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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폐는 조선시대 전성기



  역사가가 역사적 사실을 역사가의 눈으로 재해석해서 현시대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에 대한 지침이나 안내를 한다는 것은 이론일 뿐이다. 그러나 현시대에 같이 사는 우리가 그 역사가가 부여한 의미를 공감하며 바르게 해석했다고 공인해준다면, 더불어 미래에 사람들까지 공인한다면 올바른 역사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가 막을 내리고 일제 강점기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굴곡이 심한 근현대사를 보내온 우리나라는 상황에 따라, 권력자에 따라 역사의 해석이 달라져왔다. 그러나 항상 그 밑바탕엔 유교적 습성을 유지해 왔다. 그 중 화폐를 보자.

  화폐는 그 나라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국가의 얼굴과도 같다. 그려진 인물이나 장소를 보면 시대적 흐름도 알 수 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화폐는 그 나라의 역사다. 우리나라의 예로 8.15 해방 이후 현대의 화폐를 보자. 1950년 발행된 이승만 초상(주일 대표부에 있던)이 그려진 천원 권은 이후 8종이 발행되었는데 이승만의 하야 후엔 사라졌다. 그러나 접어서 보관할 경우 龍眼(얼굴)이 구겨진다하여 인물을 중앙에 배치하지 않는 인물도안의 기준이 되었다. 이는 외국에 비해 훨씬 늦은 감이 있다. 제2공화국탄생과 더불어 1960년 광복절,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과서에서 빌린 세종대왕의 초상이 천환 권에 등장한다. 이후 오늘까지 우리는 세종대왕을 고액권지폐에서 보고 있다.  

  1973년 첫 등장한 만 원권의 도안이 있었다. 앞면엔 석굴암 본존불, 뒷면엔 불국사의 전경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반발로 발행 공고까지 났던 만 원권은 다시 세종대왕으로 돌아오게 된다. 발행 공고가 났다는 것은 박정희의 결재가 끝나고 곧 시중에 유통되기 직전이란 뜻이다. 군사쿠데타로 들어선 제3공화국 박정희의 입장에선 불교와 개신교 모두의 반발을 잠재우기엔 세종대왕이 무난했을 것이다. 1970년 백 원짜리 주화에 처음 등장한 이순신의 초상은 1973년 오백 원 권에 거북선과 함께 재현되기도 했다. 육군소장 출신의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이순신은 화폐에 그려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백 원 주화가 주로 서민들과 어린 학생들이 사용하던 화폐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하는 의문도 든다. 왜냐하면 주화 중엔 최고액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오백 원 주화도 있지만 당시 이렇게 최고액 지폐엔 세종대왕 초상이, 주화 중 최고액엔 이순신 초상이 들어가게 됐다.

  화폐에서 이순신초상 등장은 광화문네거리에 이순신동상을 세운 뒤의 일이다. 세종로 광화문네거리에 있었던 이승만동상이 4.19혁명으로 끌어내려지고 1968년 세종로에 세종대왕동상 대신 종교조각의 대가 김세준(김남조 시인의 남편)이 만든 이순신동상이 들어섰다. 세종대왕동상은 제작자 김경식의 친일행적을 문제로 덕수궁으로 옮겼지만 창씨개명 그리고 혈서를 쓰면서까지(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2009.10.05)지원했던 일본군 장교 박정희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듯 보인다. 그러나 요즘은 남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일본의 기운을 막기 위한 풍수지리설이 아닌, 군부독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함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율곡과 이황역시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들이었고 오만 원 지폐엔 이율곡의 모친 신사임당이 인쇄되어 유통되고 있다. 모자가 나란히 화폐에 인쇄되는 가문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가는 유교관습에 비해 우리나라 화폐는 조선시대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화폐들을 보고 대한민국엔 李씨밖에 살지 않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도 문제라 하겠다.

  조선은 사라졌지만 우리가 늘 사용하는 화폐에서 우리는 조선을 보고 살며 유교를 잊지 않고 있다. 반상(班常)은 사라졌으나 국가에 대한 걱정이나 부모에 대한 걱정, 상하간의 예절은 지키고 산다.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존댓말 역시 유교와 뗄 수 없는 부분이다. 현대에 살며 유교를 비판한다 해도 우리들의 몸과 정신의 바탕을 이루는 기조의 하나를 유교가 차지하고 있다. 현 시대에 맞지 않는 대부분의 낡은 유교정신은 버려졌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만나는 유교적 언행에 반감이 들지 않는 것은 자라면서 습득 된 관습으로 보편타당하기 때문이다.

  불교를 믿는 시어머니와 교회를 다니는 며느리가 목욕탕에 같이 가는 것이 어색하지 않음은 유교적 습성 때문이다. 나의 학설과 반대 된다 해서 상대 학자가 믿는 종교를 이유로 학설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으며, 젊은 부부들도 손님이 방문하면 손님에게 고개 숙여 공손히 인사하라 자식들에게 가르친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만나 충돌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유교를 겪은 뒤 보편타당하고 믿는 유교의 일부가 수용된 습관과 전통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가 항상 이용하는 화폐가 표면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화폐가 조선시대 인물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끝없이 발굴되고 재 해석되고 있는 역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상당히 부끄러운 것이며 존경받고 기억해야 할 인물은 조선시대에만 있었다는 것을 국가 스스로가 인정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화폐만으로 해석해서 그 누구라도 대한민국을 보고 李氏조선이라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이런 말에 대해 역사를 폄하한다 말하기 전에 직접 화폐를 감상해보라.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역사를 바라보는 한계점을 드러냄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도 화폐 속의 인물들을 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 속에 그리도 위인이 없는지 생각해봐야한다. 우리나라 역사가 오백년짜리 역사였던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근현대사를 보며 좁은 역사의식을 가진 자들의 좁은 논의는 독재자가 원하는 화폐를 발행하게 되는 원인이 됐었다. 말로만 반만년, 반만년 하면서 화폐 속에 들어갈 반만년 동안의 위대한 인물 선정에 오백년 한계를 둔 것은 숙고할 일이다. 토론도 없고 국민의 이해도 구하지 않고 정부주도의 여론조사라며 지금껏 발행해 왔던 것이 우리가 쓰고 있는 화폐다. 십만 원 지폐도 유통 될 예정이다. 늦은 감이 있으나 충분한 담론 후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를 폭 넓게 해석하는 화폐발행이 됐으면 한다. 화폐가 그 나라의 얼굴임은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10.05.11 18:55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