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1.20 10:15

까치발

조회 수 136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까치발
 
신호등 앞에서 한 노인이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종아리 근육을 강화하고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며 하지정맥류를 예방하는 만병통치의 까치발 운동. 속으로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고 있겠지.

새들은 모두 뒤꿈치를 들고 다닌다. 까치를 자주 봐서 까치발이려나, 한다. 제비발이나 까마귀발이라 해도 문제없다. 네발짐승들도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 힘만으로 걷는다. 네발이니 땅에 닿는 면적이 좁아도 괜찮다. 강아지만 봐도 발꿈치뼈는 땅에 닿지 않는다. 두발짐승인 사람만 넓적한 발바닥 전체로 땅을 디뎌야 ‘서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 까치발을 하나? 시선을 초과하는 현장이 궁금해서겠지. 마음은 이미 장벽 너머로 넘어가 있건만, 육신은 날 수도 튀어오를 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까치발은 ‘너머’를 보겠다는 의지의 육체적 표명. 육신의 한계 때문에 일렁이는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분투. 도구도 필요 없다. 오직 내 몸뚱이를 최대한 늘려서 기어코 보고야 말리라.

‘너머’에 대한 갈망은 까치발을 딛음과 동시에 턱을 앞으로 쑥 내밀게 한다. 동물계에서 이탈한 인간이지만, 이때만큼은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드는 동물에 가까워진다. 손으로 시야를 가리고, 턱을 앞으로 내밀어 보라(눈은 뜨고!). 가린 손 너머로 풍경이 훤히 보일 게다. 목이 원의 중심이 되어 턱을 내미는 만큼 눈이 원의 꼭짓점을 향해 ‘올라간다’. 와, 턱을 내밀면 눈이 올라간다는 우주적 발견!

내 눈높이, 내 키 너머에 다른 풍경이 있을지 모른다. 풍경만 그렇겠는가. 내 한계 너머에 다른 진실이 있을지 모른다. 텅 빈 마음으로 맞이하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죽음 너머의 진실이 보고 싶다. 끽해야 까치발 정도의 간절함이지만.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588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2506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7385
3392 늘그막, 늙으막 / 늑수그레하다, 늙수그레하다 바람의종 2010.04.02 23681
3391 쌓인, 싸인 바람의종 2008.12.27 23225
3390 ‘넓다´와 ‘밟다´의 발음 바람의종 2010.08.15 22776
3389 고장말은 일상어다 / 이태영 바람의종 2007.07.24 22625
3388 꺼예요, 꺼에요, 거예요, 거에요 바람의종 2010.07.12 22613
3387 저 버리다, 져 버리다, 처 버리다 쳐 버리다 바람의종 2009.03.24 22283
3386 못미처, 못미쳐, 못 미처, 못 미쳐 바람의종 2010.10.18 22131
3385 뜻뜨미지근하다 / 뜨듯미지근하다 바람의종 2010.11.11 22126
3384 상봉, 조우, 해후 바람의종 2012.12.17 22088
3383 색깔이름 바람의종 2008.01.29 21955
3382 썰매를 지치다 바람의종 2012.12.05 21655
3381 달디달다, 다디달다 바람의종 2012.12.05 21492
3380 땜빵 바람의종 2009.11.29 21394
3379 통음 바람의종 2012.12.21 21359
3378 부딪치다, 부딪히다, 부닥치다 바람의종 2008.10.24 21315
3377 괴발개발(개발새발) 風磬 2006.09.14 21224
3376 지지배, 기지배, 기집애, 계집애, 임마, 인마 바람의종 2011.12.22 21170
3375 두루 흐린 온누리 바람의종 2013.01.04 21077
3374 내 자신, 제 자신, 저 자신, 너 자신, 네 자신 바람의종 2010.04.26 21047
3373 서식지, 군락지, 군집, 자생지 바람의종 2012.11.30 21041
3372 나무랬다, 나무랐다 / 바람, 바램 바람의종 2012.08.23 20992
3371 명-태 바람의종 2012.11.23 2084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