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4.03.27 06:22

갑질

조회 수 9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갑질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등장하는 말 중에 ‘갑질’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말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약자인 상대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갑’에 접미사 ‘질’이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보통 계약서를 쓸 때 계약의 두 당사자를 편의상 ‘갑, 을’로 칭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갑’이 된다. 이런 관습으로부터 ‘갑’에는 권력이나 지위가 높은 쪽, ‘을’에는 낮은 쪽의 의미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여기에 ‘질’이 붙어 새말이 만들어진 게 흥미롭다. ‘질’이 붙은 말은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물론 ‘가위질’이나 ‘바느질’처럼 부정적인 뜻 없이 단순히 그 도구를 사용해서 하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직업이나 직책, 또는 사람이 하는 행위에 ‘질’이 붙을 때는 그 일을 비하하거나, 또는 그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가치 평가가 덧붙는다.

비단 ‘도둑질’ ‘싸움질’ ‘고자질’ 같이 본래 나쁜 일을 가리킬 때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질’이 있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존중 받는 직업에 ‘질’이라는 접미사가 결합됨으로써 그 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낮잡는 상황에서만 쓰는 말이 돼버린다. ‘전화질’이나 ‘자랑질’도 마찬가지다. 쓸 데 없이 자주 전화를 하거나 지나치게 자랑을 많이 하는 경우를 비난하는 의미로만 쓰인다. 그런데 북한말에는 ‘질’에 그런 비하의 뜻이 없다고 한다. 새터민들 중에는 ‘선생질’을 ‘교사로서의 직분’이라는 평범한 의미로 썼다가 남한 사람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전에 없지만 ‘갑질’이란 말에는, 그런 행동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8816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5415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0286
3432 暴 (포와 폭) 바람의종 2011.11.10 15024
3431 히읗불규칙활용 바람의종 2010.10.21 13611
3430 히로뽕 바람의종 2008.02.20 12710
3429 흰 백일홍? 風文 2023.11.27 1159
3428 희쭈그리 바람의종 2008.02.29 13410
3427 희망 바람의종 2007.10.11 10844
3426 흥정 바람의종 2009.06.09 9761
3425 흡인력, 흡입력 바람의종 2009.11.12 15344
3424 흡연을 삼가 주십시오 바람의종 2008.03.08 15796
3423 흙성과 가린여흘 바람의종 2008.05.31 10895
3422 흘리대·흘리덕이 바람의종 2008.07.21 9125
3421 흐리멍텅하다 바람의종 2009.11.09 13167
3420 흉칙하다 바람의종 2009.02.02 15879
3419 흉내 / 시늉 바람의종 2009.09.07 11440
3418 휴거 바람의종 2007.10.10 14903
3417 휫바람, 휘바람, 휘파람 바람의종 2009.06.30 15236
3416 휘호 바람의종 2008.11.13 10601
3415 휘하 바람의종 2007.10.09 13084
3414 휘파람새 file 바람의종 2009.09.03 11800
3413 휘발성 바람의종 2010.08.07 14547
3412 휘거 風文 2014.12.05 24672
3411 훈훈하다 바람의종 2007.11.09 1298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