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 이미륵 / 옮긴이 : 전혜린
나는 국경에 있는 커다란 강에 다다랐다. 도처에는 사람의 키만큼이나 큰 갈대가 여기저기 서 있었다. 밭과 논은 매우 드물어서 나는 잘 통과할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무장한 병정들이 순시하였고 총성이 울렸다. 도피자가 가장 많이 왕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새벽에는 더욱 총성이 잦았다. 나는 지극히 조심스러운 농부나 어부의 도움으로 다음 마을까지 인도되어 어떤 조그마한 어부의 초가집에 닿았다. 거기서 사공이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음날 밤에는 나와 똑같이 강을 건너려는 두 학생이 왔다. 그들은 나보다 더 어린 것 같았다. 창백하게 겁에 질려 있는 그 중의 한 소년은 열 일곱 살도 미처 안 된 것 같았다. 그는 말없이 앉아서 줄곧 앞만 응시하고 있었으며, 도망치려고 한 것을 후회하는 것 같이 보였다.그 이튿날 밤에야 어떤 늙은 어부가 나타나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달빛이 밝아 쉽게 발견될 것 같아서 떠나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사공은 달빛이 밝을 때만 국경 경비가 그리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그를 믿고 갈대밭 사이로 거의 알 수 없는 조그마한 길을 따라갔다. 이렇게 한 시간 남짓이나 도망쳐서야 한 작은 숲에 닿았다. 사공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저만치에서도 비슷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자 두 어부가 나타나 우리들을 인도하여 갈대 사이를 한참 더 걸어 마침내 강변에 도달하였다. 우리들은 깜짝 놀랐다. 여기 강물은 하구에 가까와서 강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마치 바다처럼 멀고도 넓었다. 우리들이 꼼짝 않고 서 있는 동안 어부들은 한참 서로 속삭이더니 잠자코 통나무처럼 된 배를 뗏목에서 풀었다. 이 배는 너무나도 작았기 때문에 두 사람만이 간신히 앉을 수 있었다. 한 어부가 우리들을 한 사람씩 일엽 편주에 태우고 넓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지극히 조용하고 소리없이 넓은 강 위를 노를 저으며 갔으므로 '마치 영원에의 항해같이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강 한복판에 들어섰을 때 우리들은 멀리서 몇 방의 총성을 들었다. 나와 함께 탄 어부는 웃으면서 잠자코 있으라고 손짓했다. 나중에야 그는 그것이 철교에서 내려 쏘는 경고의 총성일 것이라고 속삭였다. 빛나는 수면 위에서는 결코 우리를 발견할 수 없었으리라. 우리들이 대안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어부는 우리들에게 다음 중국 국경 도시까지 세 시간이 걸리는 길을 간단히 이야기해 주고는 작별했다. 우리들은 잠시 동안 그대로 서서 세 척의 배가 서서히 고국으로 노저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묵묵히 낯선 만주 땅의 자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들이 중국 도시에 도착하여, 어부가 가르쳐 준 대로 오랫 동안 한국 음식점을 고생스럽게 찾았을 때는 벌써 날이 밝았다. 우리 곧 잠에 떨어졌다. 그날 오후에 우리들은 서로 헤어졌다. 우리 셋 중의 가장 나이 어린 애는 장춘으로, 나이 많은 애는 심양으로 출발하였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중국의 거리를 걸어갔다. 사람들은 좁은 거리에 범람하였고 금문자로 된 많은 간판이 걸려 있었으나, 건물은 검고 사람들의 의복은 푸른 빛이었으므로 음울하게 보였다. 이곳은 한국 도시보다 훨씬 더 생기가 있었고 시끄러운 것 같았다. 도처에는 생소하고 이상한 냄새가 감돌았다. 나는 도시를 떠나 한 번 더 강을 보기 위하여 언덕으로 올라갔었다. 조용히 푸르게 빛나는 강은 저녁 노을에 잠긴 양쪽 언덕 사이의 모래밭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주 가깝게 반 킬로미터도 안 되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대안의 사람들의 얼굴을 거의 알아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물을 널고 있었다. 부인과 처녀들이 집 앞에 앉아서 저녁에 끓일 콩 껍질을 벗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아이들은 장난치며 씨름을 하고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우리 고국을 이 무한한 만주 벌판과 분리시키고 있는 국경의 강은 막을 길 없이 흐르고 흘렀다. 이편은 모든 것이 크고 음침하고 진지하였으나, 저편은 모든 것이 잘고 괘활하였다. 언덕에는 빛나는 초가집들이 신재해 있었다. 또한 많은 굴뚝에서는 벌써 저녁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고, 멀리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산맥과 산맥이 달아 물결치고 있었다. 산은 햇빛에 빛났다. 또다시 황혼의 아름다운 빛에 물들었다가 서서히 푸른 노을에 잠겨 갔다. 나는 먼 남쪽의 골짜기며 시내가 있는 수양산을 눈앞에 보는 듯했다. 소년 시절 언제나 저녁 음악을 들었던 이층탑 건물도 눈앞에 선했다. 나는 한 번 더 저 남쪽에서 들려 오는 황홀한 음악을 듣는 것처럼 착각에 빠졌다. 소리없이 압록강은 흘렀다. 어느새 날은 저물어 어두워졌다. 나는 다시 언덕을 내려와 철도로 걸어갔다. 기차가 북쪽으로 달리는 동안 음울한 하늘이 무한한 평야를 덮고 있었다. 이 드넓은 평야는 나를 무척 놀라게 하였다. 내가 고향에서 산과 언덕과 개울 그리고 좁다란 협곡만을 보아 온 까닭이리라! 나는 드넓은 평야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을 때, 언제나 약간 언덕진 것을 상상하였지 이처럼 평평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아무런 고지(高地)도 저지(低地)도 없이 그냥 평탄하기만 했다. 어디선가 폭풍이 일어나 두꺼운 먼지 구름이 몰려왔다. 나는 옛날에 몽고족과 만주족의 기마 대굼이 어떻게 해서 몰려온 것인지를 상상할 수가 있었다. 남쪽은 하늘이 맑게 개어 창백한 월광이 온 벌판을 비치고 있었다. 만주의 수도인 심양도 역시 이러한 무방비 평야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그 육중한 성벽은 무서운 성의 인상을 주었다. 중앙 아시아에서 불어오는 폭풍과 몽고 사막에서 날려 오는 먼지에 둘러싸인 이 성이 바로 반 아시아에 확장된 만주 세력의 본거지였다.
나는 마차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나는 거기에서 이전엔 마적이었고, 오늘날 만주 지방을 낡은 제도로 지배하고 있는 장작림 장군이 살고 있는 궁전을 보았다. 성벽 밖에 있는 처형장의 광경은 무섭기 짝이 없었다. 이 처참한 처형장의 한가운데에는 행위가 집행되는 큰 정자가 서 있었다. 그 주변에는 처형된 자의 묘가 있었다. 묘 앞에는 한결같이 비와 먼지로 퇴색된 나무 관에 이름, 연령, 직업이 적혀 있었다. 심양의 기차역에는 대합실이 있었다. 아무런 덮개가 없이 강한 정오의 햇빛이 비치는 곳에 나를 북경으로 실어다 줄 황색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기차는 곧 만원이 되었고, 으례 연발하는 기차의 출발을 기다렸다. 이미 가을인데도 날은 무더워 점점 견딜 수 없었다. 예정보다 기차는 한 시간 늦게 발차하였다. 이 급행차 출발에 모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자 곧 기차는 예상치 않았던 급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푸른 하늘 아래 옛날에는 중국과 만주간의 무인 완충 지대였던 7백 마일의 요동 평야를 지나갔고, 밭과 집과 묘지를 지나갔다. 한번은 근처에 항만이 나타났고, 또 한 번은 멀리서 산정과 산맥이 떠올랐다. 기차는 자꾸만 저 오랜 역사의 중국을 향해 달려갔다.저녁이 되었다. 승객들은 좁은 의자나마 몸을 기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씩 잠들기 시작했고, 또 차례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도 기차는 발해만을 따라 서쪽으로 질주했다. 한밤중에야 달이 반쯤 조명한 차내를 비치기 시작했다. 내가 잠깐 동안의 깊은 잠에서 깨었을 때 기차는 이미 정거해 있었다.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은 움직이지도 않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랐다. 아직 새벽의 반 어둠에 싸여 있었으나 높고 푸르게 빛나는 산이 하늘에 솟아 있었고, 그 위에는 회백색으로 빛나는 담이 하늘과 닿아 있었다. 그것이 2천 년 전의 위대한 제왕 전시 황제가 쌓게 한 만리 장성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깊은 전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역사책에서 배운 것은 결코 전설이 아니었었다. 2천 년 전, 으례 번영하는 나라에 침입하는 야만족을 방비하기 위해 돌멩이를 산 높이까지 짊어지고 올라가 이 요새를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사람들이 저 위에서 일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점점 더 낡은 성벽은 푸른 하늘에 밝게 빛났다. 중국과 만주의 국경 도시인 산해관에 정거하였다. 관리가 여행자의 모든 짐을 완전히 조사하기까지 한나절이 걸렸다. 모든 중국 사람은 처음에는 짐을 푸는 것을 거부하였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물건만을 이야기했다. 관리는 그것을 참을성 있게 듣고는 그래도 짐을 풀어야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요."
여행객은 물었다.
"그 속에 아편이 들어 있지 않나 봐야 하오."
"없습니다."
중국인은 또 한 번 말하고는 웃었다.
"그렇지만 짐 내용을 직접 봐야만 하겠습니다."
관리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이 새 규칙이니까요."
세 명의 관리가 마침내 우리 객차 안을 떠날 때까지 조사는 계속되었다. 우리는 숨을 내쉬었다. 차는 서서히 전진하였다. 긴 전실(前室)을 통과해서는 조심스럽게 이민족의 문지방을 넘었다. 만리 장성이 우리를 둘러쌌다. 나는 천진에서 북경으로 가지를 않고 시간을 아낄 심산으로 곧 남경행 기차를 탔다. 북경도 또한 볼 만한 도시이긴 하나 나 자신은 북쪽에 위치한 중국의 기질보다는 오히려 타타르 민족의 기질을 더 가진 이 도시를 보고 싶은 욕망이 컸었다. 남경해 열차에서 볼 것은 잘 익은 보리밭 사이를 따뜻한 가을 햇빛 아래 도도히 흐르는 강이었고, 붉고 푸른 돛을 단 수많은 돛배의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것은 수나라의 향락적인 황제가 제국의 남쪽으로 항해하기 위하여 만들게 한 바로 그 삼천리 운하였다. 그 배는 절세 미인이 비단 그물로 낮에는 천천히, 달빛 아래서는 더욱 천천히 끌고 갔다고 한다. 그는 이미 그 보다 이천 년 전쯤에 이 밭들을 방황하면서 인류에게 사치와 명성을 경고했던 위인을 잊었으리라. 우리는 공부자가 탄생한 노라나 - 지금의 산동 지방 - 를 다렸다. 그의 현명함 때문에 오늘도 중국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과욕하고도 부지런하고 평와스러운 민족이 된 것이다. 나는 얼마나 고분(古墳)에 순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의 묘에 참배하고, 적어도 그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그렇지만 나는 나의 갈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나는 그가 한 번쯤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마을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축복된 가을 하늘 아래, 숲속에 숨겨져 있는 회색 지붕이며 누른 곡식 이삭이며 나무와 관목이 있는 작은 언덕이 전개되어 있었다. 다음날 저녁 기차가 정거했을 때는 아주 캄캄하였다. 모든 사람이 기차에서 내렸다.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가서 바꾸어 타는지도 모르고 나는 그들을 따라 내렸다. 나는 갑작스레 잠이 깨었기에 정신이 없었다. 우리는 한 사람씩 좁은 통로를 지나 어둡게 빛나는 물처럼 보이고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은 평판 앞에 섰다. 수없이 많은 배의 작은 불빛이, 알지 못할 어둠 속에서 흘러 내릴 것 같은 물 위를 흐르고 있었다. 나는 어떤 까닭 모를 전율을 느꼈다. 나는 주저하면서 높은 건물을 돌아 선교(船橋)에 가서 크고 빛나는 원청정에 '양자강(揚子江)'이란 글을 읽었다. 그 역사도 오랜 양자강....
조그마한 배가 한 적씩, 많은 여객을 태워 어두운 강으로 나가 남경을 향하여 남으로 저어 갔다. 배 아래엔 그 많은 골짜기에서 흘러 내린 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숱한 시인이 그를 찬양했다. 이 강물은 오미산 아래의 평야에서, 적벽에서, 치산에서, 동정호에서 흘러 내렸다. 그처럼 자주 동정호에 관해서, 강남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던 나의 누이가 이 오랜 물위에 내가 탄 배가 떠 있는 것을 알기난 하랴? 그렇게 나를 위해 주던 어머니가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알기나 하랴? 그리고 그처럼 소동파를 이야기하던 아버지는 이미 잠들어 대지의 품속에 계시고....모든 것은 고요히 침묵을 지키고 어둠 속에서 뱃전의 물소리만이 철렁거렸다. 강을 건너자 수많은 목재가 깔리고 천정이 있는 길과 도로를 지나, 역마차가 나를 어느 여관으로 안내하였다. 이튿날 우연히도 같은 집에 기숙하고 있는 고국 사람이 남경의 여러 구경거리를 안내해 주었다. 이곳은 북쪽 도시에 비하여 모든 것이 섬세하고, 생을 즐기고 있었고, 심양의 이중 삼중의 담 대신 이곳은 운하와 수양버들이 있었다. 북쪽에서는 힘센 병정들이 총을 들고 순시하는데, 여기서는 섬세한 부인들이 배를 저었다. 가느다란 창살이 있는 집들, 날씬하게 올라간 지붕, 운하에 걸려 있는 목교(木橋)는 물과 잘 조화되어 빛나고 있었다. 오후엔 역마차를 타고 명태조의 묘를 참배하러 시외로 나갔다. 이 황제는 약 오백 년 전에 중국을 지배했고, 원제국이 파괴한 이전의 제국을 재건하였었다. 그는 애당초 절식을 하는 중이었고, 그의 첫 귀의자도 역시 걸인이었다. 그러나 그 중은 걸인이면서도 비밀 계획을 품었었고, 그의 눈에는 때때로 아는 사람만이 아는 초인적인 광채가 발했다. 한국 전설은 말하기를 이 걸식승이 한국의 황해도 태생이라고 했다. 작은 한국은 언제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그 중은 전 한반도를 걸식한 다음 만주로 갔다. 여기서 유명한 이성계 - 자기 자신도 중국의 길을 향하고 있는 - 를 만났다. 이 두 젊은이는 한 외롭고 늙은 여자가 살고 있는 작은 집에서 날을 밝혔다. 노파는 두 사람을 떡과 술로 대접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가난한 노파는 매우 고귀한 술잔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금으로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으로 된 것이었다. 장래에 자신 만만한 지배자로 자처하는 이성계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금잔을 나에게 주고, 은잔은 저 거지에게 줄 테지.'
그러나 노파는 이성계의 생각과는 반대로 하였다. 이성계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위대한 사람이 조그마한 일 때문에 쓸데없이 굴 것인가? 이튿날 이 두 사람이 노파에게 하직하고 막 길을 떠나려 할 때 노파는 이성계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저 사람 혼자 중국으로 가게 해라. 너의 길은 동방에 있다."
이 순간 중은 작별하려고 돌아섰다. 그때 이성계는 그의 눈에서 초인적인 빛을 보았다. 그 후 이성계는 한국으로 돌아와 왕조를 세웠다. 그때 그는 같은 시기에 중국에 명왕조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두 큰 범의 석상이 서 있는 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한 시간이 더 걸렸다. 석상으로 둘러싸여 급경사가 진 길을 천천히 올라가서 여러 개의 대문과 마당을 지나 거의 산처럼 크고 앞을 가로막은 둥근 언덕에 닿았다.
석양녘에는 높은 죽림을 지나 시내로 돌아왔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나는 젊은 남녀를 만났다. 그들은 이야기하며 노래를 부르면서 산보하고 있었다. 수천 년을 이야기해 주는, 돌아가는 길의 남경땅은 얼마나 좋았는지....어떤 버들가지도, 새소리도, 산들바람도 또한 어느 식당도 나는 친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저녁에는 그리 크지 않은 녹색과 금색으로 단장된 아늑한 방에서 우연히 만난 그와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그는 동양 사람이 잘 아는 중국 생활이며 남경의 구경거리를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여기서 공부한 뒤에 이웃 도시에서 선생 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서야 우리는 작별하고, 나는 위층에 있는 조그맣고 푸르게 칠해진 놋침대가 있는 침실로 올라갔다. 화장대와 흰 장농과 수놓은 양산이 좁은 방을 채우고 있었다.
[바다를 건너가며]
콜롬보에서는 비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잔교(棧橋)로 달려가 실론 섬을 소개하려고 하는 안내자를 따라갔다. 사이곤에서는 안내자가 없어 구경을 못했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들과 섞였다. 많은 사람의 무리가 천천히 시내로 움직였다. 도시는 조그마한 인도의 상점 외에는 유럽 양식의 집들이 서 있어서 서울이나 상하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우리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으나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배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침내 시내를 벗어나 대나무 못과 종려나무 재배지를 지나 어느 큰 집이 외로이 서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박물관이라고 했다. 거기엔 수천 주의 불상이 서 있었다. 안내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설명하고, 우리들은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완전히 피로할 때까지 그 안내자를 따라다녔다. 우리들 사이에는 많은 예술가와 승려가 있었다. 이들은 이 짧고 귀중한 시간을 불상 연구에 바치려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관람객의 대부분은 설명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고 불상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든지 조용히 서기만 하면 곧 주머니에서 안내서를 꺼내 읽었다. 그리고는 저 귀찮은 팁의 문제가 일어났다. 그것은 안내했던 시간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리고는 출범에 늦지 않기 위하여 숨가쁜 걸음으로 우리는 배로 돌아왔다. 이튿날은 구름을 쓸어 버린 것처럼 하늘이 깨끗하고 맑게 개어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순수하게 짙은 푸른색 하늘에서 태양이 비쳤다. 갑판은 거의 비어 있었다. 더위를 잘 견디는 것처럼 보이는 인도 사람들까지 모두가 시원한 선실에 남아서 책을 읽었다. 너녁이 되자마자 갑판은 활기 있어 보였다. 배에 모여 있는 모든 민족의 여행자들이 갑판으로 나와서 각기 자기들대로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 한국 사람들끼리도 다섯이 모여 말 잘하는 김씨의 자기 고향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고향 사람 하나가 약간의 술과 얼마 안 되는 프랑스 과자를 준비해 왔다. 우리들은 차례로 저녁 이야기 때에 약간의 먹을 것을 가져오는 것이 몇 주일 전부터 습관이 되어 있다. 이 과업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술과 기타 음료는 식사시에 부수물로써 마개를 딴 뒤에 제공되었고,이때 외에 더우기 저녁에는 기타 기호품의 판매는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들은 식당 보이에게 우리 중의 누구 하나가 거짓 발작을 일으켜 강장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게 하기엔 여간 설득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얼마 되지 않은 배당에도 우리들의 기쁨은 더욱더 컸다.
일시 한국 왕조의 수도였던 고도(古都) 송도에서 자라난 김은 유명한 집안의 수많은 일화를 알고 있었고, 그 것을 차례로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들은 뱃머리에 아주 가까운 교반 옆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장소였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파도 소리에 섞였다. 우리는 학문적인 이야기로 깊이 파고드는 중국 사람도 방해하지 않았고, 서로 속삭이며 이야기하는 인도 사람도 방해하지 않았다. 안남인들은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그들 숙소는 많은 상자로 만들어져 있었다. 한국어, 중국어, 인도어가 하나의 독특한 소리의 혼돈으로 짜여졌다. 때때로 일제히 조용해졌다가는 또 벌집처럼 와글거리곤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잠들기 시작하였다. 다만 우리 김씨만이 고향에 관해서 조용히 이야기했고, 여객선 포올르카 호만이 달빛 밝은 인도양의 어느 곳을 헤엄치고 있었다.
[마르세유 항구]
배는 지부티에 기항하였다. 이런 괴상한 이름은 내 평생 처음 들었다. 나는 우리 배가 석탄 때문에 이 외떨어진 아프리카의 한 모퉁이에 입항한다고 들었다. 이 항구는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래가 깔린 언덕에는 입구에 두 종려나무가 서 있는 단 하나의 흰 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일사병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불과 몇 사람만이 상륙하였다. 한국 사람들도 오랫 동안 궁리한 끝에 조그마한 보트를 타고 나무 한 그루 없는 타는 듯한 해안을 건너갔다. 직사 광선 아래의 모든 것은 비참하게 보였다. 돌로 쌓은 제방이며 모래 언덕이며 조그마한 정원을 뒤로 한 카페에는 흑인 아이들이 부채질하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 육지 내부로 들어갔다. 우리는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이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한 작고 외로운 집 앞에 섰다. 이것은 마치 인도의 학교처럼 보였다. 늙은 한 인도인이 벽 가운데에 앉았고, 약 스물 명의 어린이들이 벽을 따라 입구에 이르기까지 앉아 있었다. 모든 어린애 앞에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손으로 쓴 독본이 펴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원주민 마을에 갔다. 두 줄의 집들이 좁은 거리에 서 있을 뿐이었고, 길은 햇볕에 타고 있는 사막에서 다른 사막으로 향해 뻗어 있었다. 집 안팎에는 흑인 남녀가 서서 그들의 크고도 맑은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좁은 거리로 갔다가 속히 되돌아왔다. 사막 한가운데의 이 마을은 얼마나 외로와 보였는지 몰랐다. 우리들은 입구에서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곧 우리 배로 돌아왔다. 그곳엔 졸졸 흐르는 시내도 없고 과일나무도 물결 치는 곡식 밭도 없었다. 다만 두 개의 빈약한 그늘을 지워 주는 집의 대열만이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고요한 달밤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우리는 홍해(紅海)를 항해하였다. 어느 이른 아침 봉운이 나를 깨워 갑판으로 인도하였다.
"시나이 산."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주 먼 거리에 검푸른 빛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산정을 가리켰다.
그날 밤 우리들의 배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였다. 고생스럽게 대 여객선은 모래 언덕 사이의 좁은 물길을 간신히 지나갔다. 좌우로 쓸쓸한 풍경이 창백한 달빛 아래에 전개되었다. 천천히 우리들이 걷는 것보다도 별로 빠르지 않은 속도로 수없이 휘황 찬란한 창을 가진 배가 처참한 빈 사막을 미끄러져 갔다. 점차로 공기는 험악해졌고, 파도는 높아졌으며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갑판 위에 불었다. 다시금 봄이 왔다. 배는 고요히 흔들리면서 짙은 청색의 지중해의 하늘 아래로 나아갔다. 북쪽에는 크고 작은 섬이 나타났다.
봉운이 나에게 속삭였다.
"그리스 도서(島嶼)다."
그때 나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그리스!"
나도 부르짖었다. 나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고향을 비록 멀리에서나마 바라보았다. 산호(山弧)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안개에 싸인 채 그것들은 유럽 해변을 따라 갔다. 오후 늦게 파도는 높아졌다. 해는 두꺼운 구름 뒤로 사라졌고 점점 더 어두워졌다. 선원들은 돌아다니며 곧 태풍이 닥칠 것을 알려 주며 선실로 들어가기를 권했다. 곧 이어 굵직한 빗방울이 떨어졌고, 파도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차차로 갑판은 비었고 태풍이 불어왔다. 거선은 자꾸만 더 기울어지고, 바다의 거품 속에 마치 호두 껍질처럼 춤을 추었다. 배의 반이 파도에 잠기고는 곧 올라와서 다시금 깊이 가라앉으려고 하였다. 선실에서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배도 신음하고 '키이! 키이!' 소리를 내면서 폭풍우와 싸웠다. 그것은 밤새 계속되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제껏 한 번도 그런 폭풍우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에는 모든 것이 마치 환영처럼 사라졌다. 해가 빛나고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하였다. 배는 아무런 요동 없이 떠갔고, 시실리 섬의 에트나(이탈리아 시실리 섬의 활화산)에서는 봄바람의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우리들의 배는 유럽 땅을 밟기 위해 점점 더 육지를 접근하였다. 기선은 멧시나(시실리 섬에 있는 도시명) 해협을 지났다. 산이 가까워졌다가는 멀어졌다. 집들이 서 있는 언덕이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햇볕 든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보았다. 기차가 해변을 따라 터널로 들어가는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마침내 유럽 땅을 밟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은 감격해 어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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