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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14:22

구더기와 대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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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와 대청소

얼마 전 선물로 달걀 한 판을 받았다. 여덟 개를 냉장고 문 위에 있는 달걀 터에 넣고 나니 나머지 달걀들이 문제였다. 냉장고가 작다보니 달걀판을 통째로 넣기 힘들었는데, 냉장고 벽면에 기울여 넣으니 들어갔다. 달걀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오늘 냉장고를 열어보곤 우연히(?) 달걀판을 발견했다. 그제야 부랴부랴 판을 꺼냈는데 달걀들이 꽁꽁 얼어있었다. 부피가 팽창하다보니 모두 금이 가거나 깨져있었다. 고민하다 일단 녹이고 보자 생각하고 달걀로 할 수 있는 음식들을 떠올렸다. 달걀찜, 달걀탕, 달걀말이...

그건 그렇고...

하나하나 달걀껍질을 벗기며 냄비에 담고 있는데 껍질을 버리다가 쓰레기봉투에 뭔가 움직이는 것들이 보였다. 구더기였다. 봉투를 부엌 한가운데로 가져와 보니 대충 3~4백 마리정도가 우글거렸는데 다 큰놈들은 이미 부엌바닥을 오가며 한가로운 여름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순간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들꽃들이 생각났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살 수 있는 최소의 여건만 있으면 어디서든 생명은 탄생하잖나. 구더기도 만찬가지다.

문득 구더기도 심장이 있나 궁금했다. 학교시절 개구리해부의 경력을 바탕으로 구더기를 해부해보고 싶었다. 논문조작의 위험성도 있었지만 구더기 논문은 쓰지 않기로 했다. 문구용 칼로 구더기를 갈라보니 심장은 보이질 않았다. 있는데 못 보는 건가? 순간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놈은 정말 대단한 기술력을 갖고 있구나.”

그건 그렇고...

그냥 둬도 괜찮나 생각하다 쓰레기봉투를 보니 큰 놈들이 계속 봉투 밖으로 나온다. 방까지 들어올 판이다. 봉투는 아직 헐렁하니 버리기 아깝고... 그렇다! 대청소를 하는 거다. 대청소를 하면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올 것이고, 저 봉투를 내다 놓을 만큼 꽉꽉 채울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청소시작! 찢어질 정도로 쓰레기를 봉투에 채워 넣고 골목 어귀에 전봇대 아래 내려 놓으며 구더기와 대청소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다 전봇대 위를 보게 됐는데, 전봇대에 이정표가 하나 보였다. “허난설헌2길” 이라 쓰여 있다. 운동화를 질질 끌고 아파트 담을 따라 내려가니 “허날설헌1길”이라 쓰여 있다. 다시 거슬러 올라와 반대편으로 조금 내려가니 “사임당길”이라 쓰여 있다. 동네 길 이름이 예술이다.

그건 그렇고...

개나리, 목련, 벚꽃, 장미들이 지고 요즘 별다른 꽃이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 동네 길 이름 찾다가 무궁화를 봤다. 흰색, 분홍색이 뒤섞여 길가를 장식한 모습을 보며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무궁화를 오늘 처음 본 것이다. 나름 國花라는데 왜 무궁화는 쉽게 볼 수 없는 꽃인가. 자료를 찾아보니 일제강점기 때 무궁화를 키우던 애국지사 남궁억을 일본 경찰들이 끌고 가 형무소에 가뒀다는 기록도 있고, 애국가를 만들며 자연스레 국화가 됐다는 유래도 있지만 왜, 누가, 언제 國花로 지정했는지 기록이 없다. 진딧물 등 벌레들이 많이 붙고 잎도 지저분해 사람들이 키우기 꺼린다는 말도 있다. 나는 마르고 닳는 애국가 가사도 별로지만 무궁화도 별로다. 얼마 전엔 국기에 대한 맹세도 바뀌었다고 하던데 그것도 별로다. 별로인 것도 별로다.

이명박한테 존칭어 안 썼다고 잡아가던데 나도 여기서 더 떠들었다간 잡아 갈 듯싶어 그만 쓴다.
그나저나 저 많은 달걀찜은 언제 다 먹누.

2008.08.01 22:41 風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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