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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7 23:58

情나미

조회 수 11708 추천 수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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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나미


7개월 간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단순한 온갖 잡일과 플라스틱을 분쇄하며 갱도의 풍경을 떠올리며 살고 있다. 그 화학분진 덕에 살갗을 긁어대고 땀띠로 피가 날 정도로 긁고 산다. 덥고 육신이 힘들며 숨도 헐떡인다. 가래를 뱉어도 시커멓고 코를 풀어도 시커멓다. 기계 사이사이를 오르고 내리고 스치며 10년 이상 아끼던 건빵바지들은 모두 찢어졌고 정든 셔츠들도 몇 놈이 나를 떠났다. 집에 돌아와 작업복을 벗으면 옷들은 염전처럼 하얗고 겨드랑이는 마저 마르지 않아 축축하다. 등에서 똥꼬로 흘러들고 허벅지와 종아리를 타고 양말로 내려와 땀은 멈춘다. 발목이 짜다. 몸 노동은 삶 중 큰 움큼의 보람이며 성찰의 기본 틀이고 게으름을 덜어주며 쌀을 준다. 죽음이 다가올 때 고마워 할 것 중 하나가 내가 해왔던 노동일 것이다.

홀로 골방에서 일하지 않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어 좋기도 하지만 답답함도 있다. 틀에 박힌 단어구사와 속내를 비추지 않는 접대용 문장들이 재수가 없다. 사람들은 형식적이며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는 스스로를 말하지 않는다. 사적인 대화는 청하지도 듣기도 거북해 보인다. 그런 조직이 생산 공장이다. 그 와중에 내가 들어가 대놓고 말하니 거시기 할 수 밖에. 어울림이 없는 이유는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고된 일이고 정붙이기 싫어서일 테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일은 곧 돈과 연관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들. 고정관념들. 그 틀에서 수년에서 십 수 년. 속이 보이고 마음이 보이거늘 입 밖으로 뱉어내는 것은 우물 안 10년 개구리의 우쭐함 뿐이라 한심타.

이윤추구는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오로지 이윤 하나만 바라보는 그런 낡은 기업철학은 사라져야한다. 기업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이 사는 곳에선 情이 있어야 한다. 情이 없는 기업은 죽은 기업이다. 공장을 다니며 박노해 시인이 떠오를 줄 알았는데 섬진강 김용택 시인이 생각난다. 살벌한 기계들 앞에 종일 움직이는 사람들을 직접보고 어떤 화두를 어떤 싯구를 줄 지 기대가 인다.

마음이 보이는 데, 속이 보이는 데 왜 치장할까? 되레 나처럼 진실만 꾸밈없이 말하면 단순한 놈 취급이다. 눈만 봐도 알겠는데 왜 저리 말을 돌리며 자기합리화를 할까? 그게 윗사람인가? 아랫사람한테 아가리로 지기 싫어서? 쪽팔린가?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상무, 사장 따위의 일본인의 인식과 일본인의 단어가 사람을 갈랐고 너와 내 사이를 벌렸다. 情을 갈랐고 고정관념을 심어 버렸다. 근래 직급 따위를 버리고 기업 수장이하 ‘누구누구 氏’로 이름을 부르는 깨어 있는 기업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듣고 그나마 “개념이 안드로메다에서 돌아오는 놈들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인다. 힘들면 서로 돕고, 네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내가 하는 일이 한가하니 너를 돕는, 너와 내가 만드는 회사들이 부럽다.

참으로 답답하다. 회사를 같이 다니지 않고 각자 다닌다. 함께 일하지 않고 각자 일한다. 내가 받을 잔업수당이 우선이고 더 주면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이다. 다단계나 사기를 치는 업종들이 동료 직원끼리 유대관계나 情이 있는 척 하는 이유는 비양심적인 범죄행위지만 땀 흘리는 곳에서 情을 느낀다면 너와 나, 더 없이 좋지 않겠나. 돈이 좀 덜 되더라도 情있는 곳이 좋지 않나?

웃고 살자고 애쓰지 않아도 나는 웃고 산다. 나를 단순한 놈으로 바라보도록 둔하게 살려 애도 쓴다. 그래야 좋아라한다. 멍청한 듯, 어리바리한 듯, 그래야 덜 시끄럽다.

“1인이 주도하는 가정, 기업, 국가 및 그 어떤 조직도 진보를 원하지 않는다. 작은 1인이 너무 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 윤영환”

술이 좀 됐다. 맞춤법이 틀리지 않았나 걱정이다. 오랜만에 끼적이니 기분이 좋다.



오늘문득 : 2011.06.27. 23:03 風磬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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