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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4 05:12

조율

조회 수 31304 추천 수 6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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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조율하면 언뜻 피아노 조율사가 떠오른다. 피아노 줄이 정해진 음을 내지 못하고 다른 음들과 함께 뒤섞여 구분이 힘들 때, 조율사는 한 줄 한 줄 조이고 늘이며 정해진 음을 내도록 조율한다. 조율이 끝나야만 피아노연주자는 아름다운 음들을 관객들이 보는 가운데 선물할 수 있다.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는 수십억 원짜리라 하더라도 무용지물이지만 조율사에겐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가 삶의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조율을 원하는 마음을 민심이라 나는 말한다.

피아노 줄과 달리 사람은 정해진 삶이 없다. 불협화음은 당연한 것이고 사람을 조율하는 조율사도 없다. 사람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조율해야만 하지만 남들이 내는 삶의 음(音)과 반드시 조화를 이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을 피아노 줄과 비교하면 줄 하나가 피아노 한 대인 셈이다. 따라서 한 대의 피아노 속에 나란히 당겨져 있는 같은 피아노 줄이 아닌 아예 다른 피아노와 구별이 돼야 한다. 모든 피아노가 모양은 달라도 우리는 그것을 피아노라 하며 옆집 아저씨와 나는 생김새는 다르지만 사람이라 말한다. 각자 다른 음을 내는 수 많은 피아노를 국민이라 나는 말한다.

생각해 보자. 공연장에 피아노가 두 대있다. 두 명의 연주자가 아무런 상의 없이 서로 다른 음악가의 악보를 동시에 연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관객들이 박수를 쳐주겠나? 같은 악보를 보고 둘이서 음을 나누어 화음을 이루거나 또는 서로 다른 악보라 해도 새로운 편곡으로 두 대의 피아노가 듣기에 어울리는 음을 낸다면 연주자나 관객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관객과 연주자는 보편성에 서로 합의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아노 연주라는 예술행위가 처음부터 반드시 두 대로만 연주해야만 하고, 각 연주자는 서로 다른 음악가의 악보로 연주를 하는 것으로 대중에게 소개 되고 사람들에게 인지되어 오늘까지 유래 됐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악보로 연주하더라도 거부감이 일지 않을 것이다. 보편성이란 우리가 늘 배우고, 경험해 왔고 관습화 되어 불쾌감이나 거부감이 일지 않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보편성을 하나씩 하나씩 버려가고 있어 사회조직을 거부해야 한다 말해야할지 아니면 ‘나‘라는 인간을 봐선 당연한 것이라 말할지 심각한 고민 중이다. 사회적 인간으로 돌아가라는 스스로의 조율을 거부하기에 더욱 고민이 깊다. 나와 같은 묘한 뇌를 가진 자는 절대로 권력을 잡아선 않된다.

따라서 가장 조율이 필요한 자는 이 나라에서 권력을 쥔 자다. 신체에서 가장 필요하나 악의 축으로 꼽히는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국민 스스로 불협화음을 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종교에 따른 분열, 이념에 따른 분열, 언론 분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분열, 세대 간 분열 등 권력자들이 늙을 대로 늙은 나이에 해부학을 전공하고 있다. 월세, 전세, 물가... 나날이 어두워져 가고 10년 전 IMF 시절처럼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권력자들이 스스로 조율 된 인간이라 믿는 오판 때문이다. 더불어 권력자와 그 휘하의 빈대들이 소유하고 있는 피아노 때문이기도 하다. 두 대도 아닌 수십 대의 피아노가 하나의 악보를 연주하기 때문에 한 대로 족한 연주를 지나치게 많은 피아노들이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옛 선조들은 “충신이 없다”고 꼬집어 왔다.

21세기 퓨전(Fusion)은 예술인이 아니라 권력자가 추구해야할 조율법이다.


2008.09.10 03:11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