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4.03.27 06:22

갑질

조회 수 181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갑질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등장하는 말 중에 ‘갑질’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말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약자인 상대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갑’에 접미사 ‘질’이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보통 계약서를 쓸 때 계약의 두 당사자를 편의상 ‘갑, 을’로 칭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갑’이 된다. 이런 관습으로부터 ‘갑’에는 권력이나 지위가 높은 쪽, ‘을’에는 낮은 쪽의 의미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여기에 ‘질’이 붙어 새말이 만들어진 게 흥미롭다. ‘질’이 붙은 말은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물론 ‘가위질’이나 ‘바느질’처럼 부정적인 뜻 없이 단순히 그 도구를 사용해서 하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직업이나 직책, 또는 사람이 하는 행위에 ‘질’이 붙을 때는 그 일을 비하하거나, 또는 그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가치 평가가 덧붙는다.

비단 ‘도둑질’ ‘싸움질’ ‘고자질’ 같이 본래 나쁜 일을 가리킬 때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질’이 있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존중 받는 직업에 ‘질’이라는 접미사가 결합됨으로써 그 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낮잡는 상황에서만 쓰는 말이 돼버린다. ‘전화질’이나 ‘자랑질’도 마찬가지다. 쓸 데 없이 자주 전화를 하거나 지나치게 자랑을 많이 하는 경우를 비난하는 의미로만 쓰인다. 그런데 북한말에는 ‘질’에 그런 비하의 뜻이 없다고 한다. 새터민들 중에는 ‘선생질’을 ‘교사로서의 직분’이라는 평범한 의미로 썼다가 남한 사람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전에 없지만 ‘갑질’이란 말에는, 그런 행동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404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0672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5613
3414 훈방, 석방 바람의종 2010.07.23 14851
3413 훈민정음 반포 565돌 바람의종 2011.11.20 14631
3412 후텁지근한 風文 2023.11.15 1558
3411 후덥지근 / 후텁지근 바람의종 2012.05.30 11527
3410 효시 바람의종 2007.10.08 13566
3409 효능, 효과 바람의종 2010.04.25 10665
3408 횡설수설 1 바람의종 2010.11.11 15251
3407 획정, 확정 바람의종 2008.12.10 14996
3406 회피 / 기피 바람의종 2012.07.05 11871
3405 회가 동하다 바람의종 2008.02.01 20364
3404 홰를 치다 바람의종 2008.02.01 39904
3403 황제 바람의종 2012.11.02 18665
3402 황소바람 바람의종 2010.09.04 11930
3401 황새울과 큰새 바람의종 2008.01.24 11268
3400 황금시간 / 우리말 속 일본어 風文 2020.06.11 2032
3399 활개를 치다 바람의종 2008.02.01 12711
3398 환멸은 나의 힘 / 영어는 멋있다? 風文 2022.10.28 1675
3397 환갑 바람의종 2007.10.06 18435
3396 화이바 바람의종 2009.09.24 10614
3395 화성돈 바람의종 2012.08.30 10880
3394 홑몸, 홀몸 바람의종 2009.02.14 12173
3393 홍일점 바람의종 2010.10.06 1506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