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 - 임어당
1. 훌륭한 사상도 좋지만
무엇을 행운이라 하는가
우리들은 모두 지상의 존재이다. 지상에 태어나 지상에서 자란다. 말하자면 70여 년 동안 길손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조금도 불행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 설사 움막일지라도 그곳을 가장 즐거운 움막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하물며 우리는 움막이 아니라 아름다운 땅 위에서 살고 있다. 이 땅위에서 무려 70여 년을 살아가는 데도 즐거워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배은망덕하다. 때로는 야심이 너무 지나쳐서 겸손하고 관대한 지구를 경멸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정신의 조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다면 이 육체와 정신의 임시 거처인 지상에 대하여 '어머니이신 대지' 라는 기분으로 참된 애정과 집착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이 지상의 생명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곧 자기 자신을 흙과 동일하게 느끼고, 겨울에는 봄볕을 고대하는 흙처럼, 느긋하게 참을성을 가지고 숲을 찬양해야 한다. 숲의 시인 도로는 아무리 실망에 빠져 있을 때라도 정신을 찾는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며, 자신을 찾는 일이야말로 정신의 할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의 행복은 스스로 두더지의 행복이라고 했다. 하늘은 실재가 아니지만 지구는 실재이다. 실재의 지구와 실재가 아닌 하늘 사이에서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행운인가?
참으로 신비로운 것
사람들은 언제나 정신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의 육체적 기능에 대하여 좀더 고찰하게 된다면 동물적이라고 하는 표현에 대한 불쾌한 감정도 다소 바뀌게 될 것이다. 분명 인간의 육체란 경멸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이해하고 보듬어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라고 나면 왠지 좀더 외경스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끔 이에 충치가 생기면 육체가 썩어버릴 징조라고 생각한다거나, 영혼의 행복만을 소중히 생각하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말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라면 단지 치과를 찾아가 치료를 받고 나은 이를 더욱 소중히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리하여 현재보다 더 큰 기쁨으로 사과나 닭 뼈를 씹으면 되는 것이다. 형이상학자는 이런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악마의 짓이라느니 어쩌니 하며 비난할 것이다. 작은 아픔조차 신의 어떤 경고라고 믿는 그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치통에 시달리거나, 낙천적인 시인이 소화불량에 걸리거나 하는 것을 보면 좀 짓궂기는 하겠지만 일종을 즐거움을 느낀다. 그들은 어찌하여 그런 순간 치통 같은 아픔을 무시하고 철학을 말하지 못하는가. 그렇다. 나의 말은 그들은 왜 자신의 창자에 대한 은덕을 잊고 쓸데없이 정신이나 읊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기실 우리에게 몸을 경이감과 신비감으로 바라보게 한 것은 과학이다. 그것은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전 동물계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일종의 감격이다. 과학은 정신 나부랭이나 외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지 그 신비에 빠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인류의 위엄이 정신만이 아니라 육체에도 있음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사람의 육체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체 내부기관의 활동과 그 상호간의 놀라운 작용을 알게 되면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 같은 황홀경에 빠져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체의 신비를 알려준 과학도 내부의 비밀스런 작용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인체밖에 있는 우주 만큼이다 신비롭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육체를 경솔하게 무시하면 안 된다. 그것은 정신과 함께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그것은 또 바로 나 자신이다. 신비스런 몸이 가져다주는 희열과 영광, 그 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 몸은 살아있다
사람의 육체는 신비 덩어리이다. 그것은 그 어떤 정신적인 감동보다 더 위대한 기적을 보여준다. 인생의 즐거움은 몸으로부터 시작되고 행복은 그런 자신의 육체를 깨닫고 그 능력을 사랑함으로써 시작된다. 우리 몸 안에서 만일 창자가 상처를 입었다면 어찌 될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창자는 즉각 모든 활동을 정지한다. 이런 일시적인 마비 현상으로써 변이 복강으로 새어나오는 것이 방지된다. 자발적인 치료 활동이 시작된다. 그것은 생명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자생력의 표현이다. 그리하여4,5시간 안에 창자의 상처는 아문다 설혹 외과의사의 바늘이 상처를 꿰맸다 할지라도 치유되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런 자연적인 생명 현상의 구현일 뿐이다. 우리들의 육체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육체를 경시할 수 있겠는가? 육체는 자연처럼 스스로를 조절하고 수리하고 움직이며 재생산해내는 고도의 정밀 기계와도 같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컴퓨터보다도 더 복잡한 기능을 가진 시스템이다. 육체가 정보를 처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는 중요하지 않은 서류는 깊은 창고에 저장해 놓고 당장 필요한 서류만을 눈에 보이는 가까운 곳에 놓아둔다. 그러나 오래된 서류가 필요할 때는 번개 같은 속도로 창고를 뒤져 꺼내오는 것이다.
우리들의 육체의 힘은 그뿐만이 아니다. 한쪽 신장이 사라져도 남은 신장이 그만큼 커져서 정량의 오줌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기능을 자체적으로 증대시키는 위력을 지닌다. 또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정상 체온을 유지하고 음식물을 생리 조직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화학 약품을 만들어 낸다. 더욱 오묘한 것은 인체가 생명의 리듬 감각과 시간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몇 시간, 며칠의 감각만이 아니라 수십 년의 감각까지도 가지고 있다. 즉 유년기와 성년기, 중년기를 조정하고, 성장을 멈추어야 할 때 멈추며, 재생이 필요한 부분은 적극적으로 재생시킨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적 지혜는 사랑니를 나게 않게 하지 못한다. 육체는 아무리 힘들어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그 덕분에 잘난 체하는 철학자들은 자기 몸 안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작용으로 말미암은 소음의 걱정 없이 마음껏 사색을 즐기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몸은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정신만은 아니었다. 생동하는 몸이 정신을 좀더 깊은 세계로 안내해 주는 것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들의 인생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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