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44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자연스러운 것을 방해하는 것들 - 윤영환


느낌으론 하루 만에 가을이 가버린 것만 같다. 거리엔 아직 매달린 잎들이 많은데 겨울이 잎사귀들의 삶을 재촉한다. 아니, 아마 죽어버린 것들이 산 듯 매달려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방 안 공기가 몹시 차다. 곰팡이 냄새나는 옷가지를 뒤져 하나 걸쳤다. 그리 해도 손 발가락이 굳어 감각이 둔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갈 때나 도서관 갈 때, 아니면 술이나 담배가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내 방을 벗어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얼어 죽지 않은 것이 여간 묘한 게 아니다.

은행원, 포장마차, 보험설계사, 야구장 행상, 통닭 배달, 프로그래머……. 살며 경험한 직업이 서른 가지 남짓 된다. 생각해보면 조직 아닌 곳이 없다. 노점상을 해도 노점상연합회가 있고, 주변 노점상들과 비위 맞춰야 하고, 회사는 상명하복이고, 다른 직업은 나만의 시간이 없다. 나는 지금도 어떤 조직에 소속되는 일을 지극히 싫어한다. 그래서 혼자 산다지만 이 삶도 소속된 삶이다. 그들이 없으면 난 막막하니까. 그들이 만든 도서관을 가야하고, 그들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찾아가야 하고, 그들이 만든 책, 은행, 가게, 가스, 전기들을 써야 하니까. 이미 주민등록증이 소속된 사람이라 말하고 있잖은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주민등록증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천장을 보며 한숨 돌리다가 연기가 보여 당연히 담배 연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입김이었다. 냉방이니 입김이 나는 것은 자연(自然)스러운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삶이다. 자연스럽지 않으면 불편하다는 말은 얼마든지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반증한다. 그런데 굳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참고 살아야만 하는 일들이 지천으로 널렸다. 도를 통했다 해도 이해가 안 가는 경우다. 사람들은 나를 ‘은둔자’라 하지만 나는 홀로 앉아 세상을 본다. 당신들을 보는 ‘관객’으로 표현해야 맞다. 답답한 건 당신들이다. 지금 내 모습은 참으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다. 나는 바지 끝이 닳아 나풀거리고 여기저기 구멍이 난 25년 지난 바지를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다시 주워 왔기 때문이다. 다시 주워 오지 못하는 경우라도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 내가 어머니라도 단벌을 고집하는 자식을 위해 자연스레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벌어진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 겨울이 들어선 오늘 저 나뭇잎이 왜 떨어졌는지, 내가 왜 주민등록증을 가졌는지, 추억은 왜 생각나며 왜 그리워하는지,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조차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자연이라 하는 것이다.

나무가 의자가 되어 오랜 세월 사람 종노릇 하다가 썩거나 쓸모없을 때 인간에 의해 부서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늙어 죽는 나무와 다르지 않다. 모든 물건은 물건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사 갈 때 당신도 자연스레 버리는 물건들이 있지 않은가? 남들 걸리지 않는 암에 걸리는 것도 당신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다. 반대로 남들 걸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 것도 당신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다. 못 받아들여 발버둥 치는 것을 부자연스럽다 말하지만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자. 나무를 만들지 못하는 존재가 나무로 의자는 만들지 않던가. 의자를 만들어 놓고 나무를 만들었다고 하지는 않지 않나?

기뻐 울고 슬퍼 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지만, 스스로 또는 강제적으로 참는 것은 보기 안쓰럽다. 자연은 이유이며 그 이유를 거부하면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부자연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 겉치레와 주둥이로 포장하며 사는 것이다. 주둥이 포장의 달인은 자신의 습관을 자연스럽다 우기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나처럼 못된 습관을 고치기 싫어 스스로 그러하다고 말하는 아집 꾼이 가장 추한 인간이라 말해도 좋다는 뜻이다.

오늘은 어머니 태어나신 날. 전화 드렸더니 “네 고집에 가스 땔 일은 없을 테고 전기장판은 샀냐?” 물으신다. “벌써 샀죠. 바꾼 연탄보일러는 잘 돌아가요?” 라고 말을 돌리며 전선을 통해 생신축하 드린다며 이래저래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전기장판을 살 형편이 못된다. 따라서 샀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것이다. 주둥이 포장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이에 어머니는 말씀, 나는 주둥이, 정치인은 아가리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나라에선 이 세 가지를 자연스럽다 말하는 것이다.

독재의 탄압을 참고 지내는 것도, 참지 못해 뛰쳐나가는 것도, 다음 정권을 기다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의 흐름 안에 여러 갈래로 나뉘지 않는 통일된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나의 흐름으로 사상과 철학이 일치된 사회는 없다. 기네스북에 오른 장기 독재 국가 북한을 보자. 목숨을 걸고 태어난 조국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바로 그 탈출을 자연스럽다 말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만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고 죽는 것처럼 배고프면 밥을 찾는 것처럼 고통스러우면 탈출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내 삶을 순간순간 보며 자연스레 사는지 부자연스러운지를 스스로 감시한다. 살며 작게나마 깨달은 것은 고통이 많으면 많은 삶일수록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다. 내가 그간 한심하게 생각했던, 불쌍하다고 손가락질했던 삶이 참으로 자연스러운 삶인 것이다. 이 사회가, 우리들이 얼마나 포장된 삶을, 포장된 입을 놀리며 사는지 안다면 참으로 부자연스럽게 살았다는 걸 느낄 것이다. 알았다면 이제 이웃으로 눈을 돌려야만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토닥임이다. 자연(自然)을 순우리말로 옮긴다면 어울림이 아닐까 한다. 지구에서 사람만 자연과 어울리지 못한다. 사람은 자연스러운 생물이 못된다. 자연을 파괴하며 부자연스레 살다가 오리혀 자연스레 흙으로 가는 것이 사람이다. 당신은 자연스러운 사람인가 물으면 부자연스레 듣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포장이 두꺼운 사람일수록 자연스레 입이 화려하다. 그 입에 길든 귀도 자연스레 넘어간다. 부자연스러운 조미료에 길든 혀처럼 자연스레 간사한 혀에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혼(魂)이며 후에 깨우칠 때 혼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기당하고 배신당하는 일들이 모두 혼났던 것이다. 부자연의 근본이 혀이며 혀의 수장이 뇌다. 간단하지 않은가? 자연스레 살고자 하면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바른 철학이 가득 차면 입은 다물어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에게 신바람 주는 말도 신중할 일이다. 세뇌를 깨우침으로 속이며 사는 정치인 같은 종교인처럼 부자연스러운 삶도 없다. 나처럼 깨우치지 못한 사람만이 떠드는 것이지 깨우친 자는 말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 깨우친 분이 돌아가셨다. 나는 양평에 갈 때마다 오랜 세월 시집이나 시낭송 CD를 선물로 들고 갔었는데 그분은 밥과 커피를 대접할 뿐 1박2일간 “술 줄까?” 말고는 말이 없는 분이셨다. 질문을 던지기 전엔 절대 입을 열지 않는 분이셨다.

“제가 온 것이 부담스러우신가요?”
"왜?”
“아니... 말씀이 없으셔서요.”
“네가 내게 말을 걸지 않으니 네가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뒤로 더 편해졌다. 분위기 띄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끝없어 보이는 지식에 감탄하며 끝없는 화두들이 오갔다. 나는 툭하면 차를 돌려 솟대가 높이 솟아있고 삼족오가 문 가득 그려진 형님 집을 찾곤 했다. 살며 그분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분 못 봤지만 지나치게 일찍 가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자연스레 가셨다 믿고 싶지만 아버지를 보낼 때처럼 부자연스레 보낸 것이 아닌가 한다. 나 역시 자연스레 가야 할 것이다. 가기 싫어하는 발버둥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지듯, 때가 되면 사람도 오가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황한 문장이 자연을 지배하는 썩어가는 세상이다. 자연을 거부하는 부자연스러운 군상들조차 자연스레 사라지리라 믿는다. 종교가 “있다”라는 말은 종교가 “없다”라는 말과 같다. 없는데 있다 할 수 없고 있는데. 없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있다”라는 말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기 때문이다. 있으면서 없는 듯, 없는데, 있는 듯 사라졌는데 다시 태어나는 그리고선 죽어 없어지는 것들을 지배한다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은 없다. 평생을 찾아보라! 인간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이 있는지. 자연은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았다. 부자연스러운 일은 모두 인간이 만든 악행이며 그것은 모두 입에서 시작한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 시사문단 한풀이와 죽음 그리고 배려 - 윤영환 風文 2023.10.19 670
20 샘문학상 [한국문학상] 유언 그리고 죽음에 관한 단상 - 윤영환 風文 2023.10.19 547
19 샘문학상 [한국문학상] 인간의 공전 - 윤영환 風文 2023.09.22 994
18 시사문단 가면 - 윤영환 風文 2023.04.16 807
17 시사문단 절대고독찬가 2 – 윤영환 風文 2023.04.16 883
16 시사문단 네 시간 - 윤영환 1 風文 2023.04.16 586
15 시사문단 아내에게 - 윤영환 風文 2023.04.16 537
14 화성시 나무 그늘서 - 윤영환 風文 2023.03.25 661
13 샘문학상 [특별창작상] 씨 뿌리던 사람 - 윤영환 1 風文 2023.03.25 615
12 샘문학상 [특별창작상] 언제나 네 곁에 2 - 윤영환 風文 2023.03.25 563
11 샘문학상 [특별창작상] 사랑이란 - 윤영환 2 風文 2023.03.25 566
10 시사문단 [등단수필] 기억 속 사진과 영상 - 윤영환 風文 2023.03.25 517
» 시사문단 [등단수필] 자연스러운 것을 방해하는 것들 - 윤영환 風文 2023.03.25 442
8 시사문단 [등단시] 언제나 네 곁에 - 윤영환 風文 2023.03.25 538
7 시사문단 [등단시] 절대고독찬가 - 윤영환 風文 2023.03.25 534
6 시사문단 [등단시] 그림자 - 윤영환 風文 2023.03.25 608
5 시사문단 [등단시] 그리움 - 윤영환 風文 2023.03.25 615
4 시사문단 [등단시] 이동식 레이더 - 윤영환 1 風文 2023.03.25 582
3 시사문단 [등단시] 갔나봐 - 윤영환 2 風文 2023.03.25 575
2 시사문단 [등단시] 초침 - 윤영환 風文 2023.03.25 642
1 화성시 엄마와 솜이불 file 風文 2022.10.27 75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