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1.21 07:00

군색한, 궁색한

조회 수 143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군색한, 궁색한

내 탓은 없었다. 남의 탓, 조상 탓 만 있었다. 잘한 것도 있단다. 반성인 듯 반성 아닌, 반성 같은 모호한 수사만 있었다. 사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학생들도 안다. 때려 놓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끝이 아니다. 피해자가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것이 진정한 사과요, 사죄이다. 우리에게는 광복 70주년, 일본에게는 패전 70주년인 올해, 일본의 총리가 내놓은 담화는 ‘군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필요한 것이 없거나 모자라서 옹색할 때 ‘군색하다’는 표현을 쓴다. ‘군색한 감 장수는 유월부터 감을 판다’는 속담이 있다. 얼마나 형편이 다급하고 옹색하면 유월에 익지도 않은 감을 팔까? ‘군색(窘塞)하다’는 또 자연스럽거나 떳떳하지 못해서 거북하다는 뜻도 갖고 있다. ‘군색한 표현’, ‘군색한 변명’ 등이 그 예이다. 씁쓸하지만 아베 총리의 담화가 좋은 보기가 됐다.

비슷한 말로 ‘궁색(窮塞)하다’가 있다. ‘궁색하다’가 ‘아주 가난하다’의 뜻일 때는 ‘군색하다’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뜻이다. ‘군색한 살림’보다는 ‘궁색한 살림’이 훨씬 가난한 상태를 말한다. 말이나 행동의 이유나 근거가 부족할 때에도 ‘궁색하다’라고 한다. ‘궁색한 대답’ ‘궁색한 변명’ 과 같이 쓰인다.

‘군색한 변명’과 ‘궁색한 변명’은 같은 뜻일까?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군색한 변명은 앞뒤가 맞지 않고 떳떳하지 못해서 거북한 변명, 즉 다분히 나쁜 의도가 느껴지는 변명이다. 궁색한 변명은 근거가 부족한 변명임은 같지만 임시방편으로 둘러대는 느낌이 강하다. 애초부터 사죄에는 관심이 없고 책임 회피와 정치적 이득만을 노린 아베 총리의 담화는 진정으로 ‘군색한 변명’이었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61433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798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22867
2886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1354
2885 국민 바람의종 2008.11.23 4563
2884 국민께 감사를 風文 2021.11.10 1576
2883 국민들 바람의종 2010.09.08 11737
2882 국방색 / 중동 風文 2020.06.24 2317
2881 국수 바람의종 2007.06.05 7490
2880 국어 영역 / 애정 행각 風文 2020.06.15 1697
2879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1439
2878 국어의 품사 1 바람의종 2009.12.14 15020
2877 국으로 바람의종 2010.11.25 10971
2876 군말 바람의종 2008.05.13 7398
2875 군불을 떼다 바람의종 2007.12.28 12911
» 군색한, 궁색한 風文 2023.11.21 1437
2873 군인의 말투 風文 2021.09.14 956
2872 굳은 살이 - 박혔다, 박였다, 배겼다 바람의종 2009.07.28 8915
2871 굴뚝새 바람의종 2009.07.08 6104
2870 굴레와 멍에 바람의종 2008.01.17 7805
2869 굴레와 멍에 바람의종 2010.05.18 11536
2868 굴지 바람의종 2007.06.05 7012
2867 굴착기, 굴삭기, 레미콘 바람의종 2008.10.17 7958
2866 굼때다 바람의종 2008.07.05 6945
2865 굽신거리다 바람의종 2008.10.22 681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