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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01:56

나의 벗 거시기에게

조회 수 13992 추천 수 5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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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벗 거시기에게




 


첫글에 인사로 버리는 잉크는 사절하네.


부담 안줄 테니 종종 전화 좀 넣고 그래.


우리가 언제 상을 차려야 술 퍼먹었는가?  술 만 사와! 김치도 있고 멸치랑 고추장도 있네.  속 보이는가?  속보이는 것이 아니라 협박일세.


그리고 전화기에 대고 참새가 독수리 잡아먹는 골아픈 이야기 허덜 말고 마주보고 말하는 버릇을 좀 들여 봐.  그래야 자네 주머니에서 한 병이라도 더나오지.  음... 그건 그렇고 요즘 잘 지냈는가?  어째 그놈의 직장은 툭하면 지방출장인지 모르겠네.  혹시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나


의심도 해봤지만 자네나 나나 이미 물 건너간 거시기들 누가 거들떠나 보겠나 하며 위안 삼네.  이 글을 보고 슬슬 혈압이 오르면 어서 올라와 전화 주게.  내 마중감세.  알겠지만 취해서 염병하는 것이니 대충 읽고 버리게.




조금 전 가게에 소주 한 병 받아오다가 이런 글귀가 떠오르더군.




'시는 변덕스러워 찰라마다 계절이 달라


수시로 갈아입는 옷에


울다 웃다 묘하기도하지


한 놈만 읽으면 일 년 내내 봄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심마니 마냥 시 찾아 글 찾아다니니


변덕이 죽을 끓지'




어떤가?  느낌이 좀 오는가?  소주병 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한번 떠올려 봤네.


탈고하면 일러줌세.




그런데 나는 어떤가 한 번 봤거든?


고여 있어 썩어가는 시들,


악취에 시달리며 복지혜택 한 번 못 받아본 것들 뿐


마음에 차는 것이 없더라 이말 일세.


그러고 보니


혹시 내가 사랑하며 쓴 시가 없을까 한 잔 축이고 뒤적여보니


사랑 할 때는 시 같은 것은 눈에 안 들어 왔었단 말이지.


하기야 어미애비도 안 보이는데 시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가슴 벅차게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시를 쓴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가 나올까 상상해보면


가슴 아프기도 해.  몇 편 남겨둘 것을 후회하면서 말이야.




인연과 헤어지고 술에 허덕일 때 쓰거나


효도 못하고 절구통에 아버지 넣고 빻을 때나 시를 쓰지.


사람들이 부모 보내는 날 왜 눈물이 거짓인 줄 아는가?


늘 안방 아랫목에 계신 줄 알거든.  세뇌형 관습법이지.


보내드리고 하루 이틀 지나봐! 서서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지.


부모마음은 부모가 돼봐야 안다고 하는 말이 있지.


그래서 나는 부모가 될 마음이 없네. 
그러나 월초에 자네와 마주 앉아 짬뽕에 소주마실 때 아버님에 대해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효도 아끼지 말기를 바라네.




셈을 해보니 자네와 나의 인연이 10년을 넘어 15년을 향해 가고 있네.


그간 똑같은 편지만 받고 지냈으니 얼마나 내가 지겹겠는가.


그러니 출장이고 뭐고 올라와서 술 한 잔 하세.


양손에 소주가 없다면 얼굴에 뭐부터 날아갈 것인지 자네가 더 잘 알 테고


김치는 내가 준비했네.  주인아주머니가 작년 김장김치라고 주시고 갔는데


무슨 홍어를 삼년은 삭힌 냄새가 나더군. 


행여 싫다면 가방에 안주 좀 넣어 오리라 나는 믿고 있다네.




그럼. 전화기다리며 쌍권총으로 총총하네.








2006.03.21. 05:33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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