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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그리고 죽음에 관한 단상 - 윤영환


‘더 살아야 할 내 인생만큼 행복해야 해. 글방을 만들어 주지 못해 미안해.’

이것이 내 아내의 유언이었고 이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한순간 고아가 되었고 처자식도 없는 인간으로, 친척도 형제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내 삶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고 희망은 꺼졌다. 독신주의자를 따랐던 이 여인은 결국 나를 굴복시켰고 보살폈다. 1층 분식집에서 단무지를 꾸어 밥상에 올려놓을 때 나는 펜을 접었다. ‘기필코 이 여자를 굶기지 않으리라.’ 이 한 생각으로 살았고 돈독이 올라 돈이 되는 건 뭐든지 했다. 의외로 돈 버는 건 쉬웠고 아파트를 분양받던 날 이 여인은 하늘로 갔다. 나는 뭔가.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나를 흔들지 못했다. 그녀는 내 인생에 어떤 존재였던가.

잠시 살다가는 그녀의 일부? 나락으로 떨어졌고 술만 배신하지 않았다. 조건만 갖추어지면 늘 곁에 있고, 그렇게 술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지금 장애인으로 사는 이유는 이 술 때문이다. 가난한 글쟁이 만나봐야 별 볼 일 없다고 수도 없이 말했지만, 그리고 도망치듯 이사를 했으나 그녀는 찾아왔다. 멍청한 짓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때 묻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나를 감동하게 했다. 은행과 동사무소의 일들을 가르치고 사회생활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나는 교육했다. 티끌 하나 없는 이 여인은 나만 바라봤고 언제나 상의했다. 나의 조언을 구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즐거워했고 나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주었다.

인간의 순수함은 어디가 정점인가. 필요 이상으로 순수했고 맑은 아이였다. 나만 바라보던 그런 아이가 숨이 멎을 때 나는 기도했다. 이건 비굴한 신의 선택이라고. 아무리 필요해도 지금은 아니라고 기도했으나 결과는 장례식장이었다. 그녀의 식은 입술에 내 입술을 맞추고 화장터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성당에서의 신부님 기도문도 수녀님의 눈물도 생각나지 않고 ‘너의 유언대로 사마’ 하는 생각이었다. 아내의 유언은 나에게 그렇게 짐이 됐다.

어떻게 살면 아내 몫까지 행복할까? 싫어도 웃으면서 살아야 하나? 나는 외부와의 만남을 끊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죽음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읽은 책은 많아도 죽음에 관한 책은 없었음을 알았다. 탐구했고 죽음에 관한 이론을 갖게 됐다. 부모를 보낼 때 딱히 슬퍼하지 않는 이유는 준비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을 다했을 때 우릴 떠난다. 준비하지 않은 죽음은 매우 슬프며 인생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된다. 우리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나와 마주 앉은 그 사람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것이 깨지면 우리는 절망의 늪으로 간다. 한편 ‘어떻게 태연할 수 있는가?’ 묻는다. 그렇지 않다. 전혀 태연하지 않으나 살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남은 삶을 살아야만 하는 모진 운명에 늘 처해있다.

누군가 말하는 저 하늘 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면 만나서 할 말은 많겠지만 나는 묻고 싶다. ‘이승에서의 나의 남은 삶을 보고 있나?’ 나는 아내의 죽음을 세계의 순환으로 보고 있으나 만난다면 물을 것이다. 너의 남은 삶을 난 행복하게 살았냐고. 유언 대로 됐냐고. 우리가 맺고 있는 인연의 고리는 끊을 수는 없다. 어차피 맺어져야 하고 그 고리를 끌고 가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어른이 되어 말하지만 살아지는 대로 살지 말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유언을 죽기 전에, 삶에 미련이 남아 하는 말 따위로 생각한다. 이 사람이 숨이 멎기 전에 하는 말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다.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심을 숨길 필요가 없기에 하는 말이다. 더 이상 가식적이거나 치장할 필요가 없는 말이 유언이다. 그것이 아무리 유치해도 정확히 듣고 마음에 새겨야만 한다.

봄이 오면 봄을 노래하는 시인들의 가사를 본다. 시인이 노래하지 않으면 봄은 오지 않는가? 자연은 돌고 돌며 인생사도 돌고 돈다. 변하지 않으며 끝없이 반복한다. 굳이 노래하는 이유는 뭔가.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자연의 체계에 저항한다면 죽음뿐이다. 더 이상 봄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유언은 자연이다. 그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는 내에서 말함이 유언이다. 인간의 유언은 자연을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자연으로 가고 당신도 간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당신은 죽는다. 이 죽음이 삶의 한쪽에 듬직이 있을 때 우리는 평화롭다. 번뇌는 이 죽음을 부정할 때 일어선다. 예수의 말도 공자의 말도 부처의 말도 죽음을 이해시키지 못한다. 아는 것은 ‘나’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외롭고 추하다. 별것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의 늪에서 늘 허우적거려야 하는가? 지구는 잠시 나를 빌어 이 세계에 온 당신을 환영하니 조용히 왔듯 조용히 가라는 말뿐이다. 여기엔 의미도 없고 철학도 없다. 그러나 지켜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이다. 어디에서 왔길래 어디로 가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방인으로의 삶을 인정하자. 삶이 평화롭다. 내 눈에 내 지식에 걸맞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심기를 접기를 바란다.

인간은 공룡처럼 잠시 살다가 지구를 떠나야만 하는 운명이 있다. 영원할 줄 아는가? 생은 멸을 동반한다. 사랑이 이별을 동반하듯이 인간의 삶은 정해져 있다. 울어야 할 필요도 없고 슬퍼할 겨를도 없다. 당신의 뼛가루가 지구 어딘가에 묻힐 때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이성을 갖춘 인간의 존엄이고 생존의 미학이다. 우울할 시간은 없다. 인류학의 종점은 나눔의 정설만이 종점이다. 나누다 가는 삶은 유언이 없다.

문맹이거나 문화에 적응을 못 하던 시대가 있었다. 미개인이라 불렸고 문화인이라 불리던 자들에게 죽임을 당해도 동물과 같은 취급을 당했다. 쉽게 말해 사냥감이었다. 볶아 먹기도 하고 삶아 먹기도 했다. 생명을 지닌 사람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고 우주의 끝을 볼 때 우리는 존중해야만 한다. 생명을 멸시할 때 우리는 유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다음 생을 믿든 안 믿든 상관없다. 현존하는 숨 쉬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자.

유언은 그 사람의 마지막 발언이고 숨을 쉬고 있는 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다. 자본주의하에 우리는 이 치장하지 않은 유언을 우습게 보고 있지 않은가. 못다 이룬 꿈들도 나오는 이 휘황찬란한 문구에 삶의 진리가 담겨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삶을 보내며 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에 우리는 귀를 기울일 때다. 유언에는 진리가 숨어있다.

방향을 잃을 때 이 유언 한마디는 힘을 준다. 반드시 행복해야 하는 이유를 주고,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인간은 유념하지 않는다. 그저 흔한 말이라 치부한다. 이 흔한 말이 진리임을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기에 고통스럽게 삶을 끝낸다. 내가 사는 삶이 의미 없거나 매우 흔한 것이라 믿는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날이다.

우리네 삶 속에서 한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굿에도 살풀이가 있다. 악귀인 살은 그 한을 풀어줘야 대화가 된다. 한이 맺힌 귀는 저승도 못 가고 떠돌게 된다. 우리가 믿는 토속신앙이 수천 년 이어오는 이유는 찜찜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에게 미안하고 해주지 못한 책임감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엉켜있는 것을 풀어주는 첫 단어가 유언이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뱉을 수 있는 것이 유언이다. 유언은 여한 즉, 남은 한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다.

듣고 나서도 삶이 여전하다면 문제가 있다. 우린 유언을 과거와 달리 우습게 본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하는 말쯤으로 여긴다.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문장을 남기고 떠날 때 우린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 문장을 풀어줘야 하는 게 인간이다. 그것이 살풀이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유언을 들어보지 못했나? 상관없다. 그 사람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유언을 예상할 수 있다. 대부분 경전이거나 바른 말이다. 지키지 않는 우리의 언행을 되돌아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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