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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1 16:48

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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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남의 죄는 잘도 보면서 내 죄는 왜 보이지 않는가.
남을 보며 만족스럽지 않음은 느낀다면 나는 나를 만족해하고 있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웅장했던 초심은 어디로 가고 게으른 나만 보이는가.
좋은 말 좋은 글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나는 왜 실천하지 않았나.
나도 안 하는 실천을 왜 남에게 가르치려 했던가.
남에게 성찰을 권하면서 나는 왜 성찰을 게을리 했던가.

지금 생각해봐도 나의 초심은 대단한 각오였다. 그 초심은 작심삼일이었나.
한번에 이루지도 못하고 조금씩 꾸준히 이루지도 못하는 꿈은 말대로 그저 꿈이었나.

초심을 거꾸로 추적할 필요가 있다.
육신의 삶은 앞으로 가더라도 마음은 초심 찾아 거꾸로 가야한다.
무릎을 탁! 하고 칠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말이나 생각이 아닌 실천으로만 가야한다.
어느 누구도 내가 걷는 이 길을 대신 못 가준다.

부지런함도 게으름도 한 곳에서 빅뱅 했다.
한 순간 터진 폭발로 꿈은 노력이란 끈을 꽁무니에 달고 날아갔지만 나는,
노력이란 끈을 끝까지 잡지 못했다.
힘들다는 유혹으로 게으름이란 안락의자에 앉아버렸다.
꿈은 보이지 않을 만큼 가버렸지만 노력이란 끈은 여전히 내 앞에서 살랑인다.
안락의자를 걷어차고 실천을 손에 쥐고 노력을 잡자.
수 없는 굴곡을 지나면 초심이 꿈을 안고 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꿈을 안아보는 날엔
다른 꿈이 빅뱅 할 것이다.
그날 참으로 웃게 되지 않을까.
이미 실천으로 달려온 경력이 있잖은가.

글이 꿈이면 벗도 글이다.
늘 같이 걷는 벗을 너무나도 긴 시간 동안 외면해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도 난감하다.
글을 탐구하는 안내서는 내가 글과 손잡기 전이다.
말을 걸지도 않으면서 탐색만 하면 내 친구라 말할 수 없다.
알고 싶으면 손잡고 같이 걷거나 황당하지만 직접 물어보면 된다.
“글아! 넌 내 초심이니?”


수많은 초심들.

입학할 때, 입대할 때, 전역할 때, 첫 출근 때, 결혼식 때, 매년, 매 십년, 아침마다…….

초심엔 나쁜 생각이 들어가지 않는다. 잘 잊어버리는 것도 초심이고 그래서 찾으러 다니는 것도 초심이다. 초심대로 사는 건 어렵고 힘들어서 습관, 유혹, 편함이 초심을 앗아가기 쉽다. 초심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그 때 마음먹었던 그 초심이 올바른 삶이라는 도덕적·합리적 가치판단이 자기 철학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고, 지금 내 삶의 양식을 초심이라는 거울에 비추었을 때 부끄럽기 때문이다. 초심은 늘 곁에 있고 언제나 꺼낼 수 있는데도 우리는 늘 초심을 찾는다고 말한다. 초심이 내 안에 존재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초심을 낸 것도 나고 잊은 것도 나고 찾는 것도 나인 셈이다.

누구나 첫 마음을 발현할 때 짜릿함을 느끼며 심장박동도 빨라진다. 설레고 기대되며 첫 마음대로 살 때 다가올 미래를 떠올리면서 흐뭇해한다. 그렇다면 초심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왜 인간은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환경, 새로운 목표가 생기면 초심을 낼까. 닥친, 닥치게 될 일들을 미리 예상하며 내놓은 자기 지침서가 아닐까. 초심은 본능에 가깝다. 초심을 어떻게 내어야 하는 안내서 따윈 의미가 없다. 각자 모두 다르기 때문에 초심에 표준안이나 관련 법률 따위도 없다. 성장, 교육, 가족, 친구, 스승 등 자라온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초심도 다르다.

초심에 빗댈 단어가 하나 있다. 각오(覺悟)다. 각오는 협박의 의미가 없다. 성찰하라는 말과 같다. 깨달으려 道를 구할 필요도 없다. 간단하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를 물어보면 된다. 스스로 물어 볼 때마다 나는 잘 살고 있지 않다는 답을 낸다. 각오하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처럼 오늘 내가 죽으니 오늘을 잘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없다. 여기저기 게으름이 보이고 언행뿐 아니라 마음속에서도 게으름이 보인다. 어떻게 살아야하는 법들은 작은 지식으로나마 안다고 해도 실천이 어렵다. 이럴 때 꺼내 드는 것이 초심이다. 초심을 꺼내 들 때마다 쥐구멍을 찾듯이 부끄러워한다. 가장 큰 문제는 초심을 꺼내만 들고 실천을 안 하는 데 있다.

끼적거리다 보니 반성문이 돼버렸다. 쉬는 시간엔 반성만 하나보다.
더 쓰다가는 인간쓰레기라는 단어까지 나올 지경이다.

자~ 커피한잔 마시고 다시 꿈이 끌고 다니는 노력이라는 끈을 잡으러 가야겠다.


오늘문득 : 2011.12.21. 16:37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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