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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43호 : 2020 장마

9년 만에 ‘그건 그렇고’를 다시 연재한다. 설렘이 있고, 아내가 좋아했던 장르이며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하다. 늘 손이 근질근질했고 스프링노트만 쓰던 시간을 뒤로하고 자판을 잡는다, 어떤 분은 “이제 글을 쓸 소재가 있나? 뭐가 있어야 쓰지.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고 다 공개된 세상에……. ”라고 푸념한다.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나는 말한다. “그럼 접어!”

그건 그렇고

며칠 전 새벽에 천둥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얼마나 큰소리였는지 외부소리는 들리지 않는 내 방에 그것도 잠들면 시체가 되는 내가 깨어날 정도면 꽤 큰 소리였던 것 같다. 베란다에 가보니 비가 무지막지하게 내리고 있었다. 몇 시간 뒤 해가 떠오를 때쯤 안산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곳은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더니 “무슨 일 있니?”라는 답변이 왔다. 별일 없었나 보다. 안산에서 9년을 살던 중 딱 한 번 비 때문에 일어난 일화가 있다. 아침에 갑자기 아내가 “내 차가 물에 잠기고 있어!” 하면서 나를 깨웠다. 나가보니 뒷바퀴 절반이 물에 잠겨있는 게 아닌가. 차를 안전한 곳으로 몰아 주차를 하고 아내를 출근시켰다. 집에 들어오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나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건 그렇고

어제 책상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아파트 관리실 방송이 나오고 휴대전화로 문자가 오면서 비 피해가 없도록 유의하라는 소리를 보고 들었다. ‘뭔 일이 터졌구나!’ 하는 직감에 커튼을 젖혀보니 창밖으로 물을 퍼붓듯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TV를 켜보려고 리모컨을 찾는데 도통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 ‘TV가 장식이냐? 평상시 뉴스라도 보고 살아!’ 하면서 리모컨을 찾아댔다. 결국, 침대 오른편 구석에서 리모컨을 찾았다. 뉴스가 나오는 첫 화면에 어떤 할머니가 울고 앉았다. 바로 알아차렸다. ‘이거 심각하구나!’ 농부는 비닐하우스단지 앞에서 울고 있다. 모두 물에 잠겼고 두 동은 이미 처참하게 허물어졌다. 오이란다. 흙 속에 엄마와 딸 그리고 2살 된 손녀를 소방대원들이 장비를 동원해서 찾았지만 모두 사망했고, 다음 화면엔 잘 가던 차가 옆으로 가더니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사람이 튀어나온다. 기가 막힌 건 남쪽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고 열대야로 주민들이 힘들어한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중국 상해에 상륙한 태풍이 사라졌는데 그 반동으로 수증기를 품고 있는 구름이 우리나라 중부지방으로 향한단다. 지금까지 내린 비는 비교도 안 되는 비가 내린단다. 뭘 어쩌라고……. 시민제보로 들어온 영상을 봤다. 달리던 차 앞으로 왼쪽 산에서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도로를 막으며 그 차는 급정지했다. 논바닥 안에 저수지에서 내려온 팔뚝만 한 잉어가 튀고 있다. 나는 생각했다. ‘인간은 자연을 너무도 무시하고 사는구나!’ 자원봉사팀은 이미 1차 출발했고 더는 그들의 눈물을 볼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같은 날인 오늘 뉴스에 러시아와 미국의 산불이 커져 이곳저곳에서 여객기가 급회항한단다, 우리는 장마를 겪고 남쪽은 열대야로 시달리고 있다. 시베리아 남부는 얼음이 녹아 마을이 침수되고, 더 황당한 건 우리에겐 아직 태풍의 계절이 오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며 가슴이 저린다. 차가 어찌 되고 집이 어찌 됐든 사람이 우선이다. 가뜩이나 코로나 때문에 힘든데 이상 기후로 사상자들은 늘어나고 있다. 하늘은 계속 회초리를 치고 알아차리라 하는데 우린 왜 깨닫지 못하는가. ‘생긴 대로 살아!’라는 말을 우린 많이 들으며 살아왔다. 왜 자연을 생긴 대로 두지 않는가. 지금의 지구를 노자는 손뼉을 치며 껄껄 웃겠지만 언젠가 우린 깨우치지 않을까?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등려군(鄧麗君)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듣고 있다. 그것도 글을 쓰는 내내 반복재생으로 듣고 있다. 앉아 있는 이 책상 정면에 베란다가 있고 그 창들 밖으로 논들과 밭들이 보인다. 커튼을 젖히는 어느 날엔 둥근 달이 보이고 그러다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 어느새 왼쪽에 있던 달이 오른쪽으로 가버려 보이지 않는 날도 있다. 소주 한 잔 마시고 담배 하나 물고 앉아 있으면 참으로 평화롭다. 나는 오늘 빌어 본다. 법이 없어도 잘 살 사람들이 2020년 장마에 다치지도 죽지도 말고 잘 이겨내길 온 마음으로 말하고 싶다.

2020.08.04. 09:43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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