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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8 18:18

행복과 고통사이

조회 수 16930 추천 수 2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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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고통사이


나보다 더욱 고통스럽게 살아 온 사람 또는 살고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정작 그 고통은 타인이 온전히 공감하지 못한다. 그 누가 고통스럽다할지라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내 고통이야말로 가장 큰 고통일 것이다. 내가 고통스러우면 타인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바닥을 치게 된다. 발등에 불부터 꺼야 남을 볼 수 있다. 본능과 직결 된다. 공중화장실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식은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서있던 사람이 오줌보가 터질 것 같은데 뒷사람에게 양보하기엔 힘든 것이다. 고통은 본능이 먼저 반응한다. 고통에 제 아무리 단련된 사람도 고통은 반갑지 않다.

그건 그렇고,

한 삶 속에 필수적으로 겪는 고통은 동물의 허물과 같다. 지혜가 넘치면 그릇을 바꿔야한다. 허물을 벗는 고통이 클수록 나는 더 커짐을 알고 정신 차려서 남이 아닌 나를 또렷이 봐야만 한다. 그저 그 고통스러웠던 시절이 싫어서 강박관념을 갖거나 나쁜 습관이 생긴다면 그릇을 넓힌 것이 아니라 그릇을 부숴버린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고통의 허물을 잘 벗는 법은 책 속에 있지만 마음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저 먼지 쌓인 법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모든 책을 마음으로 흡수할 필요는 없다. 내게 맞는 옷을 찾듯이 맞는 책을 입으면 된다. 책이 만든 옷은 고통이 접근할 때 경보음도 들려주며 대처방안도 내놓는다. 심지어 건강신호에 대한 처방전도 내놓는다.

그건 그렇고,

좋은 지식과 지혜의 옷을 잘 입었으면 아직 헐벗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일이다. 온전한 공감은 아니더라도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가 얼어 굳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찰나에 녹일 수 있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때 따뜻한 말들이 나를 살렸다. 그들은 내 고통을 모두 느낄 수는 없었지만 내가 고통스러워함을 알기에 마음 한편을 나눴고 나는 받았고 고통의 사슬을 풀기 시작했다. 내 경우는 주위에 아무도 없어 나 스스로 도움말을 얻으러 직접 걸어 찾아간 경우다. 공부가 부족해서 찾아간 것이 아니라 공부가 됐기에 스스로 나쁜 판단을 내리지 않고 도움주실 분을 찾아간 것이다. 툭하면 나오는 자살사건 속에 나도 어울려 묻혀갔을 것이지만 나는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 그릇을 던져 깨버리지 않았고 지금은 입장이 바뀌어있다. 더 큰 고통이 온다면 온몸으로 받아야 할 것이지만 오기도 전에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큰 고통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내 그릇이 바뀐 것이다.

그건 그렇고,

우린 고통에 늘 노출되어있고 언제 고통이 나를 덮칠지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불안해하면서 산다면 고통의 노예가 되고 만다. 프로이트는 "자아가 위험을 느끼면서 자기 힘으로 감당해 낼 수 있느냐의 여부를 저울질해 자신의 무력을 자인할 때 나타나는 상태"를 ‘불안’으로 정의하고 있다. 고통이 다가 올 때 또는 맞이할 때 나는 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의 무력감을 스스로가 인정해버리면 불안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때에 고통으로 인한 허물을 벗어 내면서 더 큰 지혜의 옷을 입지 못하면 늘 불안하다. 헐벗은 채로 세상 속에 홀로 서있으니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옷을 입고 있어도 벗고 있다고 생각하고 입고 있는 옷도 스스로 벗어버리려 하고 옷을 줘도 거절하니 대책이 없는 것 아닌가. 어디에 옷이 있는지도 알면서 접근도 못하니 홀로 떨 수밖에 없다. 불안을 떨쳐버리려면 스스로 충분히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을 갖아야하고 부족하면 사방 천지엔 저 고통을 이겨낼 갑옷이 수도 없다는 걸 인식하면 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고, 남이 나를 한심한 눈으로 볼 것 같고, 도움 받은 걸 갚아야 할 것 같고, 내 초라한 이 모습이 소문 날 것 같다는 둥 허섭스레기 같은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당신이 고통스럽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적극적으로 당신을 찾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할 사람은 고통을 겪으며 불안에 떠는 당신이다. 불안은 가정도 사회생활도 쉽게 포기시켜주는 마약과 같다. 마음이 허하면 불안의 스승도 만날 수 있다. 늘 뿌듯한 것들로 채우며 살 일이다. 뿌듯한 것이 뭔지 모르면 사무실이나 머무는 곳의 담배꽁초나 휴지라도 줏어보라. 뿌듯함은 간단하다.

그건 그렇고,

고통과 불안이 뭔지 잘 알면 행복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 어떤 사람도 고통스럽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추구하는 행복이 타인의 고통을 수반한다면 그건 불행이다. 내 행복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면 서로 어깨동무할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본지상주의, 1등, 금메달, 상위권, 최선이 아닌 최고, 과정이 아닌 결과로 세상이 돌고 있다. 내가 포함 된 자연을 공부하기 보다는 돈과 권력을 공부한다. 무엇이 우선인지 알면서도 돈과 권력이 주는 맛이 좋은 것이다. 우린 누구나 “거짓말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지만 그게 쉽던가? 효도가 당연하고 좋은 것이라 해도 쉽던가?

그건 그렇고,

어느 날, 몸이 아픈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와서 자신은 그보다 더 아픈 적도 있었고 대수술도 겪었다며 별 일 아니라며 비웃었다.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울화가 치밀었다. 한 겨울 일가족이 길바닥으로 나 앉은 것을 보고 그 사람들에게 “나는 예전엔 더 힘들었지만 지금 잘 살고 있다.”는 말이 도움이 될까? 고통을 알고 있다면 고통 받는 사람의 고통이 어디서 왔는지 잘 알 텐데 참으로 답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뱉는 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고통을 더 얹어 줌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되레 힘을 준다고 믿는다. 자기를 보고 배우라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고통보다 작고 내 고통이 더 심했으니 타인의 고통은 그에겐 고통도 아닌 것이다. 그는 잘못했다고 인식도 못하기에 고칠 일도 없다. 항문이 할 일을 입이하며 살도록 둘 뿐이다.

그건 그렇고,

고통을 벗는 가장 최선의 처방전은 많다. 그 중 생각이 나서 적고 싶은 말이 있다. 공자가 참으로 싫어하는 자가 있는데 “잘못을 했다고 인식을 했는데도 고치지 않는 자”다. 뉘우침이 없으면 고통 속에 살다 가는 게다. 슬쩍 넘기고 자기합리화 속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고통은 숨어 제 일을 한다. 죽기 전 뉘우쳐도 평생 저지른 잘못은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집어  넣고 만 셈이다. 잘못을 잘못 된 것이라고 느끼는 즉시 고치지 않으면 참 행복도 아름다운 죽음도 오지 않는다.
병원이 해결 못하는 것이 마음의 병이다. 마음의 병을 병원에 의지하니 잘 고쳐지지 않는다. 의사는 당신이고 처방전은 널려있다.
고통과 행복은 극히 가깝다. 내가 행복한가를 생각하는 것과 나는 고통스럽지 않은가를 생각하는 일은 차이는 있지만 멀지 않다. 만족을 모르니 헛갈리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하루를 사르며 많은 유혹이 주변을 휘감는다. 당장 저 일을 하고 싶고, 먹고 싶고, 사고 싶다. 하면 내 마음이 만족할 것 같다. 그래서 참 즐거운 경우를 종종 맞는다. 그런 것들이 내 욕망을 부채질하면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걷어차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걷어찬 경우다. 걷어차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쉽게 방금 전의 유혹을 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새로운 유혹들이 주변에 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다. 만병의 근원은 마음이고, 마음의 병을 예방하는 것이 최고의 처방이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잘 사르기를 그리고 잠들기 전에 하루를 잘 살라버렸는지 생각한 후 잠자리에 든다. 왜냐면 하루를 잘 살았는지 나쁜 생각은 했는지 안 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뿐이기 때문이다. 삶이 시금 털털 개살구 같았던 건 단순하고 짧은 성찰인데도 그렇게 살지 않아서였다.
오늘도 잘 살았고 천지에 날아다니는 고통은 범접하지 못했다. 면역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고통이 언제든 튀어나와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처지지만 나는 세상을 구원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평화롭다. 모든 것에 손을 대려하고 고민하려들면 널려있던 고통들이 한번에 몰려 온다.

나는 여전히 늘 어리석고 덜 컸으니, 세계평화를 외치기 전에 제 앞가림이나 잘 할 일이다.


201011.28 18:03 윤안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