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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31 17:30

아버지와 휘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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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휘발유


“이 씨벌놈들! 모조리 확 싸질러 버릴 텐게, 짤막하니 유서나 써놓더라고 잉!”

이때가 내가 고3 때인 1990년 가을 이었는데 아버지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앞뒤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인천 주안에 있는 건설회사 사무실을 찾아가기 전에 내게 당부하셨다.

“나가 밀리믄 니가 살짝 엄호를 혀. 겁만 주라고. 그려도 아니다 싶으믄 너만 튀는 것이여. 뭔 말인지 알것재?”

아버지가 받아야할 밀린 일당이 100일을 넘기자 아버지는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들고 나와 함께 택시를 탔다. 아버지를 믿고 따라 일했던 아랫사람들도 일당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울을 나기위해 벌인 살벌한 작전이었지만 난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찰서에서 우시던 어머니의 눈물 이후론 주먹을 쓰지 않았다. 정말 따라가기 싫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아버지가 남들한테 맞는데 자식이란 놈이 가만있어야 되겠느냐며 응원가로 아버지와 나의 인천행을 배웅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말 멋있었다. 가난한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말 휘발유를 건설회사 사무실에 뿌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게다가 성냥을 꺼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보통상황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점퍼를 벗고 나는 주변을 살폈다.

“아이고 소장님. 드려야죠. 늦은 감이 있습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앉으세요.”
“시끄러! 내가 그따구 소리 한 두 번 듣는중 알어? 느그들은 도를 넘었어. 이런 씨벌!”

하시며 정말 성냥불을 켜시는 것이 아닌가. 사장이 신호를 보내자 가슴에 대리라는 명찰이 붙어있는 사람이 다가왔다.

“계좌번호를 알고 있습니다. 지금 여직원을 시켜서 바로 송금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짓부렁이믄 같이 디져부는 것이여?”
“아 그럼요.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면서 갑자기 성냥불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움켜쥐며 불을 끄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 바로 뒤에 서있던 나는 그의 턱을 오른 발로 걷어 올렸다. 그는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뒹굴며 온몸을 휘발유로 적시고 있었다. 사장은

“아니 왜 이러십니까. 어떻게 해야 믿겠습니까. 지금 바로 송금한다 하잖습니까.”

아마도 쓰러진 그 대리라는 사람은 아버지를 해하려 한 행동이 아니라 사무실 불바다가 될 상황을 막기 위한 몸부림 이었을 것이고, 나는 남이 내 부모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는 것을 막기 위한 지나친 효도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회의실에 넷이 앉아 대화를 시작했고 곧 밀린 100일치의 일당은 입금 됐다. 악연도 인연인가? 이 건설회사 사장과 아버지는 아버지가 암에 걸리기 전까지 10년이 넘게 아파트 공사를 맡겼고 단 한 번도 임금을 미루지 않았다. 어려울 땐 빚까지 얻어 아버지 월급을 줄 정도였다.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아야. 뭣하러 패냐 패기를. 그 놈들이 작당하고 널 집어넣는 다믄 뭐랄것이여. 그땐 내가 빌어야 헌당께? 워쨌든 수고해부렀다.”

난 한문의 달인으로 아버지를 알고 지냈다. 아버진 한문도 한글도 명필이었고 항상 한시와 수필을 즐겨 썼었다. 아버지의 유언은 수필집을 내고 싶다는 거였다.

“먹고 살랑 게 우짤 수 없어. 너라도 대학은 보내야 쓰잖냐.”

난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 고등학교 졸업 후 두 달 만에 하사관으로 몰래 지원했다. 근근한 형편에 내가 대학을 간다는 건 불효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절친했던 친구가 말했는지 그 녀석과 부모님이 서울역 입영열차 승강장에 왔었다. 열차가 출발 할 때서야 부모님은 창밖에서 날 찾았다. 놀라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속도를 내는 열차 때문에 어머니가 쓰러지는 것 까지 보곤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난 눈을 감았다.

그 시절 그 건설회사에 뿌려진 아버지의 휘발유는 나의 대학 등록금이었다. 부모의 용기는 자식으로부터 나오고 자식의 용기는 부모생각으로부터 나와야 맞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용서 못하고 있다. 악연은 가족 내에서도 존재 가능하다. 떠올릴수록 부아가 치밀 뿐이다. 이 글을 연재하며 나는 아버지를 용서하려 한다.

어떻게 퇴고 될지는 모르나 나는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고 용서를 빌 사람에게 용서를 비는 글들을 쓰려 한다.

무의미 하게 가고 싶지 않다.



2008.10.30 07:48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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