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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5 23:24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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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김

내일이 걱정되는 오늘이 있다. 우려하던 일은 내일 벌어지지만 그래도 내일 하루가 우울할지 아니면 무사히 넘어갈지 걱정이 되는 오늘이 있다. 그렇게 걱정되는 내일의 일을 오늘 해결해 두면 좋겠지만 인간이 하는 그 생각 그대로 오는 내일도 없고 내일을 오늘 살 수도 없다. 1초 후 당신의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 갑자기 집이 무너지는 일은 지구에서 수도 없이 일어난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오늘을 잘 살면 된다. 무너졌어도 오늘을 잘 살아야한다. 내일을 걱정하는 건 오늘을 버리는 일이다. 왜 오지도 않는 내일 때문에 하루를 십년으로 살면서 폭삭 늙으려하는가.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내일 때문에 오늘을 버리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지금을 잘 살자. 오늘 근심으로 내일 잘사는 사람 없다. 내일은 내일을 사는 내일 속에 있을 나에게 맡기자. 원하는 미래를 꿈꾸는 건 오늘이고 내일은 곧 오늘이 된다. 오늘 할 수 있는 건 ‘꿈그림’뿐이다. 매일 쓰고 지우는 것이 ‘삶之道’다.

그건 그렇고,

어제가 걱정되는 오늘이 있다. 보통 ‘후회’한다고 말들 한다. 지난일이 걱정되면 오늘 마음 편하도록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후회감이 드는 즉시 해결해야 가장 좋다. 앞만 보고 달리는 초침은 되돌릴 수 없다. 어제 미안했으면 오늘 사과하면 되고 어제 못한 일은 오늘 하면 된다. 왜 지난 잘못을 걱정하고 후회하며 소중한 지금을 버리나. 그렇다고 교만하란 말은 아니다. 잘못된 과거가 있으면 하늘 보며 가슴 활짝 피고 웃을 만큼 충분히 성찰하고 오늘을 잘 살면 된다. 과거가 오늘을 살면 삶 길은 우울하다. 과거라는 사슬을 스스로 만들고 내손으로 족쇄를 채우며 오늘을 살던 내가 변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기차를 타고 창밖풍경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기차가 천천히 달리며 선다. 정거장이다. 인연을 태우고 인연이 내리는 곳. 달리고 달리다가 언제 그리고 어떤 곳에 서는지 이미 알고 기차에 오른다. 그리고 기차가 얼마나 정거장에 머무는지 안내 방송도 해준다. 그러나 삶 길은 다르다. 삶 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나를 떠났고 나를 만났던가. 내리지 말라고 붙잡기도, 내 삶 길 위로 올라서지 말라고 말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인연들은 정해지지도 미리 알고 있지도 않은 채 내게로 왔었다. 삶 길은 안내책자나 안내방송이 없다. 설레는 길이 삶 길 아닌가?

그건 그렇고,

인연이라고 말하기도 싫은 악연을 본다. 아니면 개념이 안드로메다에 가있는 무식자도 본다. 하지만 존경할 만한 어른도 본다. 그 분의 삶 길 동반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걸어도 본다. 여기서 삶의 철학 일부를 보자. 사실 내 삶 길 안에 그 분이 계시는 것이지 내 삶 길을 포기하고 남의 삶 길로 뛰어 드는 일은 아니다. 스승은 내 삶 길의 지배자가 아니라 내 삶 길 속에 있는 길라잡이일 뿐이다. 그 누구도 내 삶 길을 휘젓지 못한다. 다만 참고할 뿐이다. ‘삶철학자’는 당신인 동시에 나다. 당신과 나의 철학이 손잡고 공존하는 것을 나는 ‘같이 산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와 같이 내 삶 길을 같이 갈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인가? 나는 요즘 묘한 느낌을 받는다. 나와 다르면 같이 못 걷나? 왜 같이 걸을 수 없나? 도가 통하지 않으면 참으로 모를 일이다.

내 삶 길에 들어서서 답이 않나오는 사람을 만난다면 내 삶 길은 내가 주인이니 무사통과시키는 것이 좋다. 그를 설득하려 애쓰지 말자. 그 사람 때문에 신경 쓰고 설득을 위한 준비를 하고 실행하고 매달리는 짓은 정말 중요한 나만의 오늘을 말아먹는 날이 된다.

그건 그렇고,

삶 길은 육신의 욕망이 좌우지한다. 먹고 싶은 것들 사고 싶은 것들……. 싸잡아서 말하면 하고 싶은 것들이 대부분 육신이 원하는 것들이다. 정신이 원하는 것들을 찾아야 좋다. 그러려면 배운 대로 닦은 대로 맑고 밝은 길을 보며 진보를 추구해야한다. 현실보다 더 나은,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꿈꾸는 정신의 욕망이 육신의 욕망을 누를 줄 알아야한다. 우린 정신보다 육신을 위해 재물을 훨씬 많이 소비한다. 내 주변에도 널렸다. 어디에선가 마음을 줄 때 육신을 위한 것인가 정신을 위한 것인가 생각해보고 매월 정산할 때 마음을 위해 소비한 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기 두드려보면 반성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소비가 줄고 재물이 쌓인다.

수도修道는 마음을 평화로 적시며 돈 따위도 필요 없고 이득은 셈을 불허한다.

그건 그렇고,

- 바빠.
- 짬이 않나.
- 글쎄...... 피곤해서.
- 요즘 그럴 시간이......

예전 중학교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은 금이다.” 그런데,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이 두 문장을 삼삼히 생각했었다.

시간에 대해 감상은 해도 조바심은 없이 살았다. 그러나 ‘짬’의 개념이 생겼다. 짬나는 대로 나는 뭔가를 한다. 그 뭔가는 먼 산을 바라보며 입을 해~ 하고 벌리고 있든, 독서든, 공부든, 꽃구경이든, 술을 마시며 문학을 씹어대든 뭐든 짬나면 한다는 뜻이다. 당신이나 나나 같다. 쉬는 것도 쉰다는 의미 안에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잠들지 않는 한 무엇이든지 짬나는 대로한다. 들꽃을 뚫어져라 바라본다든지, 바람이 흙먼지를 이용한, 마치 뒤집힌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행위예술을 본다든지, 폐공장터 장작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첫 외출을 시작한 새끼고양이를 본다든지, ‘알을 깼나?’ 하고 회사 지붕에 튼 참새둥지를 본다든지, 시멘트사이로 나온 잡초에 물을 준다든지…….

흔히 ‘멍 때리는 짓’을 실제 멍 때리면 시체다. ‘멍 때리는 짓’처럼 보이지만 머리가 꿈을 꾸면 살아있는 것이다. 육감이 뇌로 침착하게 세세히 전달되면 삶 길 잘 걷고 있는 게다. 미소를 동반하면 기가 막히게 잘 걷는 것이다.

바쁘고, 시간 없고, 피곤하고……. 험한 일을 해도 짬은 내고 산다. 적어도 개망초 노란 술을 눈으로 접사할 시간은 있다. ‘짬’없는 바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지 않아서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 ‘짬’을 억지로 내는 경우다. 의무적으로 아니면 자기압박감으로 나를 진보시키기 위해 쫓기듯 ‘짬’을 내면 결과는 심신의 허약뿐이다. ‘짬’에는 반드시 ‘즐김’이 있어야 한다. 모든 창작과 밥벌이 그리고 휴식은 ‘즐김’을 동반해야 심신이 건강하다. 즐김은 만족과 동의어다. 세속적인 말을 쓰자면 죽도록 일해 돈 벌어 만족하지 말고 즐겁게 일해서 돈 벌어 만족할 줄 알아야한다. 즐기지도 못하고 죽도록 일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즐김이 없는 짬은 영과 육 단명으로 간다. 창작의 고통? 창작이라는 아름다운 단어에 왜 고통을 덧대어 창작을 죽이는가. 나는 왜 창작을 고통 안에서 말아먹고 있었고 왜 즐기지 못했었는지 성찰해본다. 부끄럽다.

그건 그렇고,

오늘 잘 자야 내일이 좋다. 오늘을 잘 살아야 잘 잔다. 죄를 짓거나 언행으로 남에게 해를 끼쳤거나 내 양심이 오늘을 못살았다 선고하면 잠이 잘 안 온다. 오므라들어 곤하다. 도둑놈이 제 발 저리다고 하지 않던가. 늘 오늘을 잘 살아야 잠도 잘 오고 내일도 좋게 온다. 잠들기 전에만 오늘 잘 살았는지 살피지 말고 때때로 살펴야 잘 때 좋다. 그래야 잠들기 전 살필 성찰이 적다. 결코 피곤한 삶 길이 아니다. 딱 하나다. 오늘을 참으로 살면 된다. 우울하거나 기분 나쁜 날이 거의 없다.

참살이는 웃음이고 즐김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되도록 웃고 살려한다고 하고 웃음을 되찾는다고들 하는데 웃음이 늘 내 주변에 있었음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옆에 있는데 못보고 울고 산 게다. 그렇다고 울적함, 고독, 외로움을 어둡게만 보지말자. 예술 속에선 ‘즐김’이다. 역시나 웃음도 즐김이고 일도 즐김 안에 있어야한다.

그건 그렇고,

다시 보자. 나는 웃는가를. 웃고 살고 있는가를. 웃고 살았는가를. 웃으며 살 것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웃을 수 없다. 웃을 준비! 앞을 미리보고 계획하고 웃을 준비가 없어 우는 게다. 나도 그럴 때가 있다. 나처럼 세상 무너져도 하던 짓하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나는 언제든 웃을 준비가 돼있다. 웃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늘 웃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자. 나는 왜 우울한지 생각 말고 저 사람은 형편도 어렵고 힘들 텐데 왜 늘 웃는가를 묻자. 홀로 웃으면 서럽다. 같이 웃자. 사람들과 같이 웃는 것이 배나 즐겁다. 마음이 웃어야 얼굴이 웃는다.


그건그렇고 : 2011.11.17. 23:52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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