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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8 19:26

아버님前 上書

조회 수 15415 추천 수 3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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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前 上書


잘 계시지요? 저도 좋은 피 물려받아 잘 삽니다. 늘 고맙습니다.
어머니와 방금 통화 했습니다.
어머니는 운수행각 중이십니다.
지금은 우리 해남 윤가의 고장 해남에 계십니다.
홀로 사시는 것이 편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냥 하시는 말씀 같지만 사실입니다. 어머니는 홀로 사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도 종종 기행(奇行)이 있는지라 해남 윤 씨가 지긋지긋하신가 봐요.
스님들을 만나시며 좋은 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약재도 얻고 마음이 편하신가봅니다.
그러나 자식이 있음에도 떨어져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입니다.
말벗이 얼마나 큰 효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며느리가 서두르자고 하네요.
어머니를 모셔오자고 말씀드렸는데 어머니가 싫답니다.
아마 저희가 가난하니 그러신가 봅니다.
저보다는 며느리가 잘 설득할겁니다. 제 말보다는 며느리 말이 더 미덥거든요.
가난해도 모여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아부지 며느리 착하지요?

아시다시피 어머니는 자식들 이름을 잘 부르지 않지요. 대신 어머니만의 작명법이 있지요.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고운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저한테는 ‘똥개’라고 지어주셨고요.
건강이 좋지 않으니 ‘똥개’가 좋답니다. 똥개라는 게 어떤 환경이든 강하게 큰다고 하네요.
조선왕조실록이나 야사에도 개동, 말동, 먹개 등 험한 이름들이 많지요.
예방주사라는 것도 없고 어린나이에 다들 죽어나가니 강건하라고 名을 주고 잘 자라 성장하면 그때 자를 줬지요.
지금 저는 건강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의사가 말하길 약간의 식도염 말고는 몸이 깨끗하답니다.
이젠 그 어떤 종양도 보이지 않고 200전후의 혈압도 이젠 140으로 내려갔습니다.
건강걱정은 더 이상 안하지요.
어머니와 스님이 캐어 보내주신 약재 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고 싶고요.
안사람이 제 건강을 틈틈이 보살핍니다. 188의 거구가 쓰러지는 일은 이제 없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사 계급장을 달고 다녔던 20년 전,
군함으로 보내신 편지를 편지함에서 꺼내 지금 읽고 있습니다.
말도 없이 군대 가버린 아들이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등록금 형편이 안 될 듯해서 그냥 하사관으로 지원했지요.
대학은 언제든 갈 수 있잖아요. 그 때 마음을 지금에서야 털어놓습니다.
편지 속엔 텅 빈 제방을 보며 어머니가 슬퍼하심을 그리고 아버지의 서러움도 담겨있습니다.
얼마나 허전하고 슬프셨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도 제가 불효를 참 많이 저질렀지요? 용서를 빕니다.

아버지,
지금 봐도 아버지의 편지 속 한글필체는 참 보기 좋습니다.
어린 시절 어르신들이 아버지 필체를 부러워하던 대화들이 생각납니다.
한자는 또 얼마나 멋들어지게 쓰셨는지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동네 사람들 가훈은 아버지 필체로 표구되어 집집마다 걸렸었지요.
한학에 관심이 많으셔서 저는 알아보지도 못하는 이상한(?) 책들이 수북했지요. 유전인가 봐요.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수필집을 내는 일이었죠?
원고지 3천장과 만년필을 사드렸으나 아버지는 한글자도 쓰지 않았어요.
저는 그 이유를 압니다.
위암말기 판정이 분홍 보자기 속 원고지를 꺼내지 못하도록 아버지 손을 묶어버렸습니다.
어머니께 말하지 말라고 부탁하셨지요? 왜 말씀 안하셨나요?
전세 보증금 몇 푼 유산으로 주려고 입 다무셨나요? 돈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돈 따위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어찌 종이쪼가리에 허투루 눌리나요. 억장이 무너집니다.
자식들 얼굴 하루라도 더 보고 싶으셨을 마음 생각하면 불효자가 왜 죄인인가를 새삼 깨닫습니다.
눈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아내가 오늘이 제 생일이라네요. 살다보니 제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얼마나 행복한지요.
아버지도 막내, 어머니도 막내, 저도 막내, 아내도 막냅니다. 막내 넷이서 행복하게 살면 좋으련만
그리 살지 못함에 슬피 울며 가슴을 칩니다. 어제까지도 저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감히 아들이 아버지를 용서하고 말고가 있겠습니까만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아버지,
아버지 피 말고 어머니 피도 흐르기에 저는 홀로 수도하듯 살았습니다.
글이 좋아 글공부한지 조금 됩니다. 아직 어리석지요.
늦은 감이 있으나 어느덧 아버지의 길을 가는 듯합니다.
아버지의 수필을 아들이 대신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즐거운 삶길입니다.
오늘따라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버지의 만년필이 그렸던 글은 참으로 탐스럽습니다.
왜 말씀이 그리도 없으셨는지 글이 보여줍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부천 상동시장 단골 횟집에서 우리는 종종 술을 마셨더랬지요.
테헤란로에서 밴처네 뭐네 컴퓨터로 성공한 아들을 대견스레 여기셨습니다.
어깨동무하고 노래방도 가며 둘이서 동네를 휘젓고 다녔었지요.
아버지 키와 제 키가 비슷하니 거인들 둘이서 술만 마시면 어깨동무하고 전통가요를 부르니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지요.
2차고 3차고 동네 술집은 모조리 섭렵했지요.
물론 어머니껜 비밀로 하고 돌아다녔지만 동네에서 소문이 그러한데 어머니 귀에 안 들어갈 리가 있나요. 결국 아버지와 둘이 앉아 어머니께 혼이 났지만 그래도 죽이 잘 맞아 몰래몰래 잘도 다녔었지요.
그러나 그때가 위암말기셨음을 저는 몰랐습니다.

아버지,
고마웠습니다. 죄스럽고 용서를 빌고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간절히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까요?
11월 1일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내달 중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합니다. 신부님과 마지막 조율이 남아 있습니다.
아내도 아버지가 없습니다. 저처럼 어머니만 계시지요. 제 누나처럼 아내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선합니다. 마음이 고와 죄 지음을 혐오합니다. 보고 싶으시지요?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결혼이 늦어 죄스럽습니다.

아버지,
어릴 적 왜 그리도 저를 매질 하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참 부모가 줄어드는 요즘입니다.
저를 그렇게 길러주셨음이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요.
어려워도 나름 살려 애쓰는 누나와 생사를 알 수 없는 두 형들도 아버지께 고마워 할 겁니다.
이젠 같이 나이 들어가니까요. 아버지, 저 결혼합니다. 한 말씀만 해주시면 안 되나요?

아버지,
아버지의 사진을 꺼내 봅니다. 상속받은 유산이 두 개더군요. 대머리와 재떨이.
저도 요즘 벗겨집니다. 윗머리가 휑~ 하지요. 유리 재떨이는 깨어져 없고요 제 대머리만 있습니다.
사진만 보면 아버지와 저는 형제 같지요. 웃음이 터집니다.
새아버지가 생겼습니다. 아빠라고 하는 데요 존함은 하자, 느자, 님자입니다.
평생 부처님 따라서 사시는 허리 굽은 어머니는 제가 가톨릭 사람이 된 것에 대한 명언을 주셨습니다.

“대충 믿을라믄 포기해부러. 남들 따라 염병질 말고 경을 끼고 댕겨. 스님이고 신부고 다 나발인 것이여. 이도저도 아니면 성당 가지말어. 그냥 돈 벌어가믄서 둘이서 오손도손 살어. 종교는 사람들이 맹근 계도 아니고 사람의 권속도 아녀. 너 자신을 찾는 길이라 힘들 것지만 성당인가 뭔당인가 댕기다가 애매하면 접어부러. 믿을라믄 경전 안에 너를 던져야 하는디 하것어? 수도라 했제? 수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여.”

늘 같은 말씀이지만 오늘 전화 속에서 또 말씀하신 말입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평시와 다른 어휘가 저를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 대해 어머니와 상당히 긴 대화를 했습니다. 그래도 공자는 좋아하니 한시름 놓으셔요.
아버지를 대신할 아빠가 생겨 다행입니다만 횟집에서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조금 서운합니다. 제 삶이 한심하다 싶으시면 꿈에 오셔 말하소서. 아부지 말 즐겁게 들을라요.

아버지,
성당에서 혼인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내는 제 수십 년 지난 옷들을 걱정합니다. 대부분 구멍이 나있거나 실밥이 터져 지저분하거든요. 저는 마음이 중하지 옷이 중하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내는 방이고 거실이고 책장이고 커튼이고 꾸미는 걸 좋아라합니다. 뭐든 예뻐야 한다네요. 그러나 저는 고집스러워 거적 같지만 고등학교 졸업 때 양복점에서 맞춘 저 양복을 입으렵니다. 양복이 저 윗도리 하나인데 또 사고 싶지 않아요. 한복도 아니고 입을 일이 없거든요.
아버지가 삶에 대해 말하는 걸 그리고 어머니가 삶에 대해 말하는 걸 저는 압니다.
어머니께서 옷 때문에 행복하면 옷이 행복을 주느냐고 물으십니다. 할말 없지요.
아버지처럼 풀며 살다보니 가난합니다. 돈은 돈일뿐입니다. 그래서 행복하지요. 도둑이 오면 주머니 털어주고 가겠지요.
아참. 며칠 전 엄니 집에 도둑이 들어 고춧가루하고 한약재를 털었다네요? 아시죠? 거참 벼룩에 간을 내먹지 별 허섭이 있네요.
그런데,
강도 잡아 칼을 뺏어 쓰면 저도 강도인가요? 뭐 그 칼은 이사오면서 버렸지만 엄니는 그냥 쓰지 왜 버렸냐고 하시네요. 저는 좀 찝찝했거든요. 아부지 당수는 이제 다 몰라요. 뭐 저도 당수를 가르치는 도장은 못봤으니까요.

아버지,
두 달 뒤 기일에 봬요. 천주교가 제사는 되나 지방은 안 된다하네요. 그러나 제 손으로 지방을 써드립니다. 아버지 필체는 아니지만 멋지게 한문을 휘날릴 테니 꼭 오세요. 오셔서 며느리도 좀 보고요. 혼인할 때도 오세요. 같이 사진 찍어요. 아버지 미안해요. 이제야 마음을 열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참으로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가셨나요. 조금만 더 사시지. 나 아버지 미워요.
아프다고 말하지 그랬어요. 왜 말 안했어요.

아버지,
술 한잔 했습니다. 만취 되어 편지를 올리니 송구합니다. 술 친구가 아버지 뿐이었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아버지와의 술자리는 제 고해성사 자리였습니다.
모두 털어 놓고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모조리 털어 놓는 고해성사하는 자리였습니다.

아버지,
또 쓸게요. 잘 지내세요.
기일날 우리 한잔해요.
예전처럼.

기일 그토록 좋아하시던 이생강의 대금을 올리겠습니다.


아들 風磬 올림.

2010.11.0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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