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11.11 19:25

귀 잡수시다?

조회 수 145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귀 잡수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릴 만큼 예절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태도가 언어에도 반영돼 우리말에는 높임법이 매우 발달해 있다. 문장의 주체를 높이기 위해 ‘시’를 넣어 말하거나, 말을 듣는 상대에 따라 ‘했니?’, ‘했습니까?’처럼 어미를 다르게 선택해서 말한다. ‘진지, 생신, 잡수시다, 주무시다’처럼 윗사람에게만 쓰는 높임 어휘가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데 때로는 높임말을 잘못 사용해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 흔히 틀리는 게 ‘귀 잡수시다’인데, 이게 잘못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에도 “우리 할아버지는 귀가 잡수셔서 말을 잘 못 알아들으세요”라고 말하는 청년을 보았다. ‘귀가 먹으셨다’라고 해야 할 것을 어른에게 ‘먹었다’고 하기가 어려워서 ‘귀가 잡수셨다’고 한 것이다.

‘귀먹다’의 ‘먹다’는 ‘밥을 먹다’의 ‘먹다’와는 다른 말이다. 이때의 ‘먹다’는 ‘막히다’의 뜻을 지닌 옛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귀나 코가 막혀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되다’는 뜻이다. 이 ‘먹다’는 코가 막힌 경우에도 쓸 수 있는데, 감기에 걸려 코맹맹이 소리를 낼 때 ‘코 먹은 소리’라고 하는 게 그런 예이다. 갑자기 귀가 막힌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거나 체한 것같이 가슴이 답답할 때 쓰는 ‘먹먹하다’나, 앞뒤가 꽉 막혀 답답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먹통’ 이 모두 이 ‘먹다’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귀 잡수셨다’는 말은 동물의 귀를 음식으로 섭취했다는 뜻이 되므로 ‘귀먹다’의 높임말이 될 수 없다. 어른에 대해서 쓸 때에는 ‘귀가 먹으셨다’고 하면 된다. 그래도 어른께 ‘먹으셨다’고 말하기가 영 찜찜하다면 ‘귀가 어두우시다’나 ‘귀가 잘 안 들리신다’로 표현하면 될 것이다.

-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1. ∥…………………………………………………………………… 목록

    Date2006.09.16 By바람의종 Views57584
    read more
  2.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Date2007.02.18 By바람의종 Views204245
    read more
  3.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Date2006.09.09 By風磬 Views219136
    read more
  4. ‘건강한’ 페미니즘, 몸짓의 언어학

    Date2022.09.24 By風文 Views1587
    Read More
  5. 방언의 힘

    Date2021.11.02 By風文 Views1588
    Read More
  6. 괄호, 소리 없는, 반격의 꿔바로우

    Date2022.08.03 By風文 Views1588
    Read More
  7. ‘부끄부끄’ ‘쓰담쓰담’

    Date2023.06.02 By風文 Views1588
    Read More
  8. ‘시끄러워!’, 직연

    Date2022.10.25 By風文 Views1591
    Read More
  9. 북한의 ‘한글날’

    Date2024.01.06 By風文 Views1591
    Read More
  10. 콩글리시

    Date2022.05.18 By風文 Views1593
    Read More
  11. 혼성어

    Date2022.05.18 By風文 Views1593
    Read More
  12. ‘웃기고 있네’와 ‘웃기고 자빠졌네’, ‘-도’와 나머지

    Date2022.12.06 By風文 Views1597
    Read More
  13. 한소끔과 한 움큼

    Date2023.12.28 By風文 Views1599
    Read More
  14. 노랗다와 달다, 없다

    Date2022.07.29 By風文 Views1601
    Read More
  15. 성인의 세계

    Date2022.05.10 By風文 Views1602
    Read More
  16. 국가 사전 폐기론, 고유한 일반명사

    Date2022.09.03 By風文 Views1603
    Read More
  17. 배운 게 도둑질 / 부정문의 논리

    Date2023.10.18 By風文 Views1610
    Read More
  18. '마징가 Z'와 'DMZ'

    Date2023.11.25 By風文 Views1615
    Read More
  19. 기림비 2 / 오른쪽

    Date2020.06.02 By風文 Views1619
    Read More
  20. 개양귀비

    Date2023.04.25 By風文 Views1623
    Read More
  21. 어쩌다 보니

    Date2023.04.14 By風文 Views1624
    Read More
  22. 위탁모, 땅거미

    Date2020.05.07 By風文 Views1625
    Read More
  23. 아이 위시 아파트

    Date2023.05.28 By風文 Views1628
    Read More
  24. ‘~면서’, 정치와 은유(1): 전쟁

    Date2022.10.12 By風文 Views1629
    Read More
  25. 국가의 목소리

    Date2023.02.06 By風文 Views163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