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 - 사만타 글렌, 메리 페사레시
친절로 갚는 친절
자동차를 몰고 도로에 나서는 순간부터 전투 개시다! 나의 교통법규 제 1조는 그것이다. 내 도요타 자동차에 앉는 순간부터 차창 밖의 세상은 모두 적이 되는 것이다. 적들의 전력도 만만찮았다. 특히 건방지게 내 앞으로 끼여드는 녀석들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어떻게든 바싹 차를 들이댄 다음 가운데 손가락을 세워서 강력한 경고를 해줘야 한다. "엿 먹어라, 짜샤!" 가끔은 자동차 경주를 하자고 도전해 오는 적들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목숨 따위야 저만치 던져두고 한바탕 신나는 시합을 벌인다. 이른바 '스포츠 카' 라는 강력한 병기를 사용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울분을 삼켜야 했지만 말이다. 한심하게도 낙오하는 적병을 발견하는 날도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처량하게 비상등을 깜박이는 낙오병들. 넌 이미 진 거야. 그러게 미리미리 병기 점검을 해두었어야지. 피융! 엄지와 검지로 총탄을 한 방 날려주고 으하하, 신나게 지나쳐간다. 총탄을 보급받으러 들어가는 주유소 직원도 아군은 아니다. 현찰 아니며 상대도 안 하려드는 비열한 녀석들이 대다수니까. 말 한마디라도 친절하게 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넣을까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앞쪽만 노려보며 내뱉는다. "꽉꽉 채워봐!" 보급이 끝나는 즉시 적진을 향해 힘차게 발진한다. 도로 위의 철칙을 되뇌이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쿵! 지척에서 핵폭탄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내 핸들이 뱅글뱅글 미친 듯이 돌아갔다. 내 차는 다른 차들이 꽁무니에 꽁무니를 맞대고 늘어서 있는 고속도로를 3차선이나 가로 질러 아슬아슬 하게 미끄러져 나갔다. 그리고 간신히 왼쪽 갓길에 멈췄다. 정말 눈 깜짝할 사리에 일어난 일이었다. 숨을 제대로 쉬는데 1분이 걸렸다. 살아 있었지만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순환도로에서의 타이어 평크, 그것도 퇴근길 러시 아워에, 얼어죽을 빗길에. 타이어 교체는 무모한 것이었다. 그랬다가는 어뭄 속에서 차에 치여 산산조각날 게 뻔했다. 보행자를 잡아 먹을 듯이 쌩쌩 달리는 차들이 가득한 4차선 도로를 건너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말고기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 비상들을 켜면서 내 영혼은 멜로드라마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 최악의 패배였다. 나는 대단한 자기연민에 빠져서 앞으로 이틀뒤에 펼쳐질 장면을 그려보았다. 상복을 입은 내 가족들은 이별의 고통을 못 이겨 내 관에 몸을 던질 것이다. 채널이 수 억 잡히는 46인치 짜리 슈퍼 TV를 사려는 내 계획에 딴지를 걸었던 일을 두고 아내는 죄책감에 몸부림칠 것이다. 오, 내 차디찬 주검이 그녀의 발 앞에 놓일 때 얼마나 후회가 막심할까? 참담한 상상을 키우며 나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다. 제발 순찰 경찰이 던킨 도너츠 집의 아늑함을 두고 이 얼어죽게 추운 고속도로에 나와 있기를 바라면서. 한 시간이 지났다. 적들은 적십자 정신을 무시한 채 씽씽 잘도 내 달렸다. 날이 밝을 때까지 뒷자석에서 자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금색 폰티악 택시가 갓길로 들어와 내 앞에 멈췄다. 번쩍번쩍한 새 차였다. 택시의 창문이 내려가더니 친근해보이는 얼굴이 나타나 씩 웃었다. "타세요. 주유소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저 현금이 없는데요." 내 지갑에는 정확히 2달러가 있었는데 택시 운전사들은 수표 안받기로 유명했다. "걱정 붙들어 매고 타쇼, 친구. 내 이름은 무스타파." 멋진 목소리였다. 그의 음악 같은 카리브해 억양을 들으니 금세 태양이 반짝이는 열대지방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조라고 합니다." "조, 도움을 청하러 갑시다." 우리는 워싱턴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 속으로 묻혀들어 갔다. 그러나 무스타파는 전혀 짜증스런 표정이 아니었다. 혹시 진짜 천사? 심지어 무례하게 끼여드는 주제에 가운뎃손가락을 흔들어대는 적에게 손을 흔들어 주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울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있잖아요, 무스타파. 저건 인사가 아니에요."
"인사가 왜 아니예요. 여기 오면 자기를 기억해달라는 표시잖아요."
무스타파는 정말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었다. 이윽고 우리는 주유소에 도착했다.
"영업 끝났습니다. 가스밖에 없어요."
수리공이 딱딱 거렸다. 가스로 독살 당해볼래? 나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수리공을 노려봤다. "비 맞아요, 조. 들어갑시다."
무스타파가 웃으면서 주유소의 작은 사무실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세상에, 그 자리에서 무스타파는 힘 하나도 안 들이고 수리공을 설득했다. 견인 트럭을 몰고 무시무시한 밤길을 헤치고 나가 내 차를 가지고 오도록 말이다.
"70불이예요."
수리공이 말했다. 나는 지갑을 꺼내서 각종 신종 신용 카드를 보여주었다.
"현금이요."
"난 지금…."
순간 내 팔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무스타파가 윙크를 하더니 지폐뭉치를 꺼내들었다.
"이십, 사십, 육십 그리고 십을 더하면 칠십불이네요. 자, 리크, 최대한 빨리 부탁해요, 조한테는 지금 집에서 걱정하고 있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어요."
" 아, 그럼요."
리크는 새 친구를 기쁘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난 표정으로 얼른 동의했다. 아니, 무스타파가 이 친구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수난 수리공의 주머니에 맹인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큼직한 글자로 새겨진 이름이 보였다. 나 같으면 이 사람의 이름을 부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이쯤대면 나를 대하는 것과 무스타파를 대하는 수리공의 반응이 얼마나 다른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무스타파는 사람들의 좋은 면을 이끌어낼 줄 알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친절함이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무스타파는 진정으로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은 저절로 느껴져서 환한 빛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 친절한 남자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나는 재빨리 수표를 썼다. 거기에다 무스타파가 할애한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50불을 추가했다.
"너무 고마웠어요. 무스타파. 더 이상 당신의 시간을 뺏지 않겠어요."
"아뇨, 아닙니다. 아내는 세인트 루시아에 살아요. 겨울에는 여기 얼씬도 안 하죠. 그래서 퇴근 후엔 내 시간이예요."
그는 내 수표에 눈길 한번 안 줬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수표를 쥐어주었다.
"이거 현금으로 꼭 바꾸겠다고 약속해요."
"걱정말아요, 바꿀게요."
무스타파와 나는 수리공이 내 차를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세인트 루이스며 워싱턴의 택시 사업 그리고 내 가족까지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나눴다. 나는 다시 한번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직 아니예요, 조."
무스타파가 내 차 트렁크를 열더니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며 말했다. 그러자 리크까지 나섰다. "저도 돕겠습니다. 이 양반 빨리 식구들한테 돌아갈 수 있게 우리가 도와야죠."
무스타파와 리크는 나란히 서서 주유소에서 멀어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 카리브해 출신 친구가 수리공에게 커피 한잔하자고 초대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고, 나는 소외감까지 느꼈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상상했던 대로 몸져놉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다가 무스타파의 이야기를 듣자 당장 그 자리에서 감사 편지를 썼다. 두 딸도 따라서 썼다. 그러나 복잡한 일상 속에서 그 사건은 충분히 빛이 바랠 수도 있었다. 기껏해야 친구들과 잡담을 하면서 꺼내는 심심풀이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무스타파는 달랐다. 이틀 뒤 아내가 한 통의 편지를 말없이 건넸다. 봉투를 뜯자 50불이 떨어져 나왔다. 무스타파의 편지도 함께였다. '조, 당신의 돈은 받지 않을래요. 언젠가 누가 나를 도와주면서 그 대가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더군요, 당신에게 바라는 것도 그것뿐이에요. 다른 사람을 도우세요. 당신의 작은 도움을 한 사람씩 거칠 때마다 불어나는 친절의 눈덩이로 생각하세요. 그러다 보면 그 눈덩이가 결국 세상을 덮을 만큼 커질 수도 있을 거예요. 당신의 친구, 무스타파.' 내가 과연 내 친구의 이상에 값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나는 도로에서 전투복을 벗고 온화한 민간인으로 예편했다. 차 수리 기술은 하나도 없지만 길가다 차가 고장나서 서 있는 사람이 있으면 적어도 내려서 함께 걱정해준다. 직장이나 모임에서도 내 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무스타파의 기원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우리 모두가 조그만 친절을 베풀어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면서.
- 조 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