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1.16 09:52

부사, 문득

조회 수 129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부사, 문득

부사(副詞)는 이름부터 딸린 식구 같다. 뒷말을 꾸며주니 부차적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더부살이 신세. 같은 뜻인 ‘어찌씨’는 이 품사가 맡은 의미를 흐릿하게 담고 있다. 글을 쓸 때도 문제아 취급을 당한다. 모든(!) 글쓰기 책엔 부사를 쓰지 말라거나 남발하지 말라고 한다. 좋은 문장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동사)로만 되어 있다는 것. 부사는 글쓴이의 감정이 구질구질하게 묻어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하면서도 마치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단다. (그러고 보니 이 칼럼의 분량을 맞출 때 가장 먼저 제거하는 것도 부사군.)

그래도 나는 부사가 좋다. 개중에 ‘문득’을 좋아한다. 비슷한 말로 ‘퍼뜩’이 있지만, 이 말은 ‘갑자기’보다는 ‘빨리’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퍼뜩 오그래이’). ‘문득’은 기억이 마음속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알아차리게 한다. 우리는 기억하는 걸 다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너무 깊이 있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수면 위로 불쑥 튀어 오른다. 그래서 ‘문득’은 ‘떠오른다’와 자주 쓰인다.

망각했던 걸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문득’은 성찰적인 단어다. 예측 가능한 일상과 달리, 우연히 갑자기 떠오른 것은 정신없이 사는 삶을 잠깐이나마 멈추게 한다. 기억나지 않게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떠오르면 자신이 겪어온 우여곡절이 생각난다. 작정하고 생각한 게 아니라, 이유도 모르게 솟아나는 게 있다니. 나에게 그런 일이, 그런 사람이 있었지. 돌이킬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우리를 두껍게 만들었다. 기대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 인생, 허덕거리면서도 잘 살아내고 있다.

당신은 이 가을에 어떤 부사가 떠오르는가.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1. No Image notice by 바람의종 2006/09/16 by 바람의종
    Views 61617 

    ∥…………………………………………………………………… 목록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3. No Image notice by 風磬 2006/09/09 by 風磬
    Views 223074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4. No Image 08Jan
    by 바람의종
    2010/01/08 by 바람의종
    Views 9945 

    부축빼기

  5. No Image 13Dec
    by 바람의종
    2007/12/13 by 바람의종
    Views 6419 

    부추?

  6. No Image 10Feb
    by 바람의종
    2008/02/10 by 바람의종
    Views 8844 

    부처손

  7. 부처꽃

  8. No Image 20Dec
    by 風磬
    2006/12/20 by 風磬
    Views 10660 

    부질없다

  9. No Image 20Dec
    by 風磬
    2006/12/20 by 風磬
    Views 6669 

    부지깽이

  10. No Image 15Feb
    by 바람의종
    2010/02/15 by 바람의종
    Views 14224 

    부인, 집사람, 아내, 안사람

  11. No Image 10Feb
    by 바람의종
    2009/02/10 by 바람의종
    Views 7638 

    부엌떼기, 새침데기, 귀때기

  12. No Image 11May
    by 바람의종
    2010/05/11 by 바람의종
    Views 9115 

    부엌,주방,취사장

  13. No Image 01Mar
    by 바람의종
    2009/03/01 by 바람의종
    Views 6295 

    부엉이

  14. No Image 13Jan
    by 바람의종
    2008/01/13 by 바람의종
    Views 10388 

    부아가 난다

  15. No Image 19Jul
    by 바람의종
    2010/07/19 by 바람의종
    Views 8142 

    부수다와 부서지다

  16. No Image 16Nov
    by 風文
    2023/11/16 by 風文
    Views 1297 

    부사, 문득

  17. No Image 13May
    by 바람의종
    2010/05/13 by 바람의종
    Views 11385 

    부분과 부문

  18. No Image 06Nov
    by 바람의종
    2007/11/06 by 바람의종
    Views 7939 

    부부 금실

  19. No Image 21Apr
    by 바람의종
    2008/04/21 by 바람의종
    Views 7804 

    부문과 부분

  20. No Image 20Jan
    by 바람의종
    2008/01/20 by 바람의종
    Views 8509 

    부리다와 시키다

  21. No Image 20Dec
    by 風磬
    2006/12/20 by 風磬
    Views 7586 

    부리나케

  22. 부릅뜨다

  23. No Image 12Mar
    by 바람의종
    2008/03/12 by 바람의종
    Views 10821 

    부름말과 지칭

  24. No Image 20Dec
    by 風磬
    2006/12/20 by 風磬
    Views 7258 

    부럼

  25. No Image 20Dec
    by 風磬
    2006/12/20 by 風磬
    Views 5308 

    부랴부랴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