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가는 길

한국어

서재

방문자수 (2014.04~)

전체 : 809,738
오늘 : 495
어제 : 816

페이지뷰

전체 : 35,687,574
오늘 : 4,218
어제 : 10,585
2010.05.10 13:03

주지육림 가는 길

조회 수 14898 추천 수 3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주지육림 가는 길

푸름을 벗어버리려는 산은 어떤 옷을 갈아입고 있는지, 앞 산 까마귀들은 여전한가 봐야하고, 굼벵이에 한약비료로 키웠다던 배추는 알이 찼는지, 어머니 곁을 떠나 총 들고 선 어린초병들은 나없는 동안 초소 맞은편 사시는 내 어머니를 번갈아 잘 모시고 있었는지, 해가 중천에 올라야 울던 닭은 복날 잘 넘겼는지, 서울상회 백구네 여덟 마리 복슬복슬한지 오늘에서야 날을 잡아 보러간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긴 대문을 지나 오솔길 끝자락 붉은 고추밭이 보일 즈음, 처마 끝 잠잠하던 풍경(風磬)이 아들을 알리면 잿빛 굴뚝위로 자비구름 올리던 관세음보살님 나오시겠지. 갈 때마다 아들다리미로 주름하나 펴드려 좋지만 자비미소 끝이 없어 주름 늘까 걱정이다. 모래내시장 약국모퉁이 간판아래서 고뿔에 들까 비 등지고 품에 안던 작은 아이, 제아무리 컸어도 언제나 안고 싶은 천지간 어미마음 뉘 모르겠는가. 산들이 에워 세속을 막은 험히 보드란 터 작은 흙집. 천장엔 검은 화포(畵布)위로 은가루 뿌려놓고 빛바랜 여름병풍 에두른 화실. 침묵을 깨는 건 낮은 곳 찾는 노자(老子)의 물소리뿐이겠지. 연탄 이백 장을 주지육림 사치라며 합장하는 관세음보살님 뵈러 백지들과 책가지들 주섬주섬 보따리 메고, 비에 젖어 엄마 품에 떨던 아이가 길을 떠난다. 움츠린 동그란 그림자가 다리 세 개로 일어서면 버스도 서는 묘한 정류장으로 묵언수행자 재잘거릴 준비하며 주름하나 펴드리러 간다.




2010.09.01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