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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07:28

여전한 폭력철거

조회 수 31073 추천 수 6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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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떡볶이 아줌마



【대구=뉴시스】

22일 오전 대구시 달서구청은 성당동 두류종합시장 46개 점포천막 등 노점상에 대해 철거 행정대집행을 통한 강제철거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반에 의해 음식이 땅에 버려지자 한 노점상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공정식기자




  여전한 폭력철거



  고등학교 때 88올림픽이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보면 창피하니 서울 곳곳에서 판자촌 등 철거 작업이 성행했습니다. 철거를 방해하거나 막으면 작업화를 신은 청년들이 아주머니나 할머니들 머리를 밟고 짓이기곤 했습니다. 자라나면서 우리나라 철거문화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이 폭력철거는 군인이 정치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위 현대화를 위한 주거정비와 길거리 정리였습니다. 도시엔 점점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판자촌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울며 떠났습니다. 철거현장에서 죽어나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종교지도자도 있었고 몸에 불을 지르며 죽어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폭력 속엔 당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정부에 대한 원망과 가난한 설움을 마음에 품고 애들 키우러 길을 떠났습니다. 몇 해 전엔 신림동 판자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나 어릴 적 그곳에 살던 생각에 눈시울이 젖기도 했습니다. 그런 설움 속에 키운 아이들이 성장해서 오늘 날 또다시 저 폭력철거를 합니다.

  이 시대를 포함한 역사속의 어머니들은 천장에서 물이 새면 양동이로 새는 물을 받으며 그 주변 진자리에서 주무시고 마른자리에 아이들을 뉘여 키웠습니다. 봄나물이라도 나오면 해질녘까지 산을 누비며 캐다가 장날에 내다 팔며 그 돈으로 아들놈 운동화하나 사서 친구들에게 거지소리 안 듣도록 키웠습니다. 봉투를 붙이고, 구슬을 꿰고, 바느질이든 뭐든 1원짜리 하나라도 나오면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살았습니다. 유산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니 너만은 공부해서 큰사람 되라며 손이 갈라지도록 내 자식만 보며 살았습니다.

  오늘 오전 대구 두류종합시장에서 기자 찍은 저 사진을 보며 내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아니, 마치 내 어머니라는 착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OECD 가입, 2만 불 시대와 선진국으로의 도약. 그 세계 속의 한국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국가가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은 수십 년이 지났어도 불변하는 악행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 사진 아래에 재래시장도 경제원리에 따라 경쟁구도로 가려면 당연히 철거해야 한다고 댓글을 달았더군요.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니까 저런 말이 나오는 겁니다. 폭력철거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탁상행정과 남의 일 보듯 거지들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미래의 어머니가 될 그 누구도 폭력철거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과연 폭력철거는 정권이 수도 없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우리네 풍속일까요?

2008.02.22 22:08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