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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13:46

그건 그렇고 -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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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 자존심

“오랜 시간 나는 잘 해준 것 같은데 왜 날 떠나려 하나.” 생각이 들 땐 늦었다.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말에 무게를 실어 몇 번이나 일렀거늘 당최 인성이 변하질 않는구나.” 생각이 드는 상대방도 이미 늦었다.

저 두 사람이 원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선 가늠이 불가능한 노력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회복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정쩡한 등돌림으로 끝난다. 간혹 잘못을 알고 변하려 애써본다며 다가오지만 파헤쳐진 골을 메우기엔 서로가 힘들다. 이겨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내 주변에선 성공한 사례는 없다.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둘 중 한 사람의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졌음을 의미한다.

인연이 끝나는 날 전엔 모른다. 상대가 자존심을 누르고 말하는지 농담으로 말하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무시하고 귓전을 스치는 바람정도로 생각하다간 인연이 끝나는 날에 후회하게 된다. 필요이상으로 배려하는 것도 문제지만 필요이상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뭉개는 것이 더 위험하다. 그렇다면 자존심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자.

“자존-심 (自尊心) :「명」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반상(班常)의 법이 존재하던 옛 시대의 자존심과는 조금 다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존심은 가난한 자들이 강하게 주장한다. 비굴하게 돈을 꾸고 그 돈으로 쌀을 사서 밥을 해 꾸역꾸역 아가리에 처넣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로 자존심을 내세운다. 나처럼 얄팍한 지식을 갖춘 놈이 돈 때문에 어머니와 이별하고, 형제가 해체되고, 홀로 쪽방에 살며 내세우는 것이 자존심인 것이다. 그러나 내 경험상 쌀보다는 자존심이 나(自我)를 흔들리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건 그렇고

언제부터 나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는가를 생각해본다. 과연 나는 허물어졌는가. 사람들은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늘 색안경을 끼고 사니 그렇게 보일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 특수부대원이나 입을 법한 위장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 겉치레가 혐오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아마 故 김수영 시인을 알고 난 뒤부터라 생각한다. 돈 때문에 누르고 살던 자존심과 반항심이 봇물처럼 터졌고 다니던 회사가 아닌 이 사회에 대한 쓸데없는(?) 고심의 시작부터 나는 허물어졌다. 모든 옷을 벗었고 소속된 모든 것들에 대해 벗어났다. 그 뒤로 이 모양 이 꼴로 산다.

그건 그렇고

“글이 사람을 만든다. 그러나 그 글은 사람이 쓴다.”

그건 그렇고

충고에 대해 한 마디 한다. 교육에서든 책에서든 우리는 남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거나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사람이 되라고 들어왔다. 물론 좋은 말이다. 그러나 “내게 이야기 하거나 내게 충고하는 자의 자질을 보고 들어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과연 내게 충고하는 자가 나 이상의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는지, 그것이 증명이 됐는지 그리고 나를 얼마나 통찰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그에 대해 스스로가 판단해야 한다.(책도 마찬가지다.) 듣고 마는 것은 그 후에 할 일이다. 요즘은 개나 소나 제 잘난 맛에 살기에 충고도 충고답지 않으며 말이 많아 충고도 농처럼 들린다. 역으로 남에게 말할 때에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혀를 남발하지 말라! 충분한 자격이 있고 보편적으로 도나 예에 어긋나 충언을 해줘도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버티는 사람이 있다. 그런 피는 당장 피하라. 어미애비도 모르는 피니라.

그건 그렇고

최고의 해법은 입을 다문 채 마음이 움직여 몸으로 보여 주는 것인데 그것이 여간 어렵다. 말을 해줘도 책을 쥐어줘도 모른다. 그저 하던 대로 살밖에…….

그건 그렇고

어떤 시인이 나의 시를 자신의 누리집에 퍼놓고 씹어대고 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뿐이었지만 마음이 상했다. 왜 내 누리집에서 대놓고 못 씹나? 그것도 예절인가? 시도 좀 시 같은 걸 가져다가 씹던가 하지. 별 쓰레기 같은 습작시를 가져다가 그럴 필요 있는가?

그건 그렇고

옆집아저씨가 이사를 간다고 한다. 1층엔 할머니, 나 그리고 아저씨 세 가구인데 늘 전기세는 아저씨가 걷으러 다니셨다. 할머니 전기세는 좀 덜 걷자고 나와 작당하기도 했고 근래 친해졌는데 아쉽다. 곧 나도 집을 비워줘야 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요즘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 이것저것 정리도 좀 하고, 박살난 자존심도 좀 회복하고, 동굴도 좀 알아보고……. 그러나 딱히 방법은 없다. 날도 풀렸으니 다시 노숙자로 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스르르 사라질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은 찰나도 예언하지 못한다. 급살 같은 심장마비가 올지, 비오는 날 보도블록에서 장초하나 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뽁뽁대며 뿜는 담배연기가 빗소리와 참 잘 어울리는 밤이다.

2009.05.15 22:10 風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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