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童山) - 윤영환

by 風文 posted Apr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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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童山)

 

 

보고픔에 서둘러 계단을 올라 꿈나무방문을 열었다

몇 초간 눈을 마주치고는 아장아장 걸어와선

양팔을 벌려 내 무릎을 끌어안는다

가까이 다가가야만 흰자위를 볼 수 있는

크고 까만 눈을 가진 아이

말똥말똥 신기한 듯 갸우뚱갸우뚱

손을 뻗어 나의 볼을 만지작만지작

고사리 같은 검지가 내 입으로 들어간다

까르르 웃으며 정()을 바라는 외로운 천사는

아마도 내가 포근히 안아주기만을

아주 오랜 시간 기다려 온 것만 같다

나를 모를 텐데, 이 아이는 나를 모를 텐데

 

아이들의 동산(童山)이 되어

올라타고 밟고 뛰도록 놀아주기를 몇 시간

동행의 일어서자는 말에 심장이 멎는 듯하다

장독대 항아리 뚜껑 내리듯 아이들을 내려놓음에

떠나지 말라는 듯 무릎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들고

해맑은 얼굴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나 어릴 적 아빠 목마 타고 보던 제비 둥지만 같아

 

등 뒤에서 들려오는 외로운 천사들의 울음소리

갑자기 나타나 몇 시간 만에 사라진 동산(童山)

한없이 원망하며 울고 또 울겠지

누가 천사들을 이곳에 가두어 울게 하는가

양팔 벌려 안아주던 아빠 냄새는 삶의 풍랑으로 간데없고

임시로 들어섰다 철거되는

나 같은 동산(童山)들만 줄을 잇는다.

 

 

 

 

詩時 : 2004.09.17 01:01 風磬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