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4.30 12:32

주정 (酒酊) - 윤영환

조회 수 690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주정 (酒酊)

 

봄을 노래하면 여름을 기다리나보다 합니다

봄을 봤다면 봄을 노래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우겨도 소용없어요

나는 알거든요

당신의 봄노래를 들어야만 봄인 줄 아는 사람 없거든요

 

사랑을 노래하면 외로워하나 보다 합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은 이미 식었거나 떠났을 테니까요

우겨도 소용없어요

나는 알거든요

사랑을 하는 사람은 차분히 앉아 사랑을 써 내릴 시간이 없답니다

 

효도를 말하면 그 사람 측은해 보여요

살아계실 때 섬기지 못했거나 지금 효도한다고 쇼하는 것입니다

우겨도 소용없어요

나는 알거든요

울 아버지 가시고 나서야 효도가 입버릇 돼버렸으니까요

 

이슬비에 옷 젖어 화내는 사람 없어요

각오하고 걸어왔거든요

소나기 맞고 옷 젖으면 화내죠

비 맞을 각오 안 했거든요

 

당연한 것들과 남들 다 아는 것을 노래하고 싶지 않아요

침묵 속에 자연스레 흘러야 하는 것들을 들추고 싶지 않거든요

지난해 담근 김장김치 냄새나는 단어들을 찾고 있어요

살아온 경험에 그것이 사는 냄새라고 믿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정한 원고 마감 시간에 맞추느라

쉽게 맛을 잃어버리는 겉절이만 불러대요

우겨도 소용없어요

나는 알거든요

냄새만 맡아도 어떤 김치를 먹었는지 알거든요

 

주정이 난 참 싫어요

지난해 담근 김장김치랑 겉절이랑 섞어 부르거든요

우길 수 없겠네요

나는 알거든요

술이 들어가야 쓰니까.

 

 

 

 

 

 

 

 

 

윤영환風磬 : 2006.04.30 06:38 詩時

 

  • profile
    버드 2023.04.30 22:02
    어쩜 이렇게 잘 쓰시죠!
    감동입니다
    꼭 시집내셔요
  • ?
    風文 2023.05.08 11:23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37 갔나봐 2022.08.04 445
36 거부하며 - 윤영환 2024.01.24 165
35 그리움 2022.08.04 781
34 그림자 2 2022.08.04 569
33 내 사랑이여 - 윤영환 2024.01.24 179
32 내 사랑이여 2 - 윤영환 2024.01.24 601
31 네 시간 - 윤영환 2023.04.30 545
30 동산(童山) - 윤영환 1 2023.04.30 444
29 2024 매년 날 기다리는 작은 정원 - 윤영환 2024.03.27 70
28 면도기 - 윤영환 2023.04.30 382
27 문득 - 윤영환 2023.04.30 437
26 바람의 종 - 윤영환 2023.04.30 551
25 복숭아 - 윤영환 2023.04.30 299
24 사랑이란 - 윤영환 2 file 2023.02.04 488
23 사랑하고 있다면 - 윤영환 1 2023.04.30 582
22 세풍(世風) - 윤영환 2023.04.30 349
21 시한부 인생 - 윤영환 2024.01.24 184
20 신기하지? - 윤영환 2023.04.30 267
19 쓸만한 적중률 - 윤영환 2023.04.01 515
18 아내에게 - 윤영환 1 2023.04.30 51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