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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07:27

시인도 직업인가?

조회 수 37809 추천 수 7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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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직업인가?


  집배원은 그냥 집배원이고 의사도 그냥 의사다. 물론 수식어를 두어 ‘아름다운 집배원‘, ‘아름다운 의사‘라고 말할 수 있다. 당연히 시인에게도 아름다운 시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집배원 시인, 의사 시인, 변호사 시인, 국회의원 시인, 공무원 시인 이라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다. 시인이 특정 직업군 뒤에 붙는 것은 시인에 대한 모독이며 스스로 기사 쓰는 능력이 부족함을 광고하는 짓이다. 즉, 기자가 글쓰기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기사제목에 특정 직업군이라도 넣고 뒤에 시인을 붙여 넣어야 독자가 읽는다는 생각에서다. 스포츠신문들이 A씨, 김 모 씨하며 내뱉는 연예인 다루는 기사들과 뭐가 다른가. 저런 제목이 눈에 띄면 매우 불쾌하며, 시인이 쓰는 시가 마치 집에서 인형 눈이나 붙이고 앉아 잔돈 버는 부업감정도로 취급당함을 느낀다.

  저런 기사제목들은 시만 써서는 생계유지가 힘들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시인은 대부분 직업을 갖고 있다. 가정을 꾸려나가기엔 시는 경제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혹시 의사 시인, 변호사 시인은 들어 봤어도 의사 소설가, 변호사 소설가라는 기사제목을 본적 있는가? 소설가 앞엔 직업을 잘 놓지 않는다. 좋은 돈 벌이 두고 누가 머리 쥐어뜯는 소설을 쓰겠나. 그럼, 시는 쉬워서 쓰나? 시인은 명함에 찍어 넣기 만만한가?

  그러나 ‘소설가로 변신한 학교선생님’, ‘소설가로 탈바꿈한 모 연예인’, ‘소설가로 돌아 온 전 국회의원’ 등의 기사도 종종 보인다. 소설가들도 대부분 직업을 갖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못낸 작가라면 가정이 침몰하기 때문이다.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이란 책속에서 소설가 이기호의 2006년 연봉이 6백만 원이었고, 2007년이 되어 갓 천만 원을 넘겼다고 말하고 있다. 소설을 써서 연봉 6백만 원 받는 일은 글 쓰는 젊은 소설가지망생들에겐 꿈과 같은 말이다. 이름조차 알 수도 없는 수많은 소설가들의 연봉은 얼마라고 상상되는가. 오히려 연봉이라는 단어가 그들에겐 어색할 것이다. 직업을 포기하고 소액으로 굶주리며 살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들만의 이유를 우리는 묻지 않아도 무언의 짐작들을 갖고 있다. 각기 이유는 다를 지라도 그것은 글 쓰는 사람들만의 성역이다.

  그렇다면 직업을 포기하고 시 쓰기에 전념하는 무명 시인을 본적 있는가? 시만 써서 연봉 6백만 원 이상 받는 시인 봤는가? 몇 명이나 되던가? 유독 시인들에게만 직업군이 앞서는 이유는 시만 써서는 굶어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꿔 말한다면 직업 없이는 시로 돈 벌기 힘들기 때문이다. 시인을 다루는 기사를 봐도 어떤 일을 하면서 시를 썼는가가 중요한 기사고, 시의 내용이나 의미는 비중이 없다.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제야 시 공부를 시작하는 나로서는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전에 갈등이 인다. 인터넷과 지면을 통해 엄청난 양의 시들이 쏟아지듯 나오고 있다. 길거리를 걷다가 생활 정보지를 뽑아 들어도 시 한 편은 꼭 있다. 버스를 타도 앞좌석엔 시가 인쇄되어 있고, 컴퓨터관련 책을 봐도 시가 있다.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조수석 앞에 자신이 시인이라며 등단작을 인쇄해 코팅까지 해서 붙여 놨다. 시의 홍수시대다. 시장 원리에 따라 공급이 많아지면 그 값어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돈 좀 벌어놨고, 애들도 다 컸고, 먹고 살만하니 그동안 꿈꿔왔던 시를 써 보자는 시인도 있다. 어렵게 살면서 틈틈이 써왔던 시를 중년을 넘겨 정리하며 발표하는 시인도 있다. 시를 통해 자신을 탐구하는 도인(?)같은 삶을 사는 시인도 있다. 다들 돈벌이와는 멀다. 오히려 돈 벌기 위해 시를 쓰면 욕먹기 일쑤다. 발표하는 시인이 돈 벌기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왜냐? 안 팔리니까. 요즘은 명함대신 시집을 준다는 말도 있다. 유명인이거나 홍보비를 투자하지 않으면 서점 매대엔 깔리지도 못한다. 소설가고 시인이고 유명한 문인은 책을 냈다는 귀띔만 해도 기자들이 들끓기 마련이고 몇날 며칠을 이곳저곳 신문지상에서 친절히도 소개된다. 그쯤엔 이미 서점 시집코너는 그들의 책과 시집으로 도배 되어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출판사가 유명문인을 싫어하겠나. 그 날(?)만 바라보고 우리는 지지리 궁상 밤새며 코피 닦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시집을 고를 때 지지리 궁상이 묻어 있는 시집을 고른다. 그래서 시집하나 고르는데도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가 보다.

  시를 성스럽게 생각하고 돈과 비교되기를 싫어하는 마음은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의 문화적인식 때문이다. 그 옛날 돈 받고 재미 주던 전기수들처럼 돈 버는 소설가는 당연히 이해가 되고, 돈과 상관없이 세상과 삶을 낭송하며 살던 옛 선조들 덕에 시로 돈 버는 것은 용납하기 힘든 것이다. 벼슬도 없이 귀향지에서 나라를 생각하며, 충정 속에 죽어가며, 학문과 도의 이치를 다루며 써낸 시들을 읽고 있노라면 저절로 감동이다.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시들도 큰 벼슬을 하거나 풀옵션들어간 리무진가마타며, 잘 먹고 잘 살 때 쓴 시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배터지게 처먹으니 기분이 좋고 뇌물이 들어오지 않아 괴롭다는 벼슬아치의 시조를 본 적 있나? 가난과 설움, 억울함, 고뇌, 부모, 임금, 잘못 되가는 나라를 보며 울거나 그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꿔 보며 즐기던 시들이다.

  전기수들 보다 시를 읊던 옛 시인들이 지금시대에도 존경을 받듯이 현재 시인들을 보는 시각도 달리 해야 한다. 직업이 앞서고 시인이란 단어가 뒤에 인쇄된 기사를 볼 때마다 탄식이 흐르는 이유는 뭘까? 그만큼 감동도, 고뇌도 없는 시들을 마구잡이로 써댄 나 자신 때문은 아닐까? 참다운 시를 가리는 눈과 더불어, 참된 시인을 가려내는 눈부터 길러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시인역시 남이 보기에 아름답더라도 작품이 아니라면 도자기를 박살내는 도공과 같은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이 길면 시인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밀어 제치고 직업이 앞서 인쇄돼는 기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 한가운데 서있다. 어떤 직업을 가진 시인이 아니라 어떤 시를 쓰는 시인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국회의원이나 변호사가 쓴 시가 아니라 시인이 쓴 시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언론이 시인의 직업을 보기 전에 시인의 시를 볼 한 가닥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이다.

2008.02.18 16:28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