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처럼 - 전혜린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피를 끓게하는 도시가 나에게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인이다. 열흘 가량밖에 있지 않았는데도 비인은 나를 미치게 한다. 비인의 골목을 거니는 기분, 호프만,스탈, 알텐베르그,츠바이크 등이 담론하고 기염을 토하던 다방들, 모짜르트가 [빌리아드]를 친 카페, 베에토벤이 맥주를 마시던 주막집들.
거리의 모퉁이마다 우뚝 서 있는 예술가의 조각들. 브라암스, 슈베르트, 모짜르트, 베에토벤,괴테, 쉴러, 슈트라우스....
거리의 이름도 그곳에 살던 예술가의 이름을 따고 있었고 오페라며 브르크 극장이며 음대며....
아뭏튼 비인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예술에 봉사하며 예술에 미쳐 사는 것이었다. 도시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내가 잊을수 없는 것은 교회의 매력이었다, 비인 교외로 코프렌츠행 버스를 타고 칼렌베르그라는 곳에 가 보았다. 정원 다방에 앉아서 바라보니 왼쪽으로 무한히 뻗어 있는 저 유명한 비인의 숲.... 슈트라우스의 비인의 숲의 이야기의 멜로디가 저절로 내 입술로 새어 나오지 않는가? 오른편으로 하늘 빛처럼 푸른 도나우 강이 끝없이 흐르고 있고 그 너머로는 은빛 안개속에 회색의 도시 비인이 꿈같이 흩어져 있었다.
이맘 때면(세모(歲暮)가 되면) 새삼스럽게 비인, 특히 그 교외의 주막에서 마신 헝가리 포도주며, 진짜 집시가 켜던 바이롤린의 피를 끓게 하는 선율이 그리워진다. 나도 집시처럼 정처없이 춤과 노래와 사랑과 점치는 일로써 생활하면서 온 세계를 방랑했으면! 이런 공상이 연말의 여러 가지의 무와 경비로 짓눌리는 부자유한 나의 정신 속에 통기구(通氣口)가 되어주는 것 같다.
196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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