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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저렉팅 더 챔프(Resurrecting The Champ, 2007)

감독 : 로드 루리  
주연 : 사무엘 L. 잭슨(챔프), 조쉬 하트넷(에릭)...


근래 누워 지내니 별 할 일이 없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하기에 책도 각인 되기 힘들다. 그래서 요즘 주야장천 미뤄두었던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본다. 양이 너무 많아 선택하기도 어렵다. 마치 포장마차에 그 많은 메뉴 중 뭘 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하다. 오늘 네 편의 영화를 봤는데 그 중 "챔피언의 부활"이란 영화가 나를 생각에 잠기도록 해줬다.

영화가 시작되자 나는 ‘곧 졸겠군. 자야할 시간이니 잘 됐지 뭐.’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츠엔 관심도 없고 늘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한일전 축구도 보지 않을뿐더러 집엔 TV도 없다. 권투영화라서 볼까 말까하다가 배우들이 마음에 들어 마저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권투영화가 아니었다. 내가 제목을 정한다면 “우리들의 진실과 믿음”정도로 짓겠다.

자극도 없고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는 그저 상투적인 내용만 싣는 스포츠기자 에릭을 예뻐할 신문사는 없다. 사무실에서 짐을 싸게 되느냐 마느냐하는 순간 임기응변식으로 지난밤 길거리에서 두들겨 맞고 있던 노인 챔프가 생각나 그의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하면서 상관의 마음을 돌린다. 기사를 쓰기로 작정하고 은퇴 후 노숙자로 지내는 권투선수에게 접근해 신원확인 없이 챔프의 말만 믿고 기사를 싣는다. 그러나 이 기사는 미국을 흔들어 놓게 된다. 50년이 넘은 옛날이야기에 대해 그리고 그 멋진 챔피언이 늙어 노숙자로 지낸다는 소식에 후원금이 몰리고 전국이 들썩인다. 사방에서 에릭에게 러브콜이 쇄도하고 TV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순식간에 유명기자가 된다. 그러나 챔프의 말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기자, 아버지, 남편(별거 중)의 역할이 파멸로 치닫게 된다. 점점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이고, 복잡한 정보화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가져야하는 윤리의식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나는 아버지를 영웅으로 알았다. 뭐든 커 보였다. 지붕도 잘 고치고, 전깃줄도 겁내지 않고 손으로 잡으며 수리하고, 키도 나보다 훨씬 크고, 아버지 알통은 꼬집기도 힘들었다. 아버지 알통에 매달리기 좋아했지만 글을 가르칠 때는 무서웠다. 뭐든 아버지는 슈퍼맨이었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늘 집에 놀러오면 아버지를 존경하라 말했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도 크면 아버지처럼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그 틀은 깨졌고 엄청난 실망 속에 살았다. 내가 거짓말을 증오하고, 오해를 사더라도 진실만 이야기하는 꼴통으로 접어든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나야 결혼을 안 해봐서 모르지만 동창들은 대부분 결혼을 해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중학교 동창 중엔 자식이 대학을 다니는 녀석도 있다. 우린 보편적으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커왔다. 그렇다면 내가 자식을 낳아 키울 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자식에게 어떻게 기억되는 아버지로 남을 것인가. 그저 밖으로 도는 아버지? 대충 거짓 좀 섞어서 사회에서 잘나가는 아버지? 아니면 가정이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사실을 그대로 말해주며 자식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아버지?

죽은 뒤 자식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아버지인지 고민하는 젊은 아버지들은 많지 않다. 영화는 기자가 거짓 내용을 꾸미고 짜깁기나 하면서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더러운 행태를, 기자의 아들 눈높이에 맞춘다. 아버지가 거짓인 줄 알면서 기사를 쓰는 언론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자식은 없다. 자식에게 나는 떳떳하게 살았고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아버지가 몇이나 될까? 자식을 위해 어떤 언행도, 어떤 수단도 마다 않는 우리네 교육현실과는 이질감이 있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진실이다. 챔프도 에릭도 진실을 말하고 밝히며 영화는 끝난다. 돈과 명예는 진실에 비하면 껍데기다. 감독은 관객이 챔프를 바라볼 때 그가 그렇게 몰락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자극적이고 인기를 끌만한 기사를 요구하는 어리석은 독자가 되지 말고 언론의 보도내용이 진실인지 바로 보는 독자의 눈을 원하며 기자의 양심에 관해 진지하게 흔든다.
영화의 중심 플롯은 젊은이들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은퇴한 챔피언을 발견하는 에릭이다. 영화는 소외 된 채 사는 이웃들에게 눈을 돌리기를 원한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기 위해선 그들을 찾아가야만 하고 손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닫힌 마음을 열도록 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도 시사한다.
거짓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잘 포장해서 돈과 명예를 쥐느냐 아니면 쪽박을 차더라도 진실을 말하고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느냐. 그 중간에 아들이 있다. 아들에게 과연 나는 떳떳한가를 영화는 묻는다.

나도 살면서 갈등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경험상 내가 어려워지더라도 벌어진 사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결과가 좋다. 지난해인가 방송대국문과 다음 카페에서 ‘사이코패스’라는 댓글도 받아먹은 적이 있다. 물론 누군지 모르지만 그는 곧 그 댓글을 삭제했다. 본인이 떳떳했다면 삭제해선 안 된다. 그러나 떳떳하지 않기에 내게 욕을 퍼부은 그는 자신의 글을 스스로 삭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반드시 끝에는 진실이 행복을 준다.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창피해도, 나락으로 떨어져도, 힘들어질 것을 충분히 예상해도 진실을 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은 살고 있는지 묻는다.

거짓말은 별다른 용기가 필요없다. 화술에 불과하다. 반면 진실을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어렵지 않다. 진실이 습관이 되어 살다보면 오히려 거짓말하는데 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진실된 말만, 벌어진 사실만을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이란 유혹은 유혹으로 느끼지 않는다 .

영화 초반과 후반에 나오는 중복 된 대사는 영감을 준다. 링에 올라온 선수는 쓰러진 뒤 심판이 열을 셀 때까지 일어나지 않으면 패배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시 일어 선다면, 그 어려움을 진실이라는 발판을 딛고 다시 일어 선다면 선수든 작가든 다시 설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실패, 좌절 뒤 일어섬은 남이 결정하지 않는다. 남이 당신 대신 인생을 살아주지 못한다. 링 위에선 그 누구도 쓰러진 당신을 일으켜 세울 사람은 없다. 패배하기 싫으면 일어서라.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라. 그 바탕에 진실을 두고.


2010.05.27 16:20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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