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생각한다 - 전혜린
봄은 나에게는 취기의 계절, 광기의 계절로 느껴진다.
자연과 인간에서부터 어떤 사랑을 취하게 하는 강렬하고 새로운 생기가 발산하여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뜨겁게 고조된다. 사육제의 광기와 회색 수요일의 허망과 부활주의의 흰 나르시스꽃에 쌓인 길과 이런 나의 젊은 날의 추억들과 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뿐 아니라 내가 나의 첫 번 출산의 이적을 겪은 것도 사월이었다.
겨울생인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사실은 겨울이다. 언제나 가을만 되면 [내 계절]이여 빨리 오거라! 하고 기다리며 내 심신이 모두 생기에 넘치게 된다. 마치 목바른 생선이 물을 만난 것 같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내 계절은 지나고 말았다. 그와 함께 해마다 내 계절이면 나에게 찾아와 나에게 생의 애착을 주던 로맨틱도 동경도 가 버리고 말았다.
비가 오던 날 뮌헨의 회색하늘 빛 포도에 망연히 서서 길바닥에 뿌려진 그 전날의 카니발 색종이 조각의 나머지가 눈처럼 쌓여 있는 것을 바라보던 슬픔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부터 나는 봄을 슬퍼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그 허전함을 잊기 위해 도취와광기를 구하게 된 것이 아닐까? 미친 듯이 그로크를 마시고, 회전당구를 끝없이 회전시키고, 흰 수선화를 잔뜩 사들고 공원의 호수에 가서 백조에게 뿌려주었던 것도 모두 뮌헨의 봄에 있었던 일들이다. 혼돈과 벌써 삼십대에 감미한 비애와 도취.....이런 것이 나의 봄이었다. 지금 벌써 삼십대에 맞은 봄은 그렇게까지 강한 긴장감으로 나를 가득 채워주지 않는다. 그러나 관능을 흔드는 먼지 섞인 봄바람과 해이하게 풀린 연한 하늘을 보면 어떤 먼 메아리처럼 취기의 여음이 가슴속을 뒤흔든다. 그래서 막연히 거리를 걷고 있는 자기를 문득 발견한 때가 있다. 뮌헨에서라면 이럴 때 나는 공동묘지에 갈 것이다. 가서 조각과 꽃으로 에워싸인 조용한 어둠속을 돌아다닐 것이다. 이름을 하나씩 읽고 살았던 기간을 세어 보고 풀밭에 주저 앉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갈 곳이 정말 없다. 공원, 독일적인 의미의 묘지도, 미술관도 아니면 인적 없는 광대한 수풀도 이 도시에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먼~메아리 같은 광기를 가슴 속 깊이 꽉꽉 닫아 놓고 어떤 상실감에 앓고 있다. 내 봄은 언제나 괴롭다. 올해는 더구나 그렇다. 찬란했던 겨울과 결별한 후 나에게는 지칠 듯한 회한과 약간의 취기의 뒷맛이 남아 있다. 그것을 맛보면서 나는 아무 기대도 없이 끔찍한 여름을 향하게 된다.
196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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