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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것을 방해하는 것들

 

느낌으론 하루 만에 가을이 가버린 것만 같다거리엔 아직 매달린 잎들이 많은데 겨울이 잎사귀들의 삶을 재촉한다아니아마 죽어버린 것들이 산 듯 매달려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방 안 공기가 몹시 차다곰팡이 냄새나는 옷가지를 뒤져 하나 걸쳤다그리 해도 손 발가락이 굳어 감각이 둔하다한 달에 한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갈 때나 도서관 갈 때아니면 술이나 담배가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내 방을 벗어나지 않는다몇 년 동안 얼어 죽지 않은 것이 여간 묘한 게 아니다.

 

은행원포장마차보험설계사야구장 행상통닭 배달프로그래머……살며 경험한 직업이 서른 가지 남짓 된다생각해보면 조직 아닌 곳이 없다노점상을 해도 노점상연합회가 있고주변 노점상들과 비위 맞춰야 하고회사는 상명하복이고다른 직업은 나만의 시간이 없다나는 지금도 어떤 조직에 소속되는 일을 지극히 싫어한다그래서 혼자 산다지만 이 삶도 소속된 삶이다그들이 없으면 난 막막하니까그들이 만든 도서관을 가야하고그들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어머니를 찾아가야 하고그들이 만든 책은행가게가스전기들을 써야 하니까이미 주민등록증이 소속된 사람이라 말하고 있잖은가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주민등록증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천장을 보며 한숨 돌리다가 연기가 보여 당연히 담배 연기인 줄 알았다그러나 입김이었다냉방이니 입김이 나는 것은 자연(自然)스러운 것이다내가 추구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삶이다자연스럽지 않으면 불편하다는 말은 얼마든지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반증한다그런데 굳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참고 살아야만 하는 일들이 지천으로 널렸다도를 통했다 해도 이해가 안 가는 경우다사람들은 나를 은둔자라 하지만 나는 홀로 앉아 세상을 본다당신들을 보는 관객으로 표현해야 맞다답답한 건 당신들이다지금 내 모습은 참으로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다나는 바지 끝이 닳아 나풀거리고 여기저기 구멍이 난 25년 지난 바지를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다시 주워 왔기 때문이다다시 주워 오지 못하는 경우라도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내가 어머니라도 단벌을 고집하는 자식을 위해 자연스레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벌어진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겨울이 들어선 오늘 저 나뭇잎이 왜 떨어졌는지내가 왜 주민등록증을 가졌는지추억은 왜 생각나며 왜 그리워하는지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조차 이유가 있는 것이다그 이유를 자연이라 하는 것이다.

 

나무가 의자가 되어 오랜 세월 사람 종노릇 하다가 썩거나 쓸모없을 때 인간에 의해 부서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늙어 죽는 나무와 다르지 않다모든 물건은 물건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이사 갈 때 당신도 자연스레 버리는 물건들이 있지 않은가남들 걸리지 않는 암에 걸리는 것도 당신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다반대로 남들 걸리는 암에 걸리지 않는 것도 당신에겐 자연스러운 것이다못 받아들여 발버둥 치는 것을 부자연스럽다 말하지만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자나무를 만들지 못하는 존재가 나무로 의자는 만들지 않던가의자를 만들어 놓고 나무를 만들었다고 하지는 않지 않나?

 

기뻐 울고 슬퍼 우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자연스러운 것은 아름답지만스스로 또는 강제적으로 참는 것은 보기 안쓰럽다자연은 이유이며 그 이유를 거부하면 부자연스러운 것이다그 부자연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우리는겉치레와 주둥이로 포장하며 사는 것이다주둥이 포장의 달인은 자신의 습관을 자연스럽다 우기는 사람이다다시 말해 나처럼 못된 습관을 고치기 싫어 스스로 그러하다고 말하는 아집 꾼이 가장 추한 인간이라 말해도 좋다는 뜻이다.

 

오늘은 어머니 태어나신 날전화 드렸더니 네 고집에 가스 땔 일은 없을 테고 전기장판은 샀냐?” 물으신다. “벌써 샀죠바꾼 연탄보일러는 잘 돌아가요?” 라고 말을 돌리며 전선을 통해 생신축하 드린다며 이래저래 너스레를 떨었다나는 전기장판을 살 형편이 못된다따라서 샀다고 말씀드려야 하는 것이다주둥이 포장이 자연스럽지 않은가이에 어머니는 말씀나는 주둥이정치인은 아가리라 할 수 있다오늘 우리나라에선 이 세 가지를 자연스럽다 말하는 것이다.

 

독재의 탄압을 참고 지내는 것도참지 못해 뛰쳐나가는 것도다음 정권을 기다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하나의 흐름 안에 여러 갈래로 나뉘지 않는 통일된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하나의 흐름으로 사상과 철학이 일치된 사회는 없다기네스북에 오른 장기 독재 국가 북한을 보자목숨을 걸고 태어난 조국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바로 그 탈출을 자연스럽다 말하는 것이다목숨을 걸만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나고 죽는 것처럼 배고프면 밥을 찾는 것처럼 고통스러우면 탈출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내 삶을 순간순간 보며 자연스레 사는지 부자연스러운지를 스스로 감시한다살며 작게나마 깨달은 것은 고통이 많으면 많은 삶일수록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이다내가 그간 한심하게 생각했던불쌍하다고 손가락질했던 삶이 참으로 자연스러운 삶인 것이다이 사회가우리들이 얼마나 포장된 삶을포장된 입을 놀리며 사는지 안다면 참으로 부자연스럽게 살았다는 걸 느낄 것이다알았다면 이제 이웃으로 눈을 돌려야만 한다우리가 바라는 것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토닥임이다자연(自然)을 순우리말로 옮긴다면 어울림이 아닐까 한다지구에서 사람만 자연과 어울리지 못한다사람은 자연스러운 생물이 못된다자연을 파괴하며 부자연스레 살다가 오리혀 자연스레 흙으로 가는 것이 사람이다당신은 자연스러운 사람인가 물으면 부자연스레 듣는 것이 사람인 것이다.

 

포장이 두꺼운 사람일수록 자연스레 입이 화려하다그 입에 길든 귀도 자연스레 넘어간다부자연스러운 조미료에 길든 혀처럼 자연스레 간사한 혀에 넘어가는 것이다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혼()이며 후에 깨우칠 때 혼났다고 말하는 것이다사기당하고 배신당하는 일들이 모두 혼났던 것이다부자연의 근본이 혀이며 혀의 수장이 뇌다간단하지 않은가자연스레 살고자 하면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빈 수레가 요란하듯 바른 철학이 가득 차면 입은 다물어지기 마련이다사람들에게 신바람 주는 말도 신중할 일이다세뇌를 깨우침으로 속이며 사는 정치인 같은 종교인처럼 부자연스러운 삶도 없다나처럼 깨우치지 못한 사람만이 떠드는 것이지 깨우친 자는 말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 깨우친 분이 돌아가셨다나는 양평에 갈 때마다 오랜 세월 시집이나 시낭송 CD를 선물로 들고 갔었는데 그분은 밥과 커피를 대접할 뿐 12일간 술 줄까?” 말고는 말이 없는 분이셨다질문을 던지기 전엔 절대 입을 열지 않는 분이셨다.

 

제가 온 것이 부담스러우신가요?”

?”

아니... 말씀이 없으셔서요.”

네가 내게 말을 걸지 않으니 네가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뒤로 더 편해졌다분위기 띄우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끝없어 보이는 지식에 감탄하며 끝없는 화두들이 오갔다나는 툭하면 차를 돌려 솟대가 높이 솟아있고 삼족오가 문 가득 그려진 형님 집을 찾곤 했다살며 그분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분 못 봤지만 지나치게 일찍 가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자연스레 가셨다 믿고 싶지만 아버지를 보낼 때처럼 부자연스레 보낸 것이 아닌가 한다나 역시 자연스레 가야 할 것이다가기 싫어하는 발버둥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지듯때가 되면 사람도 오가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황한 문장이 자연을 지배하는 썩어가는 세상이다자연을 거부하는 부자연스러운 군상들조차 자연스레 사라지리라 믿는다종교가 있다라는 말은 종교가 없다라는 말과 같다없는데 있다 할 수 없고 있는데없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있다라는 말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기 때문이다있으면서 없는 듯없는데있는 듯 사라졌는데 다시 태어나는 그리고선 죽어 없어지는 것들을 지배한다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은 없다평생을 찾아보라인간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이 있는지자연은 그 무엇도 건드리지 않았다부자연스러운 일은 모두 인간이 만든 악행이며 그것은 모두 입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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