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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요구를 하는가



사람들이 만들어 온 수없는 제도와 규칙, 법, 관습들이 때론 내 사상에 맞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특히 그렇다. 경찰은 경찰다워야 하고, 교사는 교사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고, 문인은 문인다워야 하고……. 다들 사람 아닌가? 사람이 사람다우면 됐지 사람이 갖고 있는 직업 따위로 ‘다워야’ 한다는 논리가 싫다. 방대한 우주를 태양계나 은하 몇 개로 좁혀 바라보는 아둔함이다. 종교나 관습 또는 우리가 후천적으로 익힌 고정관념을 잣대로 사람을 기준 잡아 보는 짓은 버려야한다. 아직까지도 첫인상이나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답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내 생각엔 저 사람은 어찌어찌한 사람 같아.’ 라고 말하는 것도 우습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고 내가 비웃는 것도 우습다.

그건 그렇고,

나 자신을 보면 사람으로서 형편없을 때가 있고, 그럭저럭 대충 사는 때도 있고, 참 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내가 변했을 때다. 변하는 이유는 모르던 것을 새롭게 배워 각인 됐을 때나, 알고 있던 지식의 영역이 한 차원 확대 되었을 때 변하게 된다. 변하게 되면 삶의 방식이 변하고 습관도 변하며 말투나 행위도 변한다.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마치 중학교 교복을 벗고 고등학교 교복으로 갈아입듯이 변하게 된다. 유치한 시절을 벗어나 한번 더 성숙해진다. 늘 궁금해 하며 알고 싶어 하고 경험해보고 싶어 한다. 모든 창작은 배우고 경험한 속에서 나오게 된다. 그것이 기본이고 상상해서 그리든 쓰든 기본에서 비롯한다. 기본이 풍부하면 인정을 받고 기본이 없으면 대접받지 못한다. 우리는 그 기본은 학교졸업장이나 자격증, 증명서에서 찾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내가 그렇게 자랐기에 아이들도 그렇게 키운다.

그건 그렇고,

사회에서 원하니 아이들에게 사회가 원하는 스펙을 챙겨줄 뿐인가? 어른들은 어떤가? 신랑이 아니면 신부가 갖춰야 하는 조건들을 위해 스펙 조립에 한창 아닌가? 다이어트 하다가 죽고, 성형수술 하다가 죽고, 스펙의 완성도를 위해 여기저기서 돈 끌어다 쓰고는 신용불량자로 추락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사회가 원한다는 스펙 챙기느라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매고 …….
사람이 사람다우면 됐지 사람들이 만든 각종 증명서 한장 따내려 왜들 그리 애를 쓰는가. 그 사회가 원한다는 스펙을 위해 소중한 삶으로 남아야할 시간들을 얼마나 갖다 버리고 있는지 반성할 일이다. 그 시간을 사람다워지려 투자한다면 스펙으로 얻는 이익보다 더 큰 참맛을 누리지 않겠는가.

그건 그렇고,

사회로 나가 실무를 접하고 성인으로서 사회 속 일원이 된 후가 더 답답할 것이다. 원하는 일자리, 원했던 결혼 생활을 위해 노력하며 갖춘 스펙이 그 중 몇 할이나 도움이 되던가. 사람이 만든 사회가 개인에게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스펙은 정작 개인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스펙을 쌓던 경험으로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내 생각엔 시간낭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회가 요구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원하고 내가 바라는 것에 삶을 쪼개어 던지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다. 스펙이란 것이 돈과 연결 되어 있어 민감하게 바라보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사람의 철학이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생산 되는 것도 아니고 왜 다들 똑같은 종잇조각 하나 따내려들 애쓰는지 답답하다.
나를 살아야한다. 어떤 조직이, 어떤 권력이나 무언의 힘이 나를 밀어도 나를 살아야한다. 어려워도 나를 살아야한다. 내가 살고 싶은 방향으로 내가 원하는 삶으로 남과 전혀 다른 아름다운 나로 살아야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나를 살아서 궁핍하다. 그러나 마음은 평화롭다. 욕심도 없으며 지금이 좋다. 늘 가능성은 열려있으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진정 원하는 일이기에 만족한다. 배가 좀 고프면 어떤가. 내가 행복하다는데. 요즘은 없지만 아직도 가끔 나를 한심하다거나 측은지심이 이는 사람으로 보는 눈들이 있다. 대부분 틀에 박힌 고정관념의 시선이거나 첫인상으로 사람 잘라보는 좁은 그릇들이다. 정작 행복한 건 난데 왜 그대들이 난리브루스인가. 나는 조바심도 없으며 남과 나를 비교하지도 않고 게다가 사회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짐작하여 걱정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나는 꿈을 가지고 산다. 자고 일어나 지난 밤 죽지 않았음을 고마워하고 눈 뜬 오늘을 사는 것이 나고, 오늘을 잘 살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 행복하면 그만이다.

그건 그렇고,

사람은 행복을 위해 산다. 스펙 쌓는 것이 행복하다면 신나게 쌓을 일이다. 그러나 나는 스펙 쌓는데 내 삶을 들어 바칠 일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누구도 나에게 스펙이 아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행복하면 그 누구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지만 내가 불행하면, 나를 나로 살지 않으면, 사방팔방에서 내게 뭔가를 요구한다. 요구조건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그들을 만족 시켜줘야한다는 일념에 빠지고 그들이 만족감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처럼 여긴다. 왜냐하면 나를 만족시킬 생각은 않고 그들을 만족시키려하기 때문이다.

2010. 07. 05 06:57 윤안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