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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5 03:53

그릇

조회 수 14390 추천 수 4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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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그 사람을 생각할 때 보편적으로 그릇이 작아 답답하다면 몇 마디는 해줄 수 있다. 단, 지속적으로 볼 관계라면. 변하지 못하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필요 이상의 상상력을 동원해 시기와 증오심에 휩싸인 사람은 설득이 불가능하다. 오해와 증오심으로 가득해 내가 하는 말이 들어갈 자리도 없을뿐더러 설득하기 위한 나의 말이 시기와 증오로 가득찬 그릇마저 깨뜨릴 수 있다. 세상엔 온갖 종류의 그릇이 많으므로 그 많은 그릇 중에 하나인 그저 그런 그릇이려니 하고 두는 것이 좋다. 그 모양으로 사는 것은 그의 삶이지 내가 온갖 설득과 진실을 토로하면서 그의 삶을 좌우지 하려하는 것은 지배욕이며 소유욕이다.

나는 매번 나의 그릇을 스스로 깨뜨리며 좀 더 큰 그릇을 만들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그릇에 만족하기도 하고 지식과 지혜를 쫓아 그릇을 좀 넓혀 보려하기도 한다. 그릇이 작든 크든 지식과 지혜가 들어갈 자리와 타인의 말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둬야 한다. 비워두지 못하면 진리를 향한 단어나 타인의 충고는 자연스레 쓰레기 취급당하고 만다. 작은 그릇은 나만 생각하게 만들며 내가 최고고 나 위주로 주변이 돌아가야 만족해한다. 조금 더 큰 그릇은 타인을 배려하며 주변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함을 느낀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聖人들은 그릇이 없다. 그릇 자체를 비웃는다. 타인과 나를 하나로 생각하며 타인의 행복을 내가 느끼며 타인의 슬픔도 내가 느낀다.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작은 곳이라도 상처가 나면 세계를 움직여 치유한다.

聖人이 되려 하지 말고 참된 내가되려 살아야 한다. 재물에 나를 팔지 않고 죄를 짓지 않으며 깨어 있는 동안 일과 성찰로 성스러운 오늘을 살아야 한다. 聖人들의 삶을 지켜보면 모든 聖人은 聖人이 되려고 살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잘 사신 분들이다. 작은 그릇을 죽이지도 않았고 큰 그릇을 위하지도 않았다. 모든 그릇은 참된 나였다.

무거운 고철을 담은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어르신이 있다면 뒤에서 밀어 같이 오르는 것이 사람이며 울고 있는 사람과 같이 울고 웃고 있는 사람과 같이 웃고 사는 것이 사람이다.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당신 혼자라면 그보다 슬픈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 모든 생명은 동종(同種)과 더불어 산다. 혼자 살아 있다면 그것은 멸종(滅種)이다. 동종이 같이 사는데 홀로 살아가려 하는 것도 멸종으로 가는 길이 된다. “왜 우리가 같이 살아야 하는 가?”라는 질문의 답은 질문에 있는 “우리”라는 단어가 답해 준다.

우리를 위해 자신의 그릇을 언제든 녹일 준비를 하고 살자. 더 넓고 많은 것을 담아 나눌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들과 나의 그릇을 공유할 수 있도록, 늘 나의 그릇은 유연해야하며 한 번 넓어진 그릇이 작아지지 않도록,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그릇을 비우지 못하고 가는 사람은 한을 품고 가는 삶이다. 삶을 끝낼 때 깨끗이 그릇을 비워야 “세상에 나와 잘 살다 간다.”고 말할 수 있다.

남의 그릇과 나의 그릇을 비교할 필요 없다. 내 그릇이 유연하다면 비교는 부질없는 짓이다. 되도록 많은 것을 담고 살다 많은 것을 주고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랑 하는 것보다 사랑 받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수필 : 2010.04.05 03:52 윤안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