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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4 05:07

어머니와 소주 한 병

조회 수 17627 추천 수 8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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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소주 한 병


군 시절 보통 소주 7~8병정도 마셨는데 중사진급 후엔 주량이 더 늘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16년 전 경남 진해에 포장마차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 이름 끝에 배다리나 복다리처럼 무슨 “다리“가 붙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여튼 간에 그 시절, 소주 열 병을 넘긴 순간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놀라면서 소주를 더 줄 수 없다는 거였다. 자기 가게에서 초상 치르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다른 군함을 타던 동기가 마침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오더니 ”아주머니 괜찮아요. 저 인간 사람으로 보면 안 됩니다. 무식한 뱃놈이라 생각하시고 제가 책임질 테니 몇 병 더 주세요.“하며 내 옆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아주머닌 불안한 기색이 가시질 않았다. 신고한다는 포장마차까지 있어서 웬만하면 전역할 때까진 다른 포장마차는 가질 않았다.

그 후로 서른 살이 넘어서 5병정도로 줄더니 2002 월드컵 끝나고 4병으로 줄었다. 작년부턴 3병으로 줄더니 지금은 두 병을 채 마시지 못한다. 정확한 날로 말하면 이틀 전부터 한 병 반쯤 마시면 쓰러진다. 자고일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술을 마다하는 지경까지 왔나 싶기도 하고 “세상에 나처럼 미련한 놈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어머닌 연탄이나 쌀이 두둑하면 살것다하시지만 난 술이나 담배가 두둑하면 만사가 행복하고 부엌에서 늘 신혼인 바퀴벌레들까지 예뻐 보인다.

언젠가 의정부에 술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빈대 붙으러 갔었는데 어떤 시인이 “술 처먹고 쓴 詩가 詩냐? 그러니 등단을 못하지.“하길래 ”내가 詩쓰는 재주가 없어 술이 대신 써주는 거요.“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봐도 9할은 모두 술로 쓴 詩들이다. 자고 일어나 책상을 보면 여기저기 집어던진 종이들이 있는데 주섬주섬 모아들고 ”어젠 그래도 좀 썼구나.“하며 쓰레기통행과 퇴고행으로 분리한다. 종이들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으면 ”술값이 아깝다 이놈아.“하며 정신 나간 놈처럼 혼잣말을 한다. 요즘이 그렇다. 종이들이 있어도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어느 정도 읽어줄만해야 퇴고라도 할 것 아닌가. 묘한 건 소설은 술 들어가면 한 글자도 못쓴다는 것이다. 어쨌든 시는 시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요즘 작품생산실적이 바닥이다.

어느 날은 “술을 마시지 말고 한 번 써보자”하고 앉았는데 백지 위엔 대나무, 기관총, 코스모스, 고깃배...... 몇 시간이나 그림만 그려댔었다. 詩를 쓰자고 마음먹고 앉으면 난 절대 못쓴다. 버스를 올라탈 때나 아니면 얼마 전 도둑고양이가 방에 들어와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영상이 스칠 때 자연스레 써진다. 아까운 문장들을 수도 없이 놓쳐버려 요즘은 늘 작은 수첩을 끼고 산다. 글씨가 거의 누워있으면 “대책 없이 술 처먹은 날이구나.”하는 생각에 피씩 웃기도 한다. 왜 창작을 고통스럽게 하는가. 나처럼 딩가딩가 쓰면 안 되나? 체중 줄이는 데 최고인 살벌한 퇴고가 기다리고 있는데 왜 창작의 시작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이해불가다.

주신(酒神)의 은총으로 살지만 받은 은총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다보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을 게워내 위를 비워야 하고 이젠 게워내지 않으면 불안할 지경이다. 가끔 피가 섞여 나오면 움찔하지만 그다지 새로운 광경은 아니다. 그러니 늘 어머니께 미련한 놈, 개똥같은 놈, 술로 망할 놈 소리를 듣지 않는가. 얼마 전 가슴이 뭉클해진 일이 있었다. 말벗 찾는 시골 어머니께 갔는데 밭에서 깻잎을 따다가 옷을 입혀 튀겨내 상위에 올려놓으시더니 뒤춤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시는 게 아닌가.

“내가 너 온다고 터미널 나가서 한 병만 사왔어. 술 마실라믄 한 병만 마셔라잉. 니가 건강해야 나가 잠을 잘 잘 것 아니냐. 내가 관세음보살님한테 너 한 병 넘게 마시면 호랑이더러 물고가라고 기도했어. 그란 줄 알고 나랑 약속해. 알아 묵었어? 이 똥개야!”

가방 속에 숨겨 가져간 소주 일곱 병은 말도 못 꺼냈다.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네 시간에 한 번 오는 그것도 하루에 네 번뿐인 버스를 타고 나가 아들 주려 소주 한 병을 샀다는 어머니 말에 몹시 부끄러웠다. 논어의 제1편인 학이편에 제자가 공자에게 효가 뭐냐 묻는 장이 있다. 공자는 “오로지 부모는 자식이 아플까 근심걱정이니라.” 말씀하셨다.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식이 아플까만 걱정인 것이다. 하지만 중독자가 부끄러움이 어디 있겠나. 결국 가방에 숨겨간 소주는 이틀 만에 모두 바닥났다. 나는 오늘도 불효의 극을 달리며 산다. 오늘 외로운 어머니의 전화 속 목소리는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소주 사다 놨응게 댕겨가. 너 좋아하는 가지나물도 승겁게 해 놨응게......”

나는 한가위 때 약속한대로 한 달에 두 번, 열흘은 어머니와 같이 지낸다. 그런데도 오죽 외로우시면 소주로 나를 부르시겠는가. 돈이 갈라놓은 모자의 한을 풀 때까지 난 하늘과 산뿐인 어머니 집을 오갈 것이다.

내가 술을 벗 삼는 이유는 나 외엔 모른다. 수없이 내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난 더 한심하다. 결혼 못해 저 지경이라 하고, 천하의 불효자식이라 욕한다. 그리도 내가 한심하고 못된 놈 같으면 술 대신 당신이 내 벗이 되면 되질 않는가. 내말이 단어 짜깁기인가? 뻔뻔한 변병이지만 내 또래와는 생각의 공감이 힘들어 가끔 통화하는 사람들도 아버지 벌이다. 살며 대화가 가능한 사람은 참으로 찾기 힘들다. 역으로, 내 벗이 되려면 참을 인(忍)이 적힌 부적을 수천 장은 갖고 있어야 한다. 고로 벗이 없기에 그 대신 주신(酒神)을 모시는 것뿐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되레 단순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은 첫 인상에서 나온다. 나를 사귀며 1년을 버틴다면 그대는 성인(聖人)이다. 단, 종교가 있다면 개종하여 주신(酒神)을 믿어야만 한다. 어떤가? 당연히 벗이 없게 생겨먹지 않았나? 요즘 2층 아저씨가 내 벗 지망생이다. 그러나 난 늘 거부한다. 전도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도를 시작할 때 아저씨에게 늘 던지는 문장이 있다.

“개종하세요. 꼭 주(酒)님의 은총 받으세요. 주(酒)님은 절 항상 토닥이시고 감싸 안으시며 긍휼히 여기신답니다.”

틀린 말인가? 빨리 죽어 구원받아 그토록 갈망하는 천국가란 소리보단 낫잖은가?



2008.10.27 06:22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