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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1 20:22

가을의 시 -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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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 - 장석주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연인들은 헤어지게 하시고,
슬퍼하는 자들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주시고,
부자들에게선 귀한 걸 빼앗아
재물이 하찮은 것임을 알게 하소서.
학자들에게는 치매나 뇌경색을 내려서
평생을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시고,
운동선수들의 뼈는 분리해서
혹사당한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스님과 사제들은
조금만 더 냉정하게 하소서.
전쟁을 하거나 계획 중인 자들은
더 호전적이 되게 하소서.
폐허만이 평화의 가치를 알게 하니
더 많은 분쟁과 유혈혁명이 일어나게 하소서.
이 참담한 지구에서 뻔뻔스럽게 시를 써온 자들은
상상력을 탕진하게 해서
더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하소서.
휴지로도 쓰지 못하는 시집을 내느라
더는 나무를 베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다만 사람들이 시들고 마르고 바스러지며
이루어지는 멸망과 죽음들이
왜 이 가을의 축복이고 아름다움인지를,
부디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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