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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기계, 휴대공해, 휴대중독

98년부터 벤처기업들의 거품이 드러날 때까지 삼성역 근처에서 근무를 했었다. ‘테헤란로’라고 하는 길의 끝부분쯤에 회사가 있었다. 그 때는 모뎀이라는 것이 있어 팩스 전송 시 들리는 ‘삐리리~ 지지직’하는 연결 음을 들어가며 누리터에 접속을 했었는데, 문자로만 이루어진 누리터 환경에서 그래픽 위주의 조금은 깔끔한 환경으로 바뀌던 때였다. 요즘처럼 영상이 흐르는 입체적 환경이나 화면은 상상만 했던 때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팩스마저도 잘 쓰지 않는다. 전자우편으로 대부분 일들을 해결하면서 외출해서 하는 일과 출장이 줄어들고, 더불어 걷는 양도 줄었다. 등본 등 각종 행정양식과 주식이고 은행이고 집에서 일 다 본다. 그러다보니 헬스클럽 없는 동네가 없고 게다가 다이어트 시장이 급격하게 늘어 지금은 수조원규모의 시장이 돼버렸다. 급속히 늘어만 가는 성인병들도 걷는다면 줄어들지 않을까? 사람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이 휴대기계들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긴 문장도 보낼 수 있는 휴대전화기도 있지만 한정된 길이의 문장만 보내야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말이 짧아지고, 은어, 축어, 신조어, 비속어, 변질 된 외국어들이 등장하고 이것을 그대로 방송과 언론이 대량 유통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묘한 단어들이 국어사전에 등록예정 중이거나 심의 중이다. 사라져가는 순우리말은 유치하게 느껴지고 신기술로 개발된 예쁜 기계들로 나누는 언어가 세련되고 고급스럽다는 공감대도 있다. 문장을 수식하려 들지 않아 예절은커녕 공문서 냄새가 물씬 나거나 군용 언어 같다. 이미 쓰던 외계어(통신언어)부터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알기 힘든 외계어들도 있다. 학생들을 대할 때 집에 국어사전이 있냐고 물으면 할아버지 취급한다. 휴대전화 꺼내서 단추 몇 개만 누르면 검색이 가능한데 뭣 하러 그 두꺼운 걸 돈 주고 사냐는 거다. 그러다보니 다른 우리말엔 별 관심이 없고 현실 속에서 순간순간 접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단어만 잠깐 알아보고 만다. 그러니 우리말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 아니겠나. 게다가 우리는 방송과 언론, 누리터와 휴대전화기가 가져온 세대 간 언어불통이 있다. 손녀의 말, 편지, 휴대전화기를 통한 문자를 할머니가 이해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기업들이 돈 버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지 말고 수익의 일부를 한글을 위해 썼으면 한다. 기계와 함께 한글도 같이 수출하는 방법이나 휴대기계 속 한글놀이, 축제에 투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글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며 말은 있었으나 글이 없던 인도네시아 소수민족 찌아찌아族의 공식 문자다. 그리고 문자 중 가장 빨리 휴대전화기에 입력하는 과학적인 문자가 한글이다. 중국이나 일본, 영어권 국가들은 휴대전화기로 문자 한통 보내는데 한글에 비하면 긴 시간이 필요하고 방송을 통해 보니 러시아어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한글은 휴대전화기를 만드는 기업에도 고마운 존재다. 과연 고마워하고 있을까?

정보기술시대는 고속을 원한다. 정보량은 많아지고 대부분 실시간으로 일이 처리 되는 지구촌이다. 전송되는 정보는 문자 말고도 사진이나 고화질의 영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대응하기 위해 꾸준히 기계를 발명하고 개발해왔다. 종이가 사라진다며 등장한 ‘기계를 통한 독서시대’가 열렸고, TV로도 책을 보며 주문도 한다. 작은 기계 하나에 시립도서관분량의 책이 들어가는 건 문제도 아니다. 휴대기계를 팔거나 통신료를 받는 기업의 고속성장은 국민이 줬다. 그렇다면 그 공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것도 국민책임인가? 팔아넘기고 허가 해주고 관리했던 자들은 무엇을 책임지고 있는가. 기업과 국가는 휴대기계로 인한 공해와 그 부속품들이 물들이고 있는 토양오염을 막을 의무가 있다. 그간 해왔던 짓들처럼 일단 팔아먹고 나중에 심각해져 말들이 많아지면 여론수습차원으로 기업과 국가가 부랴부랴 떠들 일이 아니다. 더불어 우리에겐 필수품이라 말하는 휴대기계예절이 필요하다. 기초교육에서부터 통신언어교육이 참고나 교양정도가 아닌 필수로 지정되어야하며 앞으로도 뛰어난 가치를 지닌 정보기술을 우리 말글을 살리고 세계로 알리는 좋은 도구로 어떻게 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가 갖는 고유기능을 포함한 화상전화, 독서, 구매, 오락, 사전 등 집에 있는 큰 컴퓨터에서 얻는 대부분 기능을 갖춘 예쁘고 작은 기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고 싶은 욕구가 이는 것은 새로운 기술문명과 문화를 소비하는 세대교체가 가져다 준 ‘기호가치’가 한 몫을 한다. 다들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으면 상대와 대화할 때나 연락할 때 소외감을 느낀다. 명품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이 사니 이 사람도 사고, 너도나도 사니 나만 없으면 소외감을 느낀다. 이런 삶을 더불어 산다고 말하기엔 억지가 있다. 모든 첨단휴대기계 등 ‘기호가치’의 구매력을 높이는 것은 기업이다. 한두 달 전 내놓은 제품보다 더 광고하고, 더 예뻐야 하고, 더 기능이 많고, 더 비싸야 한다. 그러면 다른 기업은 가만히 있을 까? 경쟁 기업은 한층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 내놓고 우리는 그들이 설계한 것들 안에서 고를 뿐이지 나의 기호는 아니다. 쉽게 말해 내 것이 없고 내 개성이 없다. 이 약점을 묘하게 이용한 것이 통신업체의 배경사진, 수신음, 대기음, 음악 등의 판매다. 같은 기계지만 조금이라도 내 개성에 맞게 조작을 한다지만 어차피 다른 기계에서도 충분히 구현 가능한 것이다. 새로운 휴대기계가 나올 때마다 비용이 올라가다보니 저소득층이나, 기업들이 요구하는 문화에 흡수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소외되고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다. 이미 대기업에 의해 당연히 모두가 받아야 할 문화를 누리지 못하고 소득에 따라 문화차별을 받고 있는 셈이다. 늘 돌아오는 답은 “억울하면 벌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제작하고 그 기업이 소유한 전국의 개봉관에서 개봉한다. 단편영화나 사정이 어려운 영화제작자들은 크고 유명한 개봉관엔 발붙이기 힘들다. 보편화, 대량공급하며 기호를 지배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다 봤다는데 나만 못 봤다면 그들과의 관계에서 이탈 되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지하철 입구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신문을 혐오한다. 이유는 복제인간들처럼 똑같은 신문을 들고 있는 꼴이 보기 싫어서다. 차라리 내가 헌책방에서 500원 주고 고른 누런 책이나 아니면 사놓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을 들고 나와 펼치는 것이 낫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이사를 했는데 답답해 한 사람들이 있다. 집주인, 공인중개사, 이삿짐 차 아저씨, 통신회사 아저씨, 도시가스 연결하는 아저씨다. 연락이 되지 않으니 발만 동동 구른 모양이다. 계약금도 내고 언제 어디서 만나기로 이사 전에 모두 이야기를 끝냈는데도 믿지 않고 당일 통화를 해야 해소되는 조급증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3천 원짜리 공중전화 카드를 하나 사서 공중전화로 안심을 시켜놓고 또 재확인을 한 후 이사를 했다. 휴대전화기가 없어 더 답답한 사람들은 택배 아저씨나 집배원 아저씨다. 집에서 기다리다가 급한 일이 있어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현관문에 쪽지들이 붙어있다. 방문 했지만 아무도 없어 돌아가니 전화를 달라며 휴대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간다. 배달 된 물건을 대신 받아주던 이웃 간에 벽과 문이 두꺼워지고 혼자 사는 젊은 사람들이 늘면서 휴대전화는 주민등록증과 같은 필수품이 됐다. 요즘은 초등학교 입학 선물이 돼버렸고, 흉악범죄 대응용으로 인공위성위치추적을 위해 또는 경찰이나 구조대원과 바로 연결하기 위해 어린이들 손에 쥐어지고 있다. 여유는커녕 휴대전화로 늘 긴급 상황실 분위기다. 바쁘지도 않은데 불안하고, 휴대전화기가 내 주변 어디에 있는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하며, 오지도 않는 문자나 기다리며 기계만 바라보다가 이것저것 누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통화버튼을 눌러 통신낭비의 길로 간다. 그렇게 시간이나 보내는 불안한 여유들을 종종 본다. 그 휴대기계가 반드시 필요한가를 생각해보자. 휴대기계를 사더라도 기계에 구속되지는 말자. 생활에 여유를 줘야지 긴장감과 조급함을 준다면 사람에게 해가 되는 기계다.

그건 그렇고,

어느 날 인천행 지하철에 앉아 서류를 대충 정리해 가방에 넣고 읽던 책을 마저 읽으려 꺼내는 데 정지된 화면처럼 주변사람들이 멈춰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들 세숫비누만한 기계를 향해 고개를 떨어뜨리고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마치 인간의 영혼을 빨아 마시는 휴대전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저들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 한 칸을 걸었다. 문자를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화투나 카드놀이 하는 사람, 동영상으로 오락방송 보는 사람, 사진 찍고 보내고 받고 등 저마다 강한 집중력이었다. 여가 활용인가 중독인가 아니면 그저 시간을 날리는 중인가. 길을 걷다가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작은 기계를 보며 실실 웃고 지나는 사람을 본다.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저러나 생각도 들고 예전 동네 바보들이 저러고 다니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가장 신경에 거슬리는 건 휴대전화 소음이다. 수신음도 수신음이지만 옆에 앉아있는 아주머니 가정사를 왜 내가 모두 들어야 하는가. 그 아주머니 남편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든 바람이 나든 내가 왜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목소리는 왜 그리 큰가. 심지어 조용히 누려야하는 장소인 공연장, 극장, 도서관, 독서실, 성당, 법당 할 것 없이 휴대전화가 주는 공해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다. 어느 장소든 자기 안방이고 자기 사무실인양 떠들고, 울리고, 찍어 댄다. 오죽하면 공연장마다, 지하철 각 칸마다 ‘휴대전화는 진동으로’라는 표어가 붙어 있겠는가. 무식의 극을 달리는 몇몇 사람들이 안 지키니까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런 표어도 나는 공해로 본다. 가뜩이나 지하철은 어디나 광고 천지인데 그런 표어까지 봐야하나?

그건 그렇고,

아는 지인이나 받은 책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시낭송 음반을 선물한다. 등기나 속달도 아닌 일반 우편으로 보낸다. 250원하는 우표를 한 장만 더 붙이면 서너 날 지나 잘 도착한다. 편지도 마찬가지다. 급하다면 전자우편이나 휴대전화문자가 편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급할 일도 없고 집전화기 하나면 충분하다.

어느 날 은행엘 가서 글로 써 낼 것이 있었는데 멀쩡한 정신인데도 나의 필체가 만취 상태의 필체였다. 한문 같기도 하고 아랍어 같기도 하고 어쩌다 내 필체가 저 모양으로 변했나 생각이 들었다. 써 놓은 내 글씨를 보며 그 종이를 씹어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편지나 엽서 또는 일기도 써보며 내 필체를 찾고 가꾸는 것도 나름 재미다.

내 책상 위엔 타자문화와 육필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종이나 우표를 좋아한다고 해서 시대에 적응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반대로 첨단기계로 무장하다시피 다니는 사람들도 시대에 적응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첨단기계가 없어도 잘 사는 사람이 있고, 첨단기계를 갖추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걱정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생계가 걸린 문제가 아니라면 반드시 그 기계가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것은 환경을 위해서도 통신낭비와 각종 공해를 줄이는 데도 좋은 자세이자 가져야할 양식이다.

내 컴퓨터는 6년을 내 옆에 두고 있다. 내가 컴퓨터로 하는 일들은 고성능을 요구하는 일들이 아니다. 고장으로 수리를 못할 지경이면 고장 난 부품만 갈아 끼워 쓴다. 늘 집 안에 있으니 남에게 피해 줄 일도 없다. 그러나 휴대기계는 다르다. 필요한 휴대기계를 갖게 되면 ‘기계예절’에 대해 나름 다짐하고 되도록 새것으로 바꾸지 말고 오래오래 쓰자.

그건 그렇고,

얼마 전 젊은 부부가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아기 분유를 챙기지 않아 아기가 죽었다는 기사를 봤다. 이 부부는 중독이다. 중독은 간단하다. 나와 남의 삶에 해가 되면 중독이다. 휴대기계든, 컴퓨터든, 각종 취미나 기호품들……. 보통 습관이 중독으로 가는데 반대로 나와 남의 삶에 도움이 되고 희망이 되는 습관을 찾아 들이자.

중독으로 가지 않으려면 ‘적당히’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시 한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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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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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은 적당히 타지 않는다. 죽도록 죽어라 죽을 힘을 다해 검정을 모두 벗을 때가지 탄다.
유독가스가 모두 나가면 하얀 재만 남기고 죽는다.
그 유독가스를 조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당장은 따뜻하고 포근하고 좋지만 스며드는 가스를 단단히 막지 못해 중독 되는 것이다.
휴대기기든 컴퓨터든 단단히 막지 못하고 그 쾌락을 조절하지 못해
그 기계에 구속되다 중독 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주도 즐기다 말아야지 죽도록 죽어라 죽을 힘을 다해 마시니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는지 없는지 하다 "골뱅아 부디 안녕~" 하면서 세상 뜨는 게다.

왜 또 소주 얘기는 꺼내가지고......


2010.05.05 15:14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