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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16:22

비 내리는 어느 날

조회 수 12852 추천 수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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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어느 날

빗소리에 깼다. 얼마나 잔걸까. 몸이 천근이다. 뼈마디마디가 곤하다.
어릴 적,
밤새 끙끙~ 신음소리로 뒤척이시다가도 새벽 5시, 밥도 마다하고 서둘러 나가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늘 아버지를 철인으로 봤다. 지금 나이에 안다. 아버지는 철인이 아니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들만이 지는 짐을 늘 지고 다니던 그냥 아버지였다. 오늘 출근하지 못했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아버지보다 못하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할 일을 해야 할 텐데 미안함이 인다. 험한 일 시켜 미안타.

방이 빙빙 돌다가 겨우 진정 된다.
책장에 책들 이름이 보이면 진정 된 것이다. 자가진단법이다.
냉장고에 먹다 남은 막걸리가 보인다.
노가다와 술은 뗄 수 없나보다. 그리보면 노가다도 예술로 봐야할 듯하다.

어제 침을 맞을 때 의사가 금지해야할 여러 가지를 일러줬는데 몇 가지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영어 단어 10개를 외우게 하고 자고 일어나 몇 개나 기억하는지 확인하는 대학실험이 생각난다. 하룻밤을 자도 잊는 것이 많은데 수십년을 살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았겠나 떠올려 본다.

모니터 왼쪽에 펼쳐진 창비로부터 받은 동시집이 책걸이에 서있다.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머리엔 VBA가 떠오르고 멋진 엑셀프로그램을 만들던 옛 생각도 난다. 일터 동료들이 원하는 게 많았는데 주문하는 대로 만들며 만족해하던 그때 그 마음이 떠오른다. 수학은 즐거운 것이었다. 지금 공부하는 수사학보다 즐거웠다.
‘시인마을’사람들이 주문하는 대로 누리집을 수리하고 제작하며 기뻐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문학으로 가는 길’ 전신인 자유문학을 만들며 돌아가신 두 형님도 생각난다.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이룰 것도 있다. 꿈을 마음에만 간직할 때는 지났다. 꿈을 드러낼 때가 왔다는 걸 늘 느낀다. 드러내지 못하면, 보여주지 못하면 꿈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럴 여건이 되질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싶다. 묵은지가 다 되어 곰팡이가 설고 있다. 곧 버려지기를 기다리는 썩어버린 꿈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며칠 전 회사 비품실에서 만년필에 잉크를 채웠었다. 문병을 가기 전 두 권의 책을 두 분께 선물하려고 표지 뒤에 쾌유를 기도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잡은 펜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 쓰는 글은 내가 나를 향해 쓰는 글보다 아름답다.
끼적일 때가 가장 즐겁다. 뭔가를 쓰는 행위가 더없이 행복하다. 잊혀도 잊어도 사라져도 쓸 때만은 참으로 행복하다.

나는 글을 쓰면 글을 남긴 시간을 하단에 적는다. 얼마 전 읽은 안도현의 책(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속에서 글을 쓴 날짜, 시간 쓰지 말라는 질책을 읽었다. 출판물에 누가 시간 적던가? 나는 그런 책 못 봤다. 제 발 저린다고 왜 내 발이 저린지 원…….
요즘 읽는 책이 있다. 신봉승의 ‘조선정치의 꽃 정쟁’이다. 아는 내용들이 있어도 세부적으로 저자의 입김과 근거 史料가 충분해 읽을 만하다. 신봉승의 책들을 나는 좋아라한다. 책이 두꺼운 건 지루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

끼적이고 나니 몸이 조금 더 낫다. 낙서처럼 재미난 짓도 드물다.
비가 많이 내린다. 지난 해 비보다 묵직하다.
장마와 폭설은 자연을 건드린 자들에 대한 대답이며 그 대답을 인간은 무력하게 온전히 받는다.
그래도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드린다.

오늘문득 : 2011.6.29. 15:51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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