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 전순영

by 風文 posted Aug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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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 전순영

질경이가 목이 말라 고개 숙인 7월 한낮, 나도 목이 말라 고개 숙인다 내 목에다 물을 부어주니 축 늘어진 팔다리가 금방 펄펄 살아난다 벼 보리 콩 팥 그 어느 것 하나 우리가 먹는 것은 어머니가 낳지 않은 것이 없다 하늘 아래 목숨이란 목숨은 그에게 입을 대고 산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배를 가르고 몸을 토막을 내고 두들겨 패고 불로 지지고 극약을 쏟아 붓고, 날마다 수천억 개의 비닐봉지를 한 번 쓰고 그에게 던지면 그는 숨이 막힌다 얼굴을 가린 음식물은 고름이 되어 그의 입으로 들어간다.

그는 묵묵히 삼키고 폭 삭혀서 새하얀 물을 저장해 두었다 자식들의 목구멍으로 쏟아부어준다 그는 지렁이 어머니 사자의 어머니 학의 어머니, 아름드리나무에서 개미 한 마리까지 우리는 매일 그의 젖을 빠는 아기다

목이 말라 어머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어머니는 젖이 아닌 내가 그에게 주었던 음식쓰레기를 되돌려주었다 이제 더 이상 쓰레기를 먹고 젖을 낳는 어미가슴이 아니라고, 황패한 무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