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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9 09:33

힘든 하룻밤

조회 수 17759 추천 수 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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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하룻밤


자다 눈을 뜨니 책장 앞에서 쪼그리고 있는 다리가 보인다. 밤새 자벌레처럼 방을 뿔뿔 기어 다닌 기억이 난다. 침대위에 오르지 못한 건 구토 때문일 것이다. 무의식중에서도 침대와 이불이 더럽혀질까봐 내려와 잤겠지. A4용지에 적힌 많은 글들이 보인다. 알아먹지 못하는 단어들과 문장이 많다. 적잖은 분량이다. 뭔가를 쓰려고 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5시 반인데 집안에 연기가 자욱하다. 부엌에 가보니 큰 냄비하나가 타고 있다. 안엔 지난 달 선물 받았던 닭과 쌀이 타고 있다. 꼴에 닭죽이 좋다는 말을 듣고 닭죽을 끓여보려 했나보다. 치우고 닦고 환기하니 좀 낫다. 불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생닭을 선물한 지인에게 미안타. 반팔 티엔 피가 묻어있다. 거울을 보니 코피도 쏟은 모양이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인가. 샤워를 하고 싶은데 기운이 없다.

그건 그렇고,

단골 술집 아주머니가 오이소박이를 담아 줄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손녀가 오이소박이를 좋아 한단다. 담는 김에 내 것도 좀 담아 주겠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왜 외상값 달라는 소리를 안 할까? 원고료가 언제 나올 줄 알고. 갈 때마다 친절하다. 외상값 달라는 소리 안 한다고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세상엔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물론 착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세상 아닌가? 다 착하면 법원이 왜 있겠나. 나는 판사라는 직업을 매우 혐오한다. 내 나라 역사를 봐도 판사는 매우 추악하며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은 그다지 좋지 않은 직업이다. 법전이 두꺼울수록 그 나라는 썩어가는 나라다.

그건 그렇고,

방송대를 쉬고 있지만 같이 다니던 형님이 있다. 작년이 칠순인지 올해가 칠순인지 가물가물하다. 전화를 한 번 걸어봐야겠다. 그 형은 어르신이나 선생님이라고 하면 싫어한다. 늘 내가 찾아가면 소주와 안주를 준비하신다. 이사 온 뒤론 뵙지 못했다. 건강이 좋지 않으신 데도 그리고 형편이 나쁘지도 않은데 아르바이트를 하신다. 물었더니 놀면 뭐하냐는 것이다. 내 아르바이트 자리도 알아봐 준다고 하셨는데 이사를 와버렸다. 한문을 많이 아시고 문장들을 많이 아셔서 늘 배울 점이 많고 내 넋두리도 잘 받아주셨다. 나를 친동생처럼 늘 배려해주셨다. 늘 거절했지만 형수님도 갓김치나 반찬을 챙겨주려 늘 배려해주셨다.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안부전화를 넣어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커피를 한 잔하니 정신이 좀 든다. 종일 나는 책상 앞 의자에 앉아있다. 의자에서 잠들기도 한다. 깜깜이. 나는 어릴 적 엄니한테 밤을 늘 깜깜이라고 했다. 깜깜이가 오면 코~ 자야했기 때문에 깜깜이는 나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깜깜이가 오면 엄마 품에 쏙~ 들어갈 수 있어서 깜깜이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항상 질문이 많고 그 질문을 풀기위해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는 늘 책을 사다 날랐다. 초등학교 때 이대 옆 대흥동(?)에서 살았는데 창고엔 늘 읽고 난 전집들로 꽉차있었다. 하지만 형은 늘 그 읽고 난 책들을 헌책방에 팔고 다녔다. 후에 알았지만 읽고 난 건 팔아야 다른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다는 형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나의 책을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복사가 어렵고 글 쓰다 참고하려 책장을 가면 아직 반납이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종종 있어서다.

그건 그렇고,

나는 영악해지고 싶지 않다. 계산하고 짐작하는 행위는 싫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좋으면 웃는다. 당연하지 않나? 내가 화를 내자 떠난 인연이 있는데 웃기지 않나? 지는 평생 화내지 않고 살았나? 지가 말하던 생각과 말과 행위로 화내지 않고 살았나? 가장 답답한 건 왜 자기에게 화를 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사상으로 어떻게 인생을 사나? 입으론 평화를 행위론 저주를 하는 추악한 모습 중 하나다. 천주교인은 미사 드릴 때 제 탓이오! 하면서 가슴을 친다. 진심인가 아니면 습관인가. 나는 가슴을 치며 하루 동안 잘못한 일은 모두 떠올린다. 죄짓지 않겠음을 다짐하며 가슴을 친다. 온 마음을 다해서. 그렇게 매일 다녔다. 장마가 오든 폭설이 내리든 매일 다녔다. 그러나 성당을 다니든 안다니든 나는 교리를 믿기 전에도 늘 반성을 해오며 살았다. 지난날의 죄와 오늘을 늘 성찰하며 살았다. 종교와 상관없이 늘 반성하며 살았다. 실수를 하든 죄를 짓든 뉘우치며 살았다. 필요 없는 언행을 자중하기를 스스로 닦았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이다. 내가 신도 아니고 언젠가는 실언을 하게 되고 죄를 짓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반성할 줄 알아야하고 뉘우칠 줄 알아야하고 변해야 한다. 모르고 고치지 않는 사람과 알고도 고치지 않는 사람은 다르다.

그건 그렇고,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쪽지를 받았다. 글로 사생활까지 모두 공개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오판했다. 나는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 작은 일부만 쓰는 것을 그는 몰랐다. 고마운 건 그 일부를 사실로 받아들여준 점이다. 별다르게 꾸미지 않는 것도 가식 없는 것도 나름 의미 있다고 본다. 나를 만나지 않고 나를 알지 못하고 나와 대화도 못한 사람이 나를 판단하는 짓은 용납이 어렵다. 그저 글 몇 편 읽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심판하는 행위는 죄다. 인간의 사상을 어떻게 글 몇 편으로 쓰겠는가. 논어 하나가 공자의 모든 것이라 믿나? 그 고전 하나가 공자를 온전히 모두 들러냈다고 보나? 신약 하나가 예수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법화경 하나가 부처의 전부인가? 다 쓰지 못하고 죽는 것이 인간의 사상이다. 어찌 글월 몇 자 읽고 사람을 판단하는가. 역으로 묻자. 사람을 판단할 자격은 갖추었는가? 그 정도로 당신은 위대한가? 

그건 그렇고,

내가 참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여자들이 외출할 때 화장하는 것이다. 화장품은 비누하나면 족하지 않나? 로션정도는 봐줄만 하다. 창간호 행사나 신간 행사에 가보면 다들 쥐잡아먹은 입술들이다. 향수 속 하얀 얼굴들. 무대 위에 서는 배우도 아니고 행위예술도 아니다. 적어도 문인은 그러고 살지 말자. 예절이네 뭐네 별별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게 싫다. 뭐가 창피해 얼굴을 덮는가. 왜 자연스러움을 포장하는 가. 남들 보기 창피한 인생이니 포장하는 짓이다. 죄 지은 놈이 숨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남들도 하니 나도 해야 하나?

그건 그렇고,

손톱정리를 잘한다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왜 내 손톱에 관심을 둘까? 생각해보니 손이 크고 술자리라 소주잔 드는 손을 보고 말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종종 손톱을 자르는데 그 이유는 타자할 때 손끝이 아파서다. 어떤 사람은 타자를 친다고 하는데 치는 것은 타(打)에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타자를 한다. 타자 중이다. 타자해서 원고를 제출한다.’ 라고 써야 맞다.

…….

할 이야기를 잊었다. 한마디 더 있었는데…….

좀 누워야겠다. 곤하다.


그건 그렇고 : 2010.06.09. 09:31 風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