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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1 23:25

배홍철 형님께

조회 수 18801 추천 수 5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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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홍철 형님께


제 인생에 전환점을 준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형님이고 한 분은 옛날 제가 회사에서 모시던 이준형 사장님이에요. 이미 말씀 드려 아시죠? 몇 통의 편지를 썼으나 마음에 차지 않아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짧기 도하고 주정 같기도 하고 여전히 철없는 녀석의 문장 같아서요. 오늘 편지도 철없는 녀석이 쓴 철없는 편지에요.

가끔 사진을 들추다 형님과 같이 찍었던 사진을 봅니다. 이슬비 내리던 어느 날 양평이라는 동네(?)를 보여주시겠다며 지프차를 타고 돌다가 강가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길 가는 사람도 아닌 지나던 자동차를 세워놓고 사진 좀 찍어달라던 모습에 “뭐 저런 사람이 있나?”하며 충격을 받았죠. 썩 좋은 화질은 아니더라도 유일한 몇 장의 사진들이라 버리지 않고 가끔 꺼내 봅니다.

아직 기억합니다.

“열 받으면 사무실 작살내지 말고 우리 집으로 차 돌려 와!”

제가 한창 좋은 대우를 받으며 회사원으로 근무하던 때가 아닌가 합니다. 스트레스나 “욱!” 하는 순간이 오면 일이고 뭐고 차를 몰아 양평으로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밖에선 보이지도 않는 집. 아마 헬리콥터를 타지 않는 한 형님 집은 누구도 모르지 않겠나 싶습니다. 기억나요? 고장 없이 13년 된 차가 형님 집에서 내려오자마자 엔진이 주저 앉았었잖아요.

10년 전인가요? 언젠가 형님 집 비닐로 된 출입문에 그려진 거대한 삼족오를 보고 점도 치냐며 놀렸던 기억도 납니다. 그 이후로도 몇 년간 저는 그 그림이 삼족오인지 몰랐었습니다. 형님의 긴 머리카락을 보고 남자가 창피하지도 않냐 며 놀렸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이젠 그 때 형님보다 제 머리칼이 더 길답니다.

아직 기억합니다.

“순수한 놈이 양아치 흉내 내는 것처럼 꼴 사운 것 없다. 마음 여린 건 창피한 게 아니야.”

그 후론 오늘까지 꼴사나운 연기 따윈 하지 않는답니다. 온갖 욕설과 주사(酒邪)를 키득키득하며 웃어 들어주시던 형님. 깊은 마음 늦게 알아 쑥스러웠습니다. 부질없는 객기들…….

다 보진 못했지만 형님의 검술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었습니다. 검을 들기엔 형님의 외모는 너무 작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님들과의 이야기, 조선검의 유래들을 들으며 형님이 점점 커보였습니다. 묻는 대로 나오는 답변들과 고전을 해석하는 해박한 지식들, 역사를 옳게 보는 눈과 민족의 흐름에 대한 신념을 봤습니다. 모뎀을 쓰던 시절 형님의 월홍검(月紅劍)이라는 별명에 대한 의문점은 한순간 풀려버렸습니다.

자유로운 생활방식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자유가 아닌 외로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년 된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으며 웃는 고른 치아가 나는 슬펐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밥 짓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 산속에서 늘 홀로 지내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유지하고 보여주려 했던 모습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뭉클합니다. 의뭉스런 언행에 관해 제가 함부로 뱉어도 인상 한번 쓰지 않던 모습을 간직합니다. 또 그것을 제가 지금 스스로 닦고 삽니다.

아직 기억합니다.

“부모가 천 년을 살아줘도 효도 뿌듯하게 하는 놈 없다.”

살아 계신 어머니를 보면 돌아가신 아버지는 생각나질 않습니다. 어머니를 바라보면 제가 아버지를 끝없이 원망해야 하는 이유가 떠오릅니다. 당연히 원망해야하는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여전히 풀지 못함에 어리석음을 한탄합니다.

큰 과오를 범한 적이 있습니다. 형님도 형님이지만 "시인마을"에 대해서요. 누구도 만나주지 않았지만 형님만은 유일하게 만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일에 대해 죄송함을 전했어도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말 뿐 다른 화제로 돌리셨던 기억이 납니다. 질책이나 성냄도 없이 “술 좀 작작 처먹어!”로 끝났었죠. 하지만 저는 저 스스로 괴로웠습니다. 바로 그 때 제가 선물해드린 시낭송 시디를 틀어주셨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직 기억합니다.

“검(劍)이든 시(詩)든 사람부터 되고 써야한다.”

제가 이 순간을 사는 것은 그 때 형님의 토닥임 때문입니다. 절망의 절벽이 있었다면 심신을 던져버렸을 겝니다. 아무나 감싸지 않는 분이 그것도 저와 같은 미천한 것을 감싸 안아 주셨던 마음에 지금도 가끔 웁니다. 저는 그 뒤로 모든 사회생활을 접었습니다. 헛살았다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후회되지 않는 것은 헛살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아직 기억합니다.

“나를 좀먹는 인간들에 대한 신중하고도 강한 처단 법을 익혀라.”

생각이 유일하게 일치했던 말입니다. 내게 기생하는 것들에 대해 지금도 여전한 생각입니다. 뭔가 얻어 보려고, 노력 없이 거저 배워보려고, 콩고물이라도 떨어지나 입 벌리는, 아니면 덩달아 이득 보려는 사람들에 대해 가차 없는 인연 끊기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한 편 이런 생각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빈곤하면 내 곁을 맴도는 기생충들은 스스로 떠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 사람이 진실을 토하고 있는지 보는 눈도 넓어졌습니다. 그러나 형님처럼 불편한 것이 하나 있더군요. 외롭다는 것입니다.

짧은 기간 이었지만 저는 형님에 대해 묻지 않았음을 후회합니다. 그저 어린양피우고 졸라대고, 칭얼대는 아이였습니다. 나는 형님의 시를 되도록 보지 않습니다. 훗날 수소문 하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도 형님의 시는 찾지 않습니다. 경험상 몇 줄 읽지도 않고 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죄스러움 때문입니다.

바빠서 그런지 한 번 들를 때가 됐는데 왜 잠잠하냐는 전화를 끝으로 형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지금도 형님이 외롭게 가셨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서양의 무법자들이 신을 만한 부츠와 긴 머리 그리고 고운 손마디들을 기억합니다. 조선검의 재현을 위한 제자양성, 제작소 그리고 형님의 문학을 온전히 뿌리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존경해야 될 이유를 댄다면 나쁜 짓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이유를 댄다는 것도 이유가 사라지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다는 뜻이니까요. 죄를 지었을 때만 이유와 사연이 있잖아요. 오늘 저처럼요.

요즘 들어 부쩍 형님생각을 많이 합니다. 생각나지 않던 목소리까지 생각나고요. 저는 아직 죄인이라 형님을 눈에 띄게 찾아다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철학에 용기를 뿌려주죠. 그 날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듯합니다. 아직도 형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지없습니다. 요즘은 특히 자주 생각나 몇 장 되지도 않는 사진들을 종종 봐요.

형님도 하늘에만 있으면 어지러우니 좀 내려와서 내 사는 모습 좀 보고 그래요. 잘 살라고 토닥토닥도 좀하고, 꿈에도 좀 나오고…….

미안해요.
죄스럽고.
그리고
고마워요.

참 고마웠어요.

2009.03.31 23:24 윤영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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