하였던 것이다.

"강모야. 조금도 걱정 말아라. 어떻게든 에미가  네 일을 잘되게 해주마. 무얼 해 주면 좋겠느냐?"
"괜찮습니다."
"에미가 어디 남이냐? 무슨 말이든 해 보아."
"아닙니다."
강모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였다.
"할머님한테 갔다가는 이리로 나오너라. 에미랑 좀더 이야기를 허자. 그  동안에 밀리고 밀린 이야기가 얼마나 많다고."

강모는, 그러지요,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야기한들 무엇 하리...  부질없는 일. 내 한 몸의 인생에 왜 이다지도 여러 사람이 노심초사를 하는 것일까. 나로 인하여 집안에 소동이 멎을 날 없으니 어찌하여 그런가. 나는, 내 가지고 싶은 것 가지지도 못하고, 내 하고 싶은 일 하지도 못했는데, 아무것도 되는 일 없이 시끄럽기만 하다.

"네가 어떤 자식이라고..."

율촌댁은 다시 강모의 손목을 잡는다. 강모는 손목이 끈끈하게 느껴진다. 그저 누구든지 나를 보면  입을 열어, 무슨 말이 되었든 자기  말을 하려 하고, 또 내 말을 기어이 들으려 한다. 그리고 곁에 두려 한다. 그럴수록 나의 머리 속은 실꾸러미 얽힌 것처럼 어수선하고, 철사를 이빨로 물어 뜯으려는 사람처럼 괴롭다. 아아, 끊어 버리고 싶다. 이 질긴 줄, 철사의 올가미. 그러나 철사가 이빨로 끊어지랴. 오히려 이빨의 사기질이 떨어져 나갔다. 치수의 신경이 철사의 금속성에 갈리면서, 온몸을 소스라치게 하던 그 감각이라니. 살 속으로 파고드는 가느다란 철사의 줄을 자기가 끊지  못하면, 그 줄이 자기를 베어 버릴 것만 같은 속박감에 그는 자다가도 일어나 소름이 끼치곤 했다.  강모는 큰방 앞세서 까닭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할머니, 저 강모예요."

하던 말도 이제는 소용이 없었다. 그네는 듣지 못하는 것이다. 재작년 여름에 창씨개명을 해 버린 일로 크게 낙담하여 실심을 한 청암부인의 허깨비 같은 가슴에, 더위가 컥, 숨이 막히게 얹히면서 그네는 끝내 식욕을 되찾지 못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례없는 가뭄이 불볕을 쏟으며 이글이글 논밭을 태우니. 누워서도 마음을 졸이던 청암부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저수지, 어떠냐."메마른 소리로 물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머니.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애써 평온한 낯빛을 지어 여쭙는 이기채의 안색을 청암부인은 미심쩍어 한참씩 바라보았다.

"나를 일으켜라."

뙤약볕이 정수리에 놋젓가락을 꽂는 오뉴월 염천의 한낮, 드디어 더는 참을 수 있었던 그네가 아들 이기채에게 한 마디로 명했다. 그네의 낯빛은  창호지 같았다.

"어머니. 장정도 다니기 어려운 더위올시다. 궁금하신 일 있으면 저한테 물으시지요. 무엇이 못 미더우십니까."

기겁을 한 이기채가 반몸을 일으키는 청암부인을 도로 눕혔다.

"내, 가서, 그 물이나 한번 시워언허게 보고 싶어 그런다. 실컷 바라보고 양껏 그 기운을 들이마시면, 내 속도 좀 뚫리고, 빼빼 마른 내 몸도 갈증이 풀릴 것 같어서.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어."

기어이 다시 일어나  앉는 청암부인의 늙은 눈매에 결연한 빛이  감돌았다. 이기채는 그 기색에 전율을 느꼈다. 어머니가 서른아홉 그 시절을  생각하고 계시는구나. 사위는 몸에 스스로, 힘차게 저수지를 파던 그 기를 불러들이려 하시는구나. 그것은 거역할 수가 없었다. 이기채와  율촌댁이 양쪽에서 부축을 하고, 안서방네가 양신을  받쳐든 뒤에 안서방이며 하인들이 줄줄이 따라나선 행렬은, 한 걸음 가다쉬고, 한 걸음 가다 또 쉬면서 제방에 올랐다. 순간 청암부인은 악, 아연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쪽은 아미 말라 쩍쩍 갈라진 저수지의 물 밑바닥이 싯누렇게 뒤집혀 웅덩이를 이루고, 조개바위 등허리는 거무튀튀 빛  바랜 회색으로 민둥하니 드러나, 덩그런 몸채를 헐벗은 채, 내리쪼이는 햇볕을 피하지 못해 불돌처럼 달구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청암부인은 질린 낯으로  망연히 서 있더니, 무엇인가 어루만지려는 것도 같고, 아니면 무엇인가 붙잡으려는 것도 같은 손짓으로 휘엇하니 허공을 한 번 젓더니, 그만 누가 떠다민 듯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너무나  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네는 말을 잃어 버렸다. 반타작도 못했으나 가까스로 거두어 들인 작물들 중에, 제일 좋은 상등급으로만 골라서 무엇을 좀 잡숫게 해 드리려 해도 소용이 없고, 자르르 기름이 도는 햅쌀밥이며 담백한 미역국도 마다하였다. 그네는 시름시름 앓는 기색이 짙어졌다.

"이제는 노환이신데, 저러다가 끝내 자리 보전하시는 것 아닐까."

사람들의 근심도 깊어졌다. 누렇게 바랜 안색으로 청암부인 곁에서 탕제 수발을 드는 율촌댁한테 이기채는  채근하듯, 소홀히 말라, 당부했다.  그 와중에 효원이 회임하였다. 이를 안 부인의 기쁨이라니. 병색이 완연한 청암부인의 온몸에 홀연 생기가 돌고, 누워 있는 시간보다 일어앉은 시간이 훨씬 더 길어졌다. 눈만 뜨면 효원을 찾았다. 오로지 그네는 생의 희망으로 효원의 출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해가 바뀌었다.

"노인의 병환은 해동할 때 위험하디 않소? 각별히 유념하시구려."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엄동설한 겨우네 추위 속에서도 어찌어찌  버티던 노환자들은, 오히려 날이 풀리면서 힘없이 허물어져 맥을 놓아 버리곤 했다. 마치 얼어서 단단하던 흙의 뼈가 봄 기운에 해토되면서 비글비글해지듯이. 이개채는 그것을 염려하였다. 천만다행으로 조상이 도우시고 하느님이 보살피서 효원이 아들을 낳아, 온 집안에 모처럼 화기만당 훈풍이 돌았으나, 그것이 청암부인이 이승에서 누린 잠깐의 마지막  즐거움이었는지도 모른다. 청천벽력, 뜻밖에도 강모의 '파면' 소식을 들은 청암부인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낙망하여 툭, 줄이 끊기듯 아득한 혼수의 벼랑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청암부인은 홑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강모는 가슴 복판에 화살이 박히는 것 같았다. 아아,  내가 할머님을 돌아가시게 하는구나. 강모는 청암부인의 마른 손을 쥐었다. 뼈가 잡혔다. 가냘프고 연약한 잎사귀. 바짝 말라 이미 예전의 모습을 찾을 길 없는 얼굴은, 뼈 위에 그대로 살가죽을 씌워 놓은 것이나 한가지였다. 도도록이 나온 이마와 움푹 들어가 거멓게 죽은 눈자위, 그리고 날카롭게 솟아오른  양쪽의 광대뼈, 주머니처럼 주름이 잡혀 있는 푸르고 초라한 입술, 펑하니 뚫려 구멍이 들여다보이는 코. 도대체 그 어디에 부인의 서릿발과 기품이 남아 있단 말인가. 땀에  젖은 허연 머리칼은 이상하게 섬뜩하기조차 하였다. (허망한 인생...... 인생 백년이 풀끝에 이슬이라 하더니, 할머니 같으신 어른이 이런 모습으로......) 강모의 가슴 밑창에서 우욱, 설움과 비애가 치밀어 올라왔다. 남치마에 옥색 저고리를 입고 꽃자줏빛 옷고름을 달아  입던 청암부인의 모습이 눈에  비칠 듯 생생하여 더욱 서러웠다. 그보다는  이미 노인만큼이나 쇠잔해 버린 자신의 젊음이 서러웠다.  겹겹으로 두르고, 싸고, 가리운 사람들의 무게가 겨웠다.  그리고 그 무게를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무기력이 서러웠다. 청암부인이 그렇게도 자신을 짓누르는 존재였던가. 가장 무거운 그 무게가 힘없이 가벼워져 버린 헐렁한 자리에 강모는 목이  메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버티어 그것을 견디어  보려고 했던 자리의 껍질이  터지면서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심약한 사람. 그는  소리를 안 내려고 어금니를 물었다. 터져라. 차라리 터져 버려라. 창자든지 심장이든지 핏줄이든지 힘대로 터져 나가 나를 파멸시켜라. 강모는 어금니를 맞물고 울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소행으로 할머니의 수명을 재촉하였다는 사실이  혓바닥을 널름거리며 기웃거렸다. 무섭고 두려웠다. 사실 이기채도 강모의  파면 사건을 겉으로 표내지 않고, 어쩌든지  큰 방에만큼은 안 들리게 하려고 애썼었다.  그러나 청암부인은 그 사실을 알고 말았다. 기동은 제대로 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의식은 희미하게 남아 잇던 청암부인은,  그 말을 듣고는 한동안 천장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