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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2 17:19

가면 -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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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 윤영환

  코로나19 시대를 살아내며 변화된 모습 중 하나가 화법의 변화다. 보다 직설적이고 수사학적 표현이 줄었다는 일이다. 문장이 짧아지고 뭐든 짧게 말하려는 문화가 생겼다. 이 현상을 나는 ‘가면의 공식화’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기 전엔 외모뿐만 아니라, 말도 각종 장식과 꾸밈으로 상대를 대했다. 쉽게 말해 사회적 가면을 쓰고 참 나를 보이길 꺼렸다. 집이나 목욕탕에선 벗고 있으니 가면이 필요 없지만 나가려 옷을 챙겨 입는 순간 우리는 가면을 집어 든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는 공식적으로 마스크를 권장하며 합법적으로 가면을 쓰게 해주니 돌려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말들이 직설화법으로 바뀌고 문자 메시지가 대세가 된 것이다. 이 많은 가면은 늙으며 한두 장씩 사라지고 죽기 며칠 전 완전히 벗는다.

  모든 사람은 남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기를 원한다. 그렇게 살고 싶고 인정받으면 행복을 느끼며 자식들에게도 이것을 가르친다. 따라서 남들이 나를 좋게 평가하면 성공한 인생이라 쉽게 믿는다. 때로는 그것만이 삶의 목표인 양 사는 이도 있다. 이러한 지금의 문화는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정치에서 시작해서 전쟁 대목에서 극을 치달으며 정착된다. 자신을 드러내면 오히려 약점이 되고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어 가면의 적절한 사용법 처세서가 됐고, 벗고 사는 법도 적어 뒀다. 그러나 지금은 벗고 사는 법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다양한 종류의 가면 제작기법이 대흥행하고 있다. 학생은 없는 돈 털어 취업에 필요한 가면들을 생산하고 성인은 사람 따라 바꿔쓰는 가면들을 제작하고 있다.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상대에게도 거북함이 없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는 나이기 때문에 적절한 가면을 쓰고 단점을 가리며 남을 대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연극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분쟁도 줄고 필요 없는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으며 끝맺음이 매끈하다. 남은 그 가면을 나인 줄 착각하고 좋은 평을 주고 칭찬한다. 그 가면 뒤에서 나는 웃고 만족해한다. 심지어 가면을 쓰고 남을 대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산다. 늘 써와서 가면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를 살아간다. 나도 그렇게 살다가 한 느낌이 있었는데 바로 꽃이었다. 꽃은 말이 없고 조용히 피어나 남을 행복에 젖게 한 후 침묵으로 그 생명을 뽐내다 시들어 땅으로 간다. 자연스레 향기가 뿜어져 나오고 어떠한 약품이나 포장 없이 태어날 때 유전자 그대로 삶을 살다 우주 속 원자로 다시 돌아간다. 참으로 진실하게 살다가는 걸 나는 너무도 늦게 알았다. 그렇게 늦게나마 얼마 전부터 나는 나로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남들이 서먹해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가면을 쓰고 대했다면 괜찮은데 가면을 벗고 사니 서로 어색한 것이다. 내 의지로 가면을 벗은 나를 보여주기가 매우 힘들고 용기가 필요했다. 그 좋은 이미지를 다 버려야 했고 모난 모습이 있다면 그대로 보여주기가 매우 쑥스러웠다. 사람들은 다시 가면 쓰기를 바랐지만 나는 거부했고 오늘 나는 ‘당신이 보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라고 말하고 산다. 흔히 그 가면을 일컬어 예절이라고 말한다. 가면을 벗으면 예절 없는 인간이 돼버린다. 어느 정도 가면을 쓸 때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둥그스름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고.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참 나를 보여주는 일이 왜 서먹할까? 미래는 모른다. 단 1초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사실이며 빼도 박도 못한다. 지금 나를 가리고 살면 과거의 나는 가면을 쓴 나로 남게 된다. 그러나 지금 벗으면 나머지 삶은 참 나로 남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가면이 뭔지 모르면 3살 미만의 아이와 대화를 해보는 것을 권한다. 가면이 뭔지 바로 알게 된다. 가면을 쓸 이유가 없는 존재는 가면이란 단어조차 모른다. 아프면 울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 우린 그렇게 자연스럽게 잘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적어도 내 경험엔 아파도 참았고, 배고파도 기다렸다가 먹고, 졸려도 참고 일하며 살아왔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우린 많은 가면을 소장하고 산다.

  살며 많은 학설을 들어왔다. 그 가운데 사회적인 인간과 공동체를 읽어온 이유는 홀로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면을 쓰고 같이 살 것인가 아니면 참 나로 살 것인가를 선택해야만 할 때가 온다.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 수 있다. 선택과 용기다. 어떻게 사는 삶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는지 우리는 배워서 알 수 있다. 나를 좋은 이미지로 만들어 가는 책들도 많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권장한다. 아주 쉽고 그 길은 곧 습관이 된다. 이 가면에 관한 기술서가 참 나를 대신해 살아간다. 가면을 벗는 일이 용기다. 아주 어색하며 전혀 다른 나로 살아가게 된다. 외면당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고 진실한 내 모습을 많은 가면이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벗고 살기를 권하는데 왜 벗어야 할까? 그 이유는 자연스럽게 살기 위해서다. 자연과 가까워져야만 동맥 연결이 가능하다. 최대한 가까워져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우습게 대하고 별다른 값어치를 느끼지 못하고 산다.

  때론 밟고 지나도 별것 아닌 꽃을 보며 ‘저 작은 꽃이 무슨 힘으로 수백 배나 더 큰 사람을 제 앞으로 오게 하는가?’를 생각한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부자연스러운 것은 관심이 전혀 없다. 기계나 아스팔트를 보고 감탄하는가? 그러나 자연스러운 것들, 예를 들자면 비나, 눈, 바람, 꽃, 나무, 동물 같은 것들에 사람은 눈길을 준다. 그리고 자꾸만 그것들과 더불어 쉬려 한다. 요즘엔 아예 그 자연을 벗 삼으려 개발되지 않은 곳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연스러워지고 싶어 하는 본능이다. 자꾸만 포장하려 드는 이유는 뭘까? 주름을 숨기고 보톡스를 주사하는 이유는 뭘까? 습관이 만들어 준 가면 때문이다. 그렇게 교육받고 그렇게 살아왔다. 습관이 돼버렸고 써야만 편하다. 그것이 남을 대하는 예절이라 배웠고, 특히 집 밖으로 나갈 땐 반드시 가면부터 챙긴다. 그 이유는 상대도 가면부터 챙겨 나오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민낯으로 살지 못하는가. 거짓말은 정치인을 꿈꾸면 쉽게 배울 수 있고, 법 테두리 안에서의 사기는 홈쇼핑을 보면 되고, 진실처럼 보이는 교묘한 추악함은 언론을 보면 된다. 사방 천지가 가면이고 참된 인간을 맛보기엔 힘든 세상이다.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종 시골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본다. 그분들에겐 가면 따위는 없다. 예쁘면 예쁘다고 말하고 못생겼으면 못생겼다고 말한다. 위에서 예를 든 3살 미만 아이와의 대화 내용과 흡사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서로 끌어안는다. 하나둘 가면이 늘어갈 때 우리 몸은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다. 벗지 못하는 이유는 민낯을 싫어하는 가면들 때문이다. 어차피 그들과 살아야 하는 숙명이 숨구멍을 막아버릴 때가 있다. 그렇다면 그 가면들을 떠날 것인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잘못된 전통이나 습관을 바꾸려 온갖 노력을 했다. 개인이 집단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며 절망도 따른다. 우수한 선진국들의 기업을 보면 프로젝트에 실패한 사람을 쉽게 해고하지 못한다. 그 사람만이 왜 실패했는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가면을 벗자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는 사람이 아니라 아예 프로젝트에 실패한 일조차도 숨기고 산다. 진실을 말하면 역적으로 몰아간다. 민낯은 진실을 말할 때 따돌림을 당한다. 속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가면을 벗을 때 참된 서로를 볼 수 있다. 왜 서로 가면을 쓰고 만나는가.

  이젠 때가 됐다. 지식은 열렸고 10살 어린이가 데카르트를 읽고 상대성이론을 공부하는 시대다. 민낯을 들고 서로를 마주 볼 때가 왔다. 가면을 쓰고 말하는 것을 서로가 뻔히 아는 데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민낯이 가면을 향해 손가락질할 때가 지금이다. 예절 들먹이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이유는 해보지 않아서다. 흔히 말하는 꼰대질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 두려움에 벗지를 못하는 것이다. 본인 명함에 전과자처럼 빨간 줄 그어지는 것 같은 모욕감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머지 손가락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모르고 검지만 뻗어 댐을 웃자. 자연과 가까워질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다리가 쭉 펴지며 불면증도 사라진다. 내가 가면을 벗고 자연과 보다 가까워지며 겪는 다양한 변화 중 추천할 만한 일은 입이 무거워진다는 것이다. 철학자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살기 위한 첫걸음은 가면 벗기에서 시작한다.

2023.01.08.  09:15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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