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3.06.06 13:57

이 자리를 빌려

조회 수 145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 자리를 빌려

‘이 자리를 00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할 때 ‘빌어’가 맞나요? ‘빌려’가 맞나요? 엊그제 어느 직장인으로부터 문의 전화를 받았다. ‘빌려’로 쓰는 게 맞다고 답했더니 “저도 그런 줄 알고 있는데, 사장님이 자꾸 ‘빌어’로 써야 한다고 하시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떤 사정일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사장님은 적어도 50세는 넘으신, 연세가 지긋한 분이실 게다. 1988년에 표준어 규정의 개정으로 이 표현은 ‘빌어’에서 ‘빌려’로 바뀌었다.

‘빌리다’는 남의 돈이나 물건을 나중에 돌려주기로 하고 얼마 동안 가져다 쓰는 일을 뜻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빌려오기도 하고 남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1988년 이전에는 빌려오는 것은 ‘빌다’로, 빌려주는 것은 ‘빌리다’로 구분해서 쓰도록 하였다. 즉 ‘친구가 나에게 책을 빌렸다’는 친구가 내 책을 빌려갔다는 뜻이고, 내가 빌렸을 때는 ‘친구에게 책을 빌었다’ 또는 ‘빌어왔다’라고 표현해야 했다. 그러나 차차 이 둘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빌려가다, 빌려오다, 빌려주다’로 구분해서 사용함에 따라 ‘빌다’와 ‘빌리다’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 ‘빌리다’로 쓰도록 했다. 그러니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로 쓰면 된다.

다만 ‘빌려오다’의 의미로 ‘빌다’를 더 이상 쓰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말은 굳어진 표현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어 ‘빌어’가 맞는 것으로 종종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빌다’는 ‘빌어먹다’에서처럼 ‘구걸하다’의 의미나 ‘소원이나 용서를 빌다’처럼 간곡히 청하는 행위를 나타낼 때에만 사용한다. 앞으로는 이 말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부탁드린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826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9471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9649
3150 정치인의 애칭 風文 2022.02.08 1299
3149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이제 '본전생각' 좀 버립시다 風文 2022.02.06 1125
3148 프레임 설정 風文 2022.02.06 1930
3147 언어적 자해 風文 2022.02.06 1446
3146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IMF, 막고 품어라, 내 인감 좀 빌려주게 風文 2022.02.01 1320
3145 순직 風文 2022.02.01 1152
3144 삼디가 어때서 風文 2022.02.01 1287
3143 말의 평가절하 관리자 2022.01.31 1214
3142 어떤 문답 관리자 2022.01.31 1246
3141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1137
3140 아줌마들 風文 2022.01.30 1184
3139 태극 전사들 風文 2022.01.29 1229
3138 정치의 유목화 風文 2022.01.29 1408
3137 외래어의 된소리 風文 2022.01.28 1192
3136 통속어 활용법 風文 2022.01.28 1260
3135 말과 공감 능력 風文 2022.01.26 1053
3134 정당의 이름 風文 2022.01.26 1154
3133 법과 도덕 風文 2022.01.25 1188
3132 연말용 상투어 風文 2022.01.25 1082
3131 말로 하는 정치 風文 2022.01.21 1238
3130 야민정음 風文 2022.01.21 1187
3129 쇠를 녹이다 風文 2022.01.15 163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157 Next
/ 157