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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44호 : 오늘의 일기

의료용으로 쓰고 남은 육신을 태운 아내를 받고, 일주일 정도 후에 납골당 꾸미기가 끝났다. 작지만 성탄절이라 램프라도 달까? 좋아하는 장미로 화원처럼 만들까? 했으나 조잡스러운 것이 아내나 내 취향은 아니라 고민하던 차, 한 시간 만에 용인에 있는 참사랑 묘역 바로 앞에 도착했다. 장모님도 시신 기증을 해서 매년 임마누엘 꽃집은 늘 내 단골이었다. 그런데 입구 문을 열자마자 꽃집 아주머니가 미리 주문한 쇠로 된 사진을 내밀며 “다니면서 꾸미세요.” 한마디에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개인적으로 석사학위를 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석판에 붙일 수 있는 조화까지 주시면서 얇아진 내 알통을 토닥였다. 한 자리 수십 년이면 석박사 따위 부럽지도 않잖은가. 왜 첫날에 납골당을 어찌 꾸밀지 고민하는가? 꽃집 아주머니 같은 전문가를 찾아라! 많은 도움을 받는다.

아내의 납골당은 생각조차 상상조차 못 하고 살아왔다. 남들은 100년도 산다는데 50년이면 너무 짧지 않나? 운전을 시작하자 눈물이 턱으로 몰리며 못 떨어지겠다고 시위해댔지만 이젠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언제나 와서 볼 수 있으려니 하며 나를 토닥였다. 아내의 유언은 언니에게 전해졌는데 내 글방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 유언이었단다. 글방이 뭐라고….


그건 그렇고….

아내의 일로 막살이하다가 지금은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월수금 투석이다. 잘 걷지도 못해 활동지원사가 오면 외출해 조금씩 걷고 있다. 휠체어를 벗어날 때 기뻤고 목발 대신 지팡이를 집어 들 때 기뻤다. 지금은 지팡이도 가끔 놓고 외출한다. 가봐야 편의점 정도지만 걷는 내내 들꽃과 나무들을 바라보고 좋아라한다. 이럴 땐 빨리 못 걷는 것이 이리도 좋을 줄이야. 세심히 풀들도 보고 하늘도 본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 예쁜 꽃들과 나무들을 보듬는 이 땅이 나는 좋다. 주말엔 항상 차를 얻어타고 꽃집에 간다. 일주일간 볼 꽃을 사러 가지만 가끔 화분을 살 때도 있다. 죽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되도록 살려 보려 애를 쓴다. 예쁘니까.


그건 그렇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다들 거울을 본다. 거울에 뭔 꿀 발라 놨나? 인사 좀 하고 살면 어디 덧나나? 난 아기나 강아지에게도 웃으며 인사한다. 인사는 원만한 대인 관계를 만드는 참 간단한 행위다. 처음 보면서 서먹하지도 않고, 농담도 하고 또 보면 반갑고…. 이 좋은 세상 즐겁게 살 일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새벽 4시 26분이다. 왜 잠을 안 자고 이 지랄인가. 인간이 지랄 맞아서 그런가? 생각난 김에 지랄을 찾아봤는데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또 하나는 간질을 지랄이라고 속되게 이른다고도 쓰여있다. 나는 선린상고를 나왔는데 친구 중에 포지션이 투수인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양호실로 업어간 적이 있는데 병명이 간질이란다. 숨기고 있다가 약을 안 먹어 쓰러졌다고 했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나저나 그 녀석은 잘 살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그 후로 꽤 친해졌었는데. 이름이 명관이었던가?


그건 그렇고….

지금 ‘That's What Friends Are For’라는 노래를 듣고 있다. 어릴 적부터 참으로 많이 듣던 노래다. 나오는 가수들도 좋고 기분이 편해지고 차분해진다. DJ 하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길거리 리어카에서 팔던 테이프들도 생각난다. ‘길거리 챠트’라고 했나? 길거리에서 자주 나오는 노래들이 요즘 잘 팔리는 노래 테이프라 했었고, 돈만 생기면 사서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그때는 가수들의 사생활이나 약력들이 있는 잡지도 있었는데 요즘도 있나 모르겄다. 하기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되는 세상이지. 뭣 하러 책을 사나. 좋은 세상이여~


그건 그렇고….

최근에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책과 이해인 시집들을 샀다. 오래간만에 사니 기분이 째진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기대하고 있다. 책을 사면 참 설레고 좋다. 어떤 명장면을 써놓았는지도 궁금하고 상상의 나래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해인 시집은 있기는 하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검색하다가 사게 되었는데 읽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맑고 좋은 시집이다. 노자가 울고 갈 지경이다.


그건 그렇고….

어둡게 살면 어둡고 밝게 살면 밝은 것이 이치다. 짧은 삶, 어두울 필요 있겠는가. 웃고 살자. 행복하고 좋은 꿈 꾸게 해달라 기도했다. 해가 뜨려 한다. 자야것다. 세상이 일어날 때 자는 놈은 대체 뭔가.


2022.08.14. 04:58 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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