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6.09 05:56

망신

조회 수 14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망신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마음은 몸과 이어져 있다. 볼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건만, 몸이 티를 내니 숨길 수가 없다. 기쁘면 입꼬리를 올리고, 슬프면 입술을 씰룩거린다. 실망하면 어깨가 처지고, 부끄러우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분하면 어금니를 깨물고 긴장하면 몸이 굳는다. 두려우면 닭살이 돋는다. 몸은 마음이 하는 말이다.

‘망신’(亡身). 몸을 망가뜨리거나 몸이 망가졌다는 뜻이었으려나. 고행처럼 몸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 육신의 욕망을 뛰어넘고 참자유에 이르겠다는 의지였으려나.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몸을 잊음으로써 인간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겠지. 오체투지, 단식, 묵언, 피정, 금욕도 망신(고행)의 일종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궁리하는 일이라면 여행이나 산책마저도 망신이려나? ‘몸을 잊고 던지는’ 망신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가. 몸은 안 던지고, 세 치 혀만 잘못 놀려 스스로 무덤을 판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헛소리를 하고 허세를 부리다가 들통이 난다. 자초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랴. 망신은 망심(亡心). 얼굴을 들 수 없고 낯이 깎인다(대패에 얼굴이 깎여나가는 아픔이라니). 망신도 크기가 있는지, ‘개망신’을 당하면 며칠은 집 밖에 나갈 수 없고, ‘패가망신’을 당하면 전 재산을 잃고 몰락한다. 홀로 감당하지 않고 ‘집안 망신’이나 ‘나라 망신’을 시켜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인간은 실수하는 동물이다. 크고 작은 망신을 피할 수 없다. 다만, 망신살이 뻗쳤는데도 낯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는 건 분명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5845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2384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7472
3106 단골 風文 2023.05.22 1359
3105 아카시아 1, 2 風文 2020.05.31 1363
3104 울타리 표현, 끝없는 말 風文 2022.09.23 1365
3103 아이 위시 아파트 風文 2023.05.28 1367
3102 ‘괴담’ 되돌려주기 風文 2023.11.01 1367
3101 살인 진드기 風文 2020.05.02 1369
3100 열쇳말, 다섯 살까지 風文 2022.11.22 1369
3099 인기척, 허하다 風文 2022.08.17 1372
3098 이 자리를 빌려 風文 2023.06.06 1373
3097 올가을 첫눈 / 김치 風文 2020.05.20 1375
3096 정치의 유목화 風文 2022.01.29 1376
3095 벌금 50위안 風文 2020.04.28 1377
3094 국가의 목소리 風文 2023.02.06 1379
3093 너무 風文 2023.04.24 1380
3092 존맛 風文 2023.06.28 1383
3091 맞춤법을 없애자, 맞춤법을 없애자 2 風文 2022.09.09 1391
3090 환멸은 나의 힘 / 영어는 멋있다? 風文 2022.10.28 1393
3089 지명의 의의 風文 2021.11.15 1395
3088 우리나라 風文 2023.06.21 1398
3087 공화 정신 風文 2022.01.11 1399
3086 질척거리다, 마약 김밥 風文 2022.12.01 1400
3085 말 많은 거짓말쟁이 챗GPT, 침묵의 의미를 알까 風文 2023.06.14 140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