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2.20 06:10

어떤 반성문

조회 수 125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떤 반성문

사는 게 후회의 연속이다. 말을 해서 후회, 말을 안 해서 후회, 말을 잘못해서 후회. 집에서는 말이 없어 문제, 밖에서는 말이 많아 문제.

나는 천성이 얄팍하여 친한 사람과는 허튼소리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탈이 난다. 며칠 전에도 후배에게 도 넘는 말장난을 치다가 탈이 났다. 아차 싶어 사과했지만, 헤어질 때까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상대방을 살피지 않고, 땅콩 까먹듯이 장난질을 계속하니 사달이 나지.

올해 가장 후회되는 말실수. 지난여름, 어느 교육청 초대로 글쓰기 연수를 했다. 한 교사가 ‘약한 사람들이 할 일은 기억, 연대, 말하기’라고 말한 이유를 물었다. 거기다 대고 나는 ‘뻘소리’를 했다. “교실에서 제일 힘센 사람은 선생이잖아요. 뭘 하라고도 할 수 있고, 하지 말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러니 잘 견딥시다.”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거였는데, 마음을 고쳐먹으라는 소리나 하다니. 그러곤 얼마 안 있어 교사들의 비극적 선택 소식이 이어졌다. 아찔했다. 교사들은 죽음을 감행할 정도로 깊은 좌절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다(교사인 처제도 학생의 해코지가 두려워 얼마 전 노모를 모시고 이사를 갔다). 폐허로 변한 교실, 붕괴된 교육체계를 응시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더 나누며 연대의 길을 찾아보자고 해야 했는데…. 그 말이 들어 있는 글을 다시 보니 ‘죽음은 개인이 당면해야 할 일이지만 개인에게 모든 걸 맡기지 않는 것, 죽음에 대해 말함으로써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씨불이고 있었다.

말에서 비롯한 잘못은 자기감정이 과잉되거나 자기 확신이 강해서 생긴다. 무엇보다 상대를 넘겨짚다가 결국 큰코다친다. 나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다. 몹쓸 놈이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54920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201525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16493
    read more
  4. “사겨라” “바꼈어요”

    Date2024.05.31 By風文 Views30
    Read More
  5. ‘Seong-jin Cho’ ‘Dong Hyek Lim’ ‘Sunwook Kim’

    Date2024.05.29 By風文 Views72
    Read More
  6. “산따” “고기떡” “왈렌끼”

    Date2024.05.31 By風文 Views73
    Read More
  7. 어이없다

    Date2024.05.29 By風文 Views99
    Read More
  8. 주책이다/ 주책없다, 안절부절하다/안절부절못하다, 칠칠하다/칠칠치 못하다

    Date2024.05.10 By風文 Views635
    Read More
  9.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Date2024.05.10 By風文 Views703
    Read More
  10. ‘수놈’과 ‘숫놈’

    Date2024.05.08 By風文 Views768
    Read More
  11. 말의 권모술수

    Date2021.10.13 By風文 Views801
    Read More
  12. 서거, 별세, 타계

    Date2024.05.08 By風文 Views803
    Read More
  13. 잡담의 가치

    Date2021.09.03 By風文 Views812
    Read More
  14. 무제한 발언권

    Date2021.09.14 By風文 Views832
    Read More
  15. 언어적 주도력

    Date2021.09.13 By風文 Views835
    Read More
  16. 법률과 애국

    Date2021.09.10 By風文 Views840
    Read More
  17. 또 다른 공용어

    Date2021.09.07 By風文 Views854
    Read More
  18. 아무 - 누구

    Date2020.05.05 By風文 Views861
    Read More
  19. 공공 재산, 전화

    Date2021.10.08 By風文 Views867
    Read More
  20. 정치인들의 말

    Date2021.10.08 By風文 Views878
    Read More
  21. 군인의 말투

    Date2021.09.14 By風文 Views883
    Read More
  22. 또 다른 이름

    Date2021.09.05 By風文 Views918
    Read More
  23. 어버이들

    Date2021.10.10 By風文 Views925
    Read More
  24. 상투적인 반성

    Date2021.10.10 By風文 Views937
    Read More
  25. 고령화와 언어

    Date2021.10.13 By風文 Views93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