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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07:26

통(通)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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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通)하는 사랑


  남녀의 사랑이 재물이 매개체가 되거나 확인 작업을 통해 변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음으로 통(通)하는 사랑은 미디어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먹고살기 힘들면 사랑은커녕 자식들도 필요 없는 것이다. 그것을 자기 치장용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며 살지 그런 사람들은 일부분이라고 말하는 문장들을 책속에서 보다보면 강한 코팅냄새뿐 어떤 향기도 설득력도 없다. 사랑을 노래하는 문장치고 사랑의 의미를 북받치듯 느껴본 인간이 몇이나 되며, 문장을 쓸 당시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가 또는 얼마나 사랑했었는가에 의심이 아닌 의문을 제기한다. 여자들이 찍어 바르며 얼굴을 숨기듯 사랑을 찬양하며 자기전도를 위해 치장하는 문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중장부나 비자금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을 노래하는 문장들을 읽어보면 ‘아! 정말 사랑이구나!‘ 하는 글이 있고, ’쓰면서 얼마나 양심의 가책이 있었을까?‘ 하는 가식적이고 더러운 문장들이 있다. 성경에서 퍼 나르는 글부터 각종 명언집에서 퍼 나른 글까지 각양각색으로 사랑하며 살자고 써댄다. 그것은 스스로 사랑을 찬양하면 남이 나를 좋은 사람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로써의 사랑일 뿐이다. 사실상 사랑을 노래하는데 누가 거기다 대고 침을 뱉겠는가. 막연한 사랑노래는 막강한 도구 아닌가? 도리어 저 가식적인 사랑노래보단 이별노래가 더 나을 때가 많다. 의미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갖다 붙이는 사랑타령과 달리 이별의 시는 막 쓰기엔 양심의 가책이 숨어 따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정의내릴 수 있는 길은 많지만 정답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은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것이 아니다. 끝없이 그대를 떠올리고 그리며, 그것이 스스로 힘의 원천이 되어 그 힘이 심신의 유전자를 모조리 깨워 눈 떠있는 내내 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사랑이다. 외부로의 표현이라면 깨어 있는 내내, 심지어 잘 때도 묻어나오는 자연스런 미소일 것이다. 사랑으로 논문 쓸 일도 없는데 뭘 그리 연구하듯 말하는지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있다. 사는 내내 통(通)하려 즐겁게 애를 쓰고, 끝없이 그대를 그리며 만들어진 그 힘을 건네고 받는 다면 늘 힘이 넘치거늘 부모걱정, 자식걱정, 재물걱정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서로 통하며 건네지는 사랑의 힘이라면 없는 재물도 집으로 들어오기 마련이지 않을까? 게다가 상대방과 통함을 서로 안다면 서로에게 요구할 것도, 현재 통하는 것 이상의 것도 필요가 없는 것이다.


  TV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할수록 금슬이 좋다고 연일 주둥이를 떤다. 그것은 사회주의 주체사상을 공산당원들에게 또는 스파이나 특수부대원들에게 특수임무에 관해 주입시키기 위해 쓰던 악질적인 세뇌법일 뿐 우리네 정서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아닌데 겉으로 사랑한다며 중얼거리면, 그래서 결국 좋아진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이론이 사랑에 통할 성 싶은가? 미디어를 통해 세뇌가 돼버린 지금,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면 사랑의 정도를 의심하게 되고 자신에게 뭔가 티를 내며 신경써주지 않으면 사랑이 식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티를 내기위해 발버둥 치다 지치면 성격차이 네 글자 써놓고 이혼하는 것이다. 사랑마저도 서양의 학자들에게 전도되어 우리네 사랑이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가 변질 시킨 지금의 사랑은 확인 작업이다. 뭐든 확인해봐야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 돼버렸다. 가진 돈은 있는지, 학교 졸업장은 맞는지, 건강진단서는 정확한지,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뒷돈을 챙기는지, 다른 이성을 미끼로 넣어 자신 이외의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이런 것들을 TV앞에 앉아 보며 불행으로 치닫는 남의 사랑을 보며 낄낄거리며 즐기는 세상이다. 동네 가게만 가도 널려있는 씹을 거리가 그리도 없던가? 지상파건, 공중파건 365일 가정파탄을 소개하니 누가 결혼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멀쩡하던 남자가 결혼 후에 바람을 피우고 아내를 두들겨 畇쨉?누가 결혼에 안달이 나겠나 이말이다. 이혼율 1위, 저출산율 1위는 우리나라 방송이 만들었고 아직도 반성을 못하고 더욱 자극적이고 입에 담기도 더러운 폭력과, 강간을 소개하느라 열성들이다. 마치 자신들은 벌어지는 현실만 소개할 뿐 책임이 없으며 오히려 가정을 지키는데 이바지한다는 벼락 맞을 소리들만 하고 있다.
 

  결혼해서 준비하는 가정은 미디어에선 퇴출당했다. 준비해서 결혼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은 재물과 학력이 가로막고 가정은 개인의 자유보장을 외치는 핵분열 가정으로 변해가는 것이 미디어가 주는 병폐다. 그게 회사지 가정인가? 서로의 믿음을 통(通)해 사랑이 싹트고 그것이 삶을 사는, 그대와 내가 사는 힘의 원천이 되는 사랑은 미디어에선 없다. 이런 변질된 사랑을 노래하는 미디어에 전복되지 말고 이들을 비판하면서 이 시대에 새롭게 다가와야 할, 다시 찾아와야 할 우리네 사랑을 갈구할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요즘이다.


  글을 끝내며 조선시대의 두 편의 편지를 소개한다. 두 편을 보고 조선시대 사랑을 운운하는 시대착오적인 인간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이시대의 사랑을 미디어가 변질시키고 있으며 남의 가정파탄을 오락프로그램정도로 즐기고, 학문적 분석으로만 세분화 시켜버리는 과학적, 자본주의적 사랑에 질타를 가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2008.01.21 14:11 風磬 윤영환




- 임진란이 일어났던 1592년 경상도초유사로 파견 나가 있던 김성일이 아내에게 보낸 언문편지다. -


『요사이 추위에 모두들 어찌 계신지 가장 사념하네.

나는 산음 고을에 와서 몸은 무사히 있거니와

봄이 오면 도적이 대항할 것이니 어찌할 줄을 몰라하네.

또 직산 있던 옷은 다 왔으니 추워하고 있는가 염려마소.

장모 뫼시옵고 설 잘 쇠시오. 자식들에게 편지 쓰지 못하였네. 잘들 있으라 하소.

감사라 하여도 음식을 가까스로 먹고 다니니 아무것도 보내지 못하네.

살아서 서로 다시 보면 그제나 나을까 할까마는 기필 못하네.

그리워하지 말고 편안히 계시오.

그지 없어 이만.

섣달 스무나흗날』


-아래의 편지는 1998년 4월 경북 안동에서 묘를 이장하던 중 미라가 된 시신의 가슴위에 한지가 있었는데 415년 전 망자에게 보내는 아내의 편지였다. 머리맡에는 미투리(아내의 머리카락과 같이 엮은 짚신)가 있었고 편지는 한지 모서리 여백까지 쓰다가 다 못써 다시 위에서 거꾸로 써내려 갈 정도로 빽빽했다 한다.-


『원이 아버님께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
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을 할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가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어서 나
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으나 이만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